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가 3차 양적완화를 시작하면서 미리 시장에 약속한게 “미국 실업률이 6.5% 이하로 떨어질 때까지는 금리를 최저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거였습니다. 시장과 연준이 박터지는 머리싸움을 시작한 건 이때부터였습니다. 당시 연준은 갑작스러운 대차대조표 축소나 금리인상을 시장이 견디지 못할 것으로 봤습니다. 양적완화를 계속해도 회복세가 너무 더뎠거든요.
반면 시장은 언제일지 모르나, 연준이 양적완화를 중단하고 양적긴축으로 돌아서는 순간, 채권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고, 그 시점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런 조짐이 오기 전까지는 막대한 유동성 파티를 즐길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왜냐면 연준이 이미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미리 예고했기 때문입니다. 실업률 6.5%라는 통계가 나오기 전까지 샴페인 파티를 안심하고 즐길 수 있다고 확신했던 겁니다.
벤 버냉키 입장으로선 신중에 신중을 기한 발언이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객관적으로 봐도 그는 “만일 지속적인 성장이 확인되고 그런 성장을 계속 유지하리라는 확신이 선다면 향후 몇차례의 채권 매입의 속도를 한단계 떨어트릴 수 있다”라고 발언했습니다. 미리 전제조건을 달았고, 상당히 구체적인 과정과 절차까지 제시하면서 양적완화의 속도만 떨어트리겠다, 즉 중단하는 것도, 양적긴축이나 금리인상을 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못박은건 지금 생각해봐도 지나치리만큼 조심스러운 발언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장은 예상을 뛰어넘은 충격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만큼 시장 참여자들은 안심하고 있었고, 탐욕에 찌들어있었던 거지요. 하지만, 진짜 무서운 파도는 미국 밖에서 밀려왔습니다.
단기간에 채권금리가 오르면서 이로 인해 달러화 강세가 일어나자 달러표시 부채가 크게 늘어나 있었던 신흥국들은 연준의장의 말 한마디로 인해 말 그대로 무너져내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여파는 순식간에 미국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합니다. 말 그대로 세계는 한 묶음으로 묵여있는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국내상황, 특히 정치상황은 전세계와 미국의 상호의존성을 순순히 인정하고 어려움에 빠진 국가들을 돌아보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다름아닌 공화당 강경파가 연방정부의 기능을 정시시키고 민주당과 오바마 행정부를 궁지로 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연준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가들을 정책결정 과정에서 고려하기는 커녕, 오히려 이런 신흥국의 반발을 미국적 애국심을 보여주는 기회로 활용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당시의 이런 사전 배경과 사건의 전개방향이 지금에도 똑같이 반복되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게 재미있습니다. 양적완화를 중단하고 양적긴축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미국채 금리가 급등하면서 달러강세가 진행되면서 달러표시 부채가 과도한 국가들이 신음하는데도 연준은 이들 국가들의 사정을 봐줄 이유도 없고 눈치를 볼 이유도 없는 것이 당시와 많이 닮아있습니다.
작년 연준이 가파른 금리인상을 중단하고 긴축속도를 조절했던 건 전통적인 맹방인 영국과 일본이 흔들리면서 미국의 금융시스템까지 무너질 위험이 눈 앞에 닥치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이러한 현상은 또다시 반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연준이 미국의 심각한 경기침체 가능성을 인지하고 이를 대비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 되기 전에는 언제든 미국채 금리가 올라가고 달러화 강세가 재발할 수 있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