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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표는 애덤 투즈의 “붕괴(crashed)”에 나오는 표입니다. 한 달 넘게 붙잡고 있는데 절반도 못 읽었네요. ㅜㅜ
금융위기가 진행되고, 그걸 수습하는 동안 순수하게 은행에 지원(대출 또는 자산매입)한 돈을 각 은행별로 정리한 게 위의 표입니다. TALF같은 직접대출이나 양적완화는 포함하지 않은 것인데도 19조달러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액수입니다.
중요한 건, 이 어마어마한 은행지원들 중 미국이 아닌 외국은행을 향한 지원액이 절반을 넘는다는 사실입니다. 당시에 미국 국민들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난리가 났겠죠. 만약 당시 연준의 이런 지원상황이 대중에 공개되었다면 아마 이런 지원들도 대폭 축소됬을 것이고, 양적완화도 좌초되었을 겁니다. 그랬다면, 우리는 지금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쨋던, 지금 돌아보면 황당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연준의 이런 희생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첫째는 당시의 금융위기의 본질은 “미국의 위기”가 아닌 “유럽의 위기”에 더 가깝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사태 초기부터 뱅크런 사태를 일으키며 줄줄이 무너지기 시작했던건 유럽의 은행들이었습니다. 유럽에서 도미노가 무너지듯 위기가 전염되고 나서야 미국의 은행들이 무너졌으며, 연준은 달러로 돌아가는 세계경제시스템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유럽의 여러 은행들을 받쳐주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둘째로 연준, 또는 미국은 유럽과 금융 측면으로 이미 한 몸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는 점입니다. 정치적으로는 부시의 이라크 침공 이후 이미 균열이 벌어질대로 벌어진 상태였던 미국과 유럽 각국이었지만, 금융시스템의 측면에서는 서로 떨어질 수가 없는 상태였으며, 유럽의 미국에 대한 의존도는 그 후로 남유럽 위기를 거치면서 훨씬 더 가까워지고 의존적이 되었습니다.
유럽 각국이 정치적으로는 끊임없이 미국의 간섭과 통제에서 벗어나려 하고, 유로화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EU회원국은 아무리 심각한 경제위기가 와도 미국처럼 무한정 화폐를 발행할 수도 없고, 각 국이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펴나갈 수도 없습니다. 그러한 경직성 때문에 금융위기 당시 속절없이 수많은 유럽은행들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최종대부자는 유럽 중앙은행이 아닌 연준일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이러한 경직성과 부실한 위기대응능력은 호전되기는 커녕 점점 더 악화되어 남유럽위기와 작금의 경제상황까지 도출하고 있습니다.
세째로, 이런 연준의 “최종대부자” 내지 “최후의 구원자”로서의 역할이 다가오는 다음 번 위기상황에서도 과연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우리를 괴롭힌다는 점입니다. 금융위기 당시는 유럽과 미국이 한묶음으로 절단날 수 있었던 위기였고, “달러 시스템”이라는 미국의 존망과 직결되어있는 금융시스템의 위기였기에 심지어는 자국 유권자들의 극렬한 반대와 분노를 감수해가면서까지 무제한적인 유동성살포를 감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020년 코로나 판데믹 상황에서도 미국이 살기 위해, 유럽을 비롯한 달러시스템의 연명을 위해 금융위기 때를 훨씬 상회하는 막대한 유동성을 풀었고, 인플레이션이라는 반동을 기꺼이 감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음 번 위기가 만약 미국의 핵심 이익과 거리가 먼 곳, 달러시스템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지 않는 곳에서 발생한다면 과연 연준이 이런 구원자 역할을 자임하려 할까에 대해서는 미지수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겁니다.
예를 들어 중국이나 인도, 러시아 발 위기가 발생한다면? 연준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적인 부담을 감수하기는 커녕, 오히려 잘 되었다며 은근히 문제를 키울수도 있는거지요. 그렇게 된다면 이들과의 교역이 경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우리나라는 정말 큰 고통을 감수해야 하게 될수도 있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