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파산을 전후해서 시장의 움직임에 걱정이 많으신 분들이 있으실거 같아서 글을 하나 올려봅니다.
SVB 파산이슈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미국채 장기물 금리가 엄청나게 떨어졌습니다. 보통은 금리가 올라가면서 주가가 떨어졌는데, 이번에는 금리가 떨어지면서 주가가 떨어져서 놀라는 분들이 많은것 같습니다. 당연히 많은 분들이 과거 리먼 브라더스 파산 때를 연상할겁니다.
일단 이게 금융위기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을겁니다. 2008년 금융위기는 한개의 요인만으로 벌어진 게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미국 가계의 막대한 부채비율과 자산거품, 그리고 금융권의 방만한 경영과 부패가 어느 한순간에 겹쳐서 파국에 다다른겁니다. 우연히 만조 때 태풍이 겹쳐서 안전하던 마을에 해일이 덮치는 것처럼 리먼사태는 그런 모든 형태의 공포가 한번에 중첩된 “sum of all fears”가 이뤄낸 파국이며 SVB 파산은 이제 막 하나의 변수가 떠오른 상황이죠.
하지만, 이번 이슈가 극적인 미국채 장기물금리 하락과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는건 아닙니다. 미국채 시장에서 이상한 조짐은 그보다 며칠 전부터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상조짐이 보였던 당시 썼던 블로그 글입니다. 파월이 기준금리를 더 강경하게 인상할 수 있다는 발언에 주식시장이 크게 떨어지며 난리가 났었는데 10년물과 30년물 금리는 요지부동, 오히려 30년물은 조금 떨어졌습니다. 당시에 이게 중요한 신호가 될거라 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채권 전문가들도 당시 상황에 상당히 주목하고 있었더군요. 그러고 나서 은행부도소식이 나오자마자 장기채 금리가 드라마틱하게 떨어진 겁니다.
이슈 하나의 파괴력을 뛰어넘는 반응이었고, 이는 달라진 분위기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달라진 분위기라는 건 다름아닌 “금융시스템이 현재의 시장금리수준에서도 계속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라는 의문이 본격적으로 확산되고 있는거라 봅니다. 시장금리가 4.0%를 넘어서기 사작하니 어김없이 큰게 터지기는게 패턴으로 정착되고 있습니다. 작년에 영국이 무너졌고, 뒤이어 일본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되려 미국채를 팔아제끼며 미국의 개입을 압박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미국의 중소은행이 무너지기 시작했구요.
결국, 연준이 지금과 같은 고금리를 부작용 없이 장기간 끌어가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연준 스스로나 시장 참여자들 모두 인정해가기 시작하고 있는겁니다.
그렇다면, 작년에 일이 터졌을때마다 연준이 일시적으로나마 완화적으로 돌아섰던 것처럼 이번에도 연준이 완화적으로 양적긴축을 보류하거나 금리인상을 그만둘까요? 이번에는 그러기가 쉽지 않을겁니다. 연준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플레이션을 잡아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는겁니다.
연준이 무리하다 할 정도로 기준금리를 급격하게 올리고 있는데도 여전히 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고 있는게 큰 문제입니다. 문제는 인플레이션을 아무리 연준이 통화정책으로 막으려 해도 재무부가 나서서 국민들 호주머니에 돈을 계속 꽂아넣어주면 소용이 없습니다. 급격하게 줄어들던 M2 통화량이 1월에 갑자기 늘어난 것도 바이든 행정부에서 세율조정등을 통해 다시한번 돈을 뿌려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최근까지 미국 장기채금리가 4.0% 근처까지 확 올라갔었던 거지요.
연준이 아무리 용을 써도 바이든정부가 계속 돈을 뿌려댄다면 빠른 인플레이션 퇴치는 어렵다는 걸 잘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어찌보면 SVB은행이 파산한 가장 큰 이유가 보유중이던 장기채권들의 밸류에이션 때문이었으니 이 문제를 일으킨 간접적인 책임이 바이든 행정부에 있다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요. 인플레이션이 꺽이지 않는다면 경기가 침체되더라도 주식시장의 반등은 불가능합니다. 결국, 앞으로 주식시장이 어떻게 될것인가는 바이든 행정부가 재정지출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봐도 됩니다.
물론, 정부의 재정지출과 함께 중요한 변수가 하나 더 있는데, 공화당과의 부채협상입니다. 이 또한 만만치 않은 시련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이번 SVB 파산 이슈는 단기적으로 큰 충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지만,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연준 혼자서만 용쓰는 지금같은 상황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여기서 점점 뭔가가 튀어나와 계속 얹어지며 파괴력을 더하는 상황이 나올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부터 인플레이션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경기침체도 점점 가파르게 진행되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나온 고용지표에서 실업율이 올라가기 시작했고, GDP성장도 생각보다 더 저조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리느냐, 얼마나 올리느냐가 주식시장을 움직이는 국면이 끝나가게 될 것입니다. 연준의 결정은 더이상 시장을 움직이게 만드는 변수가 되기 어려워진다는겁니다. 이제는 연준의 행보가 아니라 실제 데이터들이 직접 주식을 움직이기 시작할겁니다. 경기침체를 반영하는 통계들과 인플레이션을 시사하는 통계들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며 그 우열에 따라 시장이 왔다갔다 하는 국면으로 변화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작년 채권시장은 경기침체를 막연하게 기다리고 상상만 하며 시장금리를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상력에 의해 결정되는 금리의 움직은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작년 내내 침체 레토릭은 강력한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넘어서지 못했지요. 올해는 단순한 레토릭이 아니라 가시적인 통계자료로 경기침체의 진행이 확인되기 시작합니다. 당연히 인플레이션과 침체에 대한 시장의 관점이 더 격렬하게 싸울겁니다. 그런 피터지는 싸움판에 연준의 제한적인 영향력은 끼어들 틈이 없을겁니다. 그게 이번주 채권시장의 움직임을 보면서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