최근 매크로 지표들이 가르키는 방향은 완전히 두갈래로 갈라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경기침체(recession), 다른 하나는 인플레이션 또는 스테그플레이션입니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경기침체 내지 인플레이션 기조의 완화로 인한 호황이라는 희망이 조금 더 우세하지만, 작금의 인플레이션에 미 연준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내년에는 인플레이션이 다시한번 기승을 부릴거라는 예측을 하는 전문가들도 상당수 존재합니다.
이 두가지 시나리오 중 어떤 시나리오가 맞는지,,, 내지 어떤 식으로 흘러가게 되는지에 따라 우리가 투자해야 하는 방향은 극단적으로 갈라집니다. 중요한 건 어느 쪽이 맞는지를 찍는게 아니라 어느 시나리오로 흘러가는지 시장의 변화를 빠르게 파악해서 대응하는 데 있을겁니다.
여기서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 어느 쪽의 힘이 강하게 작용하는가를 알기 위해 가장 쉽게 적용할 수 있는 신호는 당연히 물가지수와 미국채 장기물 금리이겠으나, 우리는 이들 지표보다 더 먼저 시장의 흐름을 감지해야만 투자기회를 얻을수 있기에 좀 더 선행적이고 근본적인 신호가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현재 제가 생각하는 신호는 미국 상업은행의 예대율, 즉 LDR(loan-to-deposit radio)입니다.
https://www.investopedia.com/terms/l/loan-to-deposit-ratio.asp
예대율은 은행이 유치한 전체 대출금을 은행에 예치된 예금액수로 나눈 비율입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예대율은 80%에서 90%를 보이는데, 현재 미국 상업은행의 예대율은 이에 훨씬 못미치는 60%대를 기록하는 와중에서도 계속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며 22년 1분기 현재 58.6%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대율이 떨어지는 원인은 분자인 대출액이 감소하거나 분모인 예금액이 늘어나는 경우에 발생하는데, 현재에는 대출은 정체되는 반면 은행예금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 50%대까지 떨어진 상태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현재 미국 중산층과 서민이 대출을 받을 여력이 충분하고, 보유중인 현금 또한 늘어나서 가계재정이 안정적인 대신, 미래에 대한 심리가 불안해서 과거처럼 투자와 소비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예대율이 다시 올라간다고 한다면, 두 가지 이유일 것입니다. 서민들의 현금이 떨어지기 시작해서 은행예금을 찾아서 생활해야 하는 상황에 빠졌다,,, 또는 중산층이 돈을 빌려서 적극적으로 투자를 늘려가기 시작했다. 두가지 경로 중 어느 경로에 의해서든, 일단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면 이는 시장의 미래를 가장 먼저 보여주는 선행지표가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러한 논리전개 중 어디에도 연준의 금리정책이 변수로 고려되고 있지 않다는 반론을 제기하실 수 있을겁니다. 하지만, 2,000년 닷컴버블이나 2,008년 금융위기, 그리고 코로나 판데믹 때의 경제위기 어느 경우에서도 시장상황은 연준의 움직임과 아무런 상관없이 민간의 금융시스템이 굴러간 방향대로 움직였다는 걸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연준이 아무리 금리를 올리거나 내리더라도 미국 내 민간은행이 대출을 늘리고 줄이며 유동성에 영향을 미치는 힘에는 당하기 어렵다는 게 지난 역사가 보여준 법칙이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갑자기 미국 상업은행의 예대율이 대출을 늘려가며 상승한다면 아무리 연준이 양적긴축을 하더라도 유동성을 의미하는 M2는 크게 늘어납니다. 마찬가지로 예대율이 대출에는 큰 변화 없이 예금액의 감소를 통해 늘어간다면 고용지표가 아무리 좋게 보여진다 해도 소비여력의 고갈에 이어지는 소비감소로 인해 인플레이션은 힘을 쓰기 어렵게 되고 경기침체로 직행하게 된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통상적으로 인플레이션이나 경기침체를 확인할 때 사용하는 물가상승율이나 시장금리 등 여러 지표들은 최근 계속 종잡기 어려운 움직임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현재 시장이 헷갈리고 혼란스러워하는 걸 반영하고 있는겁니다. 이럴 때일수록 그동안 별다른 움직임이 없어서 많은 이들이 주목하지 않는 지표의 추이와 분석이 좀 더 정확하고 빠른 판단에 유용한 신호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 주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