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남수단 독립일입니다.

수단은 아프리카에서 영토가 가장 큰 나라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것 외에도 제가 접하고 있는 수단이라는 나라의 이미지는 이태석 신부님이 의료선교를 하셨던 곳이라는 정도,, 그 곳이 매우 가난한 나라라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제부터 언론에서 그 수단이라는 나라로부터 남수단이 독립을 공인받고, 오늘이 그 독립을 선포하는 독립일이라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사연을 들어보니 남수단은 참으로 기구한 운명의 역사를 가지고 있더군요.

수단은 영국의 식민지로서 철저하게 남부와 북부를 분할해서 통치해 왔더군요. 북부는 교통의 요충지라는 점을 활용해서 많은 투자를 해서 일찍부터 정유공장 같은 산업단지를 조성해 왔습니다. 반면, 남부 수단은 이런 핵심 식민지로서 통치한 게 아니라,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와 같은 동아프리카 전략, 즉 자원약탈을 위주로 하는 식민지 취급을 하며 다스렸었다고 합니다. 애초에 북쪽과 남쪽은 전혀 다른 지역이고 문화나 인구구성도 전혀 달랐거든요. 애초에 “수단”이라는 하나의 지리적 특성을 가지는 지역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고, 그냥 영국인들이 그렇게 선을 그어서 관리하던 편의상의 구분에 불과했다는 게 정확할 겁니다. 특히 남부와 북부 사이에는 종교가 완전히 달랐는데 북부는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이 많은 반면, 남부는 이슬람 보다는 토착종교이며 소수 기독교인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수단의 경제는 석유를 수출하는 것이 주력산업인데 이 석유는 거의 대부분이 남부에서 납니다. 게다가 물이 풍부해서 곡창지역도 남부에 주로 집중되어 있지요.

2차대전이 종식되고 아프리카의 식민지들이 독립이 하나 둘 독립 되던 때, 영국은 애초에 해 왔던 대로 북부와 남부 수단을 다른 독립국가로 만들려 했지만, 북부수단의 압력과 로비로 결국은 남수단과 북수단을 하나의 국가로 선포하게 됩니다. 북부수단으로서는 남수단의 막대한 석유자원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지요.

또한, 핵심권부와 정부를 장악한 건 당연히 산업시설과 기업체, 그리고 교육 행정기관을 독점한 북부쪽 사람이었고, 이들은 통합된 수단을 자신들 북부출신 엘리트들이 영구히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많은 작업을 펼쳤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이 국가의 공용어를 아랍어로 정한 건데요, 북부 수단은 이슬람을 믿었기 때문에 아랍어를 쓰고 있었지만, 남부 수단의 교육받은 엘리트들은 영어를 사용했었죠. 그런데, 아예 정부에서는 영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면서 남부출신의 엘리트들을 배제한 거지요.

애초에 수단이 통합된 채로 독립되었을 때에는 연방제를 선택하고 남부 수단의 실질적인 자치권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이 약속은 거짓이었으며, 북부엘리트가 장악하던 수단정부에 의해 약속이 일방적으로 파기된 후부터 지리한 내전이 시작됩니다.

이런 내전은 장장 17년을 끌면서 나라를 초토화시킨 끝에 겨우 72년에 평화협상이 채결되어 전쟁이 끝나는 듯 했으나, 이번에는 북부 엘리트들의 종교적인 열망이 남부를 괴롭힙니다.

83년 니메이리 정권은 수단을 “회교국가”로 선포하고,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강제로 수단 땅 전체에 도입하게 됩니다. 당연히 자신들의 종교와는 하등 상관없는 이슬람을 강요하면서 이에 저항하는 남수단인을 향해 수많은 잔학행위와 학살, 그리고 남수단을 3개 지역으로 분할, 고립시켜 통치하는 등의 조치를 결행하게 됩니다.

이와 동시에 남부수단은 수단인민해방군을 결성하고 남부수단을 독립시킨다는 목적 하에 2차내전에 돌입하게 됩니다.

이러한 내전 중에 수많은 민간인학살과 이재민 발생으로 참혹한 광경이 연출되면서 특히 남수단 지역의 민생은 피폐해 질 대로 피폐해 졌으며, 아이들에게도 총을 들려서 싸우게 만들 정도로 인권이 땅에 떨어지는 상황에서 이태석 신부님이 바로 남수단 지역으로 의료선교를 가셨던 겁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독재자 니메이리는 이후부터 지금까지 장기집권에 성공할 뿐 아니라, 천연자원을 미끼로 구미 선진국이나 소련, 중국등에서 무기를 조달받기까지 매우 성공적인 집권기간을 만끽하고 있었지만, 최근 미국에 의해 경제제재조치를 당하게 됩니다. 다름아닌 빈 라덴의 망명을 받아주고 자국에서 알카예다를 지원했다는 걸 빌미로 경제봉쇄를 당하면서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이 때 이 니메이리의 구원자로 나서게 된 게 다름아닌 “중국”이었죠. 중국은 석유만 준다면 이런 상황 따윈 안중에도 없었고, 구미 국가들이 설정해놓은 선악구분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에 니메이리가 독재자던 아니던 아무런 상관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일이 엉뚱하게 돌아가게 된 게, 이제 구미국가들이 또다시 아프리카의 민주화물결을 계기로 수단의 상황에 대해 관심이 집중된 겁니다. 더 이상 수단을 이대로 놔 뒀다가는 중국이 모든 기득권을 독식하게 생겼다는 걸 알고, 이제는 지금까지 크게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2차 내전과 남부수단의 독립에 신경을 쓰면서 니메이리를 압박하게 됩니다. 최근에는 UN에서 현직국가원수로서는 최초로(피노체트는 현직이 아니라 퇴임 후였죠) 체포영장을 발부하게 됩니다.

이런 압박과 관심이 겹쳐지면서 드디어 니메이리는 남수단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드디어 오늘 독립이 선포된 것이죠.

그러나, 이렇게 독립이 공인되었다고 해서 남수단에 평화가 찾아오고, 지금의 극심한 가난과 혼란에서 자유로워지게 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당장 또다시 북부수단과의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거든요. 남부수단에서 나는 석유의 절반은 북부수단의 것이라는 협상을 독립협상 중에 관철시킨 상태에서 이것도 모자라 남부수단의 곡창지대 대부분을 북부수단의 땅이라고 니메이리가 일방적으로 선언한 상태에서 한 판 전쟁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게다가, 신생 국가로서의 미숙함이나 외국자본의 발호로부터 자국의 국토와 국부를 얼마나 자주적으로 지켜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기 때문입니다. 구미국가들이 남수단의 독립을 전적으로 지원해 준 이유가 조지 클루니, 엘튼 존, 믹 재거 같은 몇몇 세계적인 연예인이나 유명인들의 운동 때문일 리는 없으니까요.

아직도 세계에서는 이렇게 너무나 어려운 정치상황으로 신음하고 있는 나라들이 많습니다. 당장 이들에게 이태석 신부님이 일으키셨던 기적(총을 들던 아이들이 악기를 들고서 독립기념식에서 당당히 연주하던 것 같은)을 일으키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이런 이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보내는 것 만큼은 필요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수단의 상황에 대해 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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