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를 올려야 물가가 떨어진다?

최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했습니다. 한국은행의 고심이 느껴지는 행보였습니다. 기준금리 자체는 동결했지만, 기자회견 내내 물가를 관리하는 것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했고, 앞으로 물가가 더 오르면 언제든지 금리를 올리겠다고 단언할 정도면 그 고심이 어느정도인지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각종 유투브나 커뮤니티에서 이런 한국은행의 행보가 크게 잘못되었고, 한국은행 종재의 무능함을 지적하는 주장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합니다. 우리나라 경제가 이번 기준금리 동결로 큰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한국은행이 기본 책무인 물가관리를 소홀히 하고 엉뚱한 것에만 정신이 팔려있다는 이야기, 한국은행이 바지사장이고 윤석열 정부가 자기 맘대로 주무르고 있어서 이제 경제가 망가질거라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물론 경제를 걱정하는 마음도 이해가 되고, 현정부의 실정을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같은 생각이지만, 이런 문제제기는 뭔가 쌩뚱맞기 이전에 애초에 기본 전제부터 잘못 출발하다보니 이렇게 삼천포로 빠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뭣보다, “기준금리 인상 = 물가하락”이라는 단선적인 사고가 깔려있는 생각들이라는 점에서 안스럽습니다.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한국은행이라는 기관이 “물가관리”만 하라고 만든 기관이 아닙니다. 한국은행법에도 명시하고 있듯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하여)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이 한국은행의 목적입니다. 물가안정은 어디까지나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수단 내지 거쳐가는 경유지입니다.

물가안정이 궁극의 목적이라고 강조다 보면 자칫,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고 그로인해 은행권이 부실이 터져서 난리가 나버리면서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망가트릴 수도 있다는 고민을 한국은행은 심각하게 하는게 당연하고 정상적인 태도입니다. 왜 그런 상식적이고 당연한 측면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아니면 의도적으로 외면?) 계속해서 물가안정 하나만 한국은행의 본연의 업무이자 존재이유라고 강요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물가가 하락하거나 안정되는게 맞는 이야기일까요? 물론 모든 복잡한 변수들을 제거하고 일반론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이렇게 말할 수가 있을겁니다. 하다못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물가가 올라가기 쉽다는 말도 일리가 있겠지요. 하지만, 현실세계에서는 이게 꼭 들어맞지가 않는 말입니다. 단선적인 사고에 메몰되어있으면서 현실을 망각하면 빠져들기 쉬운 오류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금융의 역사에서 이런 일반론과 정 반대로 돌아갔던 사례가 존재합니다. 이명박정권 때 전형적인 사례가 있습니다.

2008년 8월 7일 이명박 정부(그 때는 한국은행이 독립적이지도 못한 상황이었죠)는 기준금리를 기존 5.5%에서 5.25%로 인상합니다. 당시 기준금리를 인상한 명분은 물가안정이었습니다. 서브프라임 사태가 진행되면서 달러강세가 스멀스멀 진행되기 시작하면서 우리 경제가 불안해지자 원달러환율이 1년 전의 900원에서 어느덧 1,000원으로 오르면서 환율과 물가가 불안해지기 시작했거든요.

하지만, 당시 우리 경제는 금리인상을 버틸 수 있는 체력이 있다고 확신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안했던 상황이었음에도 이런 금리인상의 단행이 이뤄지자 외국인투자자들은 친기업정권이 수출대기업들의 어려움까지 감수해가며 금리인상을 단행했다는 점에서 뭔가 큰 위험을 앞둔게 아니냐며 불안해하며 자금을 빼서 탈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원달환율은 악순환의 고리를 돌며 급격하게 올라가 한달도 안되어 1,300원까지 올라갔고, 10월달에는 급기야 리먼브라더스 파산까지 터지며 2,000원까지 올라갑니다. 이런 상황에서 물가가 안정되었을까요?

리먼 파산이야 우리 정부가 잘못한 게 아니지만, 1,000원 하던 환율이 기준금리 인상으로 순식간에 1,300원까지 올라간 건 명백히 한은이 잘못된 신호를 주었기 때문인 겁니다.

경제는 물리학이 아니고, 단선적으로 기준금리 올리면 물가가 올라간다는 공식은 특정한 조건을 충족한 경우에만 맞는 이야기가 되는겁니다. 단선적인 사고는 잘 모르는 사람들, 대중들을 현혹하고 선동하기에는 이용하기 편리한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제대로 정책을 논하고 결정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정당하게 비판하고 토론하면서 올바른 길로 여론을 이끌어가려는 이들에게는 절대로 피해야 하는 사고의 함정들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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