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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5월달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영토를 계속 점령해나가던 상황에서 제가 썼던 글입니다. 당시에는 주로 러시아가 결국엔 이길것이다, 러시아가 아닌 유럽이 휴전을 강력하게 희망할 것이다, 이번 겨울이 오기 전에 유럽이 두손두발 들고 가스를 구걸하며 우크라이나가 휴전할 것을 압박해올 것이다 같이 제 글과 반대되는 의견들이 여론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던 걸 기억합니다.
이제 4개월이 지난 지금의 상황을 점검해보면 푸틴은 상황이 굉장히 좋지 못합니다. 지금 러시아가 점령한 지역들에서 투표를 한다고 해서 해당 지역을 러시아가 점령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당장 러시아의 편을 들어주고 있는 이들 중 가장 중요한 파트너인 튀르크의 에르도안 대통령마저 휴전을 지지하면서도 이번 전쟁으로 러시아가 얻어갈 수 있는 땅은 zero 라고 못박고 있습니다.
요즘 푸틴은 해외에 나가면 다른 정상들보다 먼저 와서 기다린다고 합니다. 지각대장으로 유명한 푸틴의 그 가오는 이제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심지어 제 시각보다 더 늦게 도착한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에게 “왜 늦었느냐?”고 물어보니 돌아오는 답이 “타지키스탄 때문에,,,(분쟁 중인 타지키스탄의 뒤에 푸틴이 있다는 뜻)”,, 전쟁 초기부터 참전할지도 모른다던 벨라루스도 감감 무소식,,,
외교만 문제가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심각한 상황이긴 마찬가지입니다. 미국도 두개의 전선에서 동시에 승리를 거둔다는 게 망상에 가까운 무리수인데 이제 우크라이나 상황을 보면서 과거 러시아에게 침략당했던 패전국들도 기회를 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아제르바이잔의 아르메니아 공격, 그루지아(조지아)의 영토 탈환전쟁 준비 등등,,, 천하의 푸틴과 러시아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누구나 얼굴을 크게 한 대 강타당하기 전까지는 계획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역사가들은 처칠이 히틀러에게 연전연패로 항복을 하느냐마느냐하는 상황까지 몰렸을 때 내각의 인물들에게 이렇게 물어봤다고 합니다. 처칠은 협상파들을 향해 “이렇게 연전연승으로 기세가 올라가있는 히틀러를 상대로 우리 영국이 지금 협상에 임한다면, 과연 어디까지 우리가 양보해야 할것 같은지 설명해보라” 결국 처칠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영국이라는 국가의 주권과 전통이 말살되는 일을 막고 어떻게든 유리하게 협상할 수 있는 타이밍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서 죽도록 저항했던 겁니다.
그렇게 처칠이 살아남겠다는 단순하고 절박한 목표를 설정한 이후 모든 행동은 단 하나에 집중해야만 했습니다. 다름아닌 미국의 참전을 위한 미국내 반전여론의 관리,, 그걸 위해 영국인 몇명이 죽어나가든 무조건 버텨야 했고,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간도 쓸개도 빼줄것처럼 절절한 편지와 호소를 반복했으며 모든 외교역량이 미국의 반전여론 해소를 위해 소비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것에 성공했지요.
반면, 히틀러는 선택의 여지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를 침공했습니다. 히틀러에게는 제대로 된 친구가 없었던 상황에서 등 뒤에서 비수가 날아오는 걸 용인하기는 어려웠을겁니다. 그러던 와중에 스탈린의 군사적 실수들로 인해 소련침공은 제대로 성공했었지요. 하지만, 결국 이 승부수는 멸망의 지름길이 되고 말았습니다.
2차대전 동안 처칠과 히틀러의 명암을 보면, 지금의 젤렌스키와 푸틴이 선명하게 겹쳐져 보입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모든 것을 동원해 그걸 해내고 있습니다. 다름아닌 유럽과 미국의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인터넷 여론전, 군사적 성과, 국민을 단결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쥐어짜내며 생존을 넘어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반면 푸틴은 전쟁 전은 물론, 후에도 친구를 늘리고 적을 분열시키기 위한 조치들에 우크라이나만큼의 적극성과 절박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쟁 이후 푸틴이 국제사회를 향해 보여주는 모습은 언제나 위협과 협박 뿐, 새롭게 누구를 끌어들여야 하는지, 그걸 위해 무얼 양보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결단하는 전략적 자세를 보여준 적이 없습니다.
물론, 러시아는 그래도 될만큼 크고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나라이고, 결정적으로 핵무기를 가진 나라입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돌발변수에 부딪혀서 기존에 짜놨던 정교한 계획이 작동하지 않는 시점, 즉 얼굴을 크게 한 대 강타당한 시점에서 무엇을 절박하게 추구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 무얼 포기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포기하는 유연성 상실은 상황을 계속 악화시킬 수밖에 없을겁니다.
왜 그런 유연성의 상실이 벌어지는지는 자명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도에서 반드시 추구해야 하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따르는 이데올로기가 주장하는 위대한 무언가를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에 더 집중하기 때문에, 즉 일국의 지도자라는 자부터 솔선수범해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기 때문에 유연성을 보일 수 없는겁니다.
사실, 푸틴이 저렇게 장기집권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레벤스라움을 고스라니 베껴쓴 위대한 러시아 시나리오(라 쓰고 망상이라 읽는)를 비젼이랍시고 국민들에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니, 그러한 시나리오가 깨지는 상황은 곧바로 푸틴의 실각 내지는 더 끔직한 최후를 의미하기에 이제 와서는 더욱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할 수 없는 거지요.
이게 전략과 망상의 차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략은 바라는 것이 정말 절박하고 당면한 과제 하나 또는 둘 정도에 불과하지만, 망상은 바라는 게 정말 거창하고, 거창한만큼 아름다우면서도 모호하기 그지없어 어려운 국면에서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계속 나락에 빠지게 만드는게 결정적인 차이점일겁니다.
이런 이야기는 전쟁이나 외교에서 뿐 아니라 투자에서도 통용되는 원리일겁니다. 투자자들에게는 특히나 이 전략이라는 요체에 대해 더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다름아닌 지금이 아닌가 합니다. 무언가 너무 거창하거나 경직된 논리 또는 희망사항을 바탕으로 계획을 세웠다면, 평소보다 훨씬 더 엄격하고 절박하게 현실을 통한 오류의 수정과 방향전환에 대해 고민을 하는 것이 진정한 전략적 사고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