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E 30 넘으면서 적정PER인 종목들을 스크리닝해놓고 시간 날 때 재무제표와 사업보고서 훑어보고 있습니다. 딱히 제가 효과적인 스크리닝툴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 충분한 여유자금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평소에 눈여겨보면서 기회가 왔을 때(시장이 전반적으로 크게 빠지는 상황) 보유종목 추매만 할게 아니라 새로 들어갈 종목들도 봐두는게 좋겠다 생각해서 짬짬이 사업보고서를 보고 있습니다.
그러다 들여다 본 게 마크로젠이라는 회사의 사업보고서와 재무제표였습니다. 사업 내용만 보면 세계5위의 유전자시퀀싱업체이고, 시장규모도 계속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게 해당 업체는 1997년 설립해서 2000년에 상장된 기업,,, 20년이 넘는 기간을 존속한 기업인데, 그 동안의 꾸준한 성장을 전제한다면 매출액이 1천억대로 작습니다. 주요 매출처가 대학교와 연구소라는 점에서 성장 자체는 꾸준하지만 급격한 시장의 확대나 독점을 통한 이윤 극대화라는 어려운 영업환경이 아닌가 의심되는 부분입니다.
어찌 되었든 매출액 자체가 꾸준한 성장을 이어간다면 영업환경이 어떻든 실적으로 다 씹어먹는거라 할 수 있으니 문제가 안되겠지만 이게 연간 매출액을 보면 좀 긴가민가 한게 꾸준한 우상향과는 다른 패턴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매출이 기복이 심하더라도 영업이익률이나 순이익이 꾸준히 안정적이라면 그 또한 매력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영업이익도 우상향이 아니고 순이익은 극단적으로 기복이 심한게 2019년에는 큰 적자를 기록했다가 2020년에는 그 전까지는 전혀 보여주지 않았던 기록적인 순이익이 나왔습니다. ROE 30 이상 종목이라고 되있는 이유는 작년에 갑자기 늘어난 이익 때문이라고 봐야 합니다.
왜 작년에 이익이 이렇게 늘어났는가를 보면 가장 큰 항목이 “중단영업이익”으로 850억, 발표한 2020년 순이익 879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래 종속회사였던 소마젠의 지분율이 줄어서 지배력을 상실, 관계기업으로 바뀌다보니 소마젠의 영업을 중단하면서 한꺼번에 회계처리를 하면서 엄청난 이익을 올린것처럼 된겁니다.
반면 영업 현금흐름은 2016년의 212억 이후 계속 내려가다 2020년에 겨우 2016년 수준인 206억으로 회복되었는데, 2021년 1분기와 2분기에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24억과 72억입니다.
문제는 2021년 1분기와 2분기의 순이익입니다. 모처럼 2분기까지 누적영업이익이 93억으로 좋게 나와줬지만 그걸 다 까먹고도 모자라 순이익이 -40억이 나오는겁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기타손실”항목으로 무려 -120억이라는 숫자가 찍혀있기 때문인데, 재무제표 주석을 다 훑어봐도 이 기타손실이 어떻게 해서 120억원이 나온 것인지 아무런 설명이 안되있는겁니다.
제가 지금까지 재무제표를 한 50건 정도는 봤는데, 영업이익을 초과해서 적자가 날 정도로 크게 나오는 손실이나 이익항목에 대해 주석에서조차 단 한줄도 써놓지 않는 재무제표는 처음 봤습니다. 좀 황당하더군요.
http://dart.fss.or.kr/dsaf001/main.do?rcpNo=20210323900461
위 링크는 마크로젠의 작년도 감사보고서입니다. 보면, 직전사업년도인 2019년에 “내부회계관리제도 검토의견 비적정 등 여부” 항목에 해당이라고 표시되어있습니다. 2019년에 이미 내부회계관리가 적정하지 않다는 주의를 회계감사를 통해 받았음에도 여전히 불친절함을 넘어 비밀스럽기까지 한 회계정보 공개수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기손익-공정가치금융자산평가손실이 80억이라고 나와있기는 한데,보유중인 주식이나 단기채권 중 어떤 자산이 손실이라는 말도 없고, 액수도 딱 떨어지는게 아닙니다(기부금 20억과 합쳐도 100억에 불과, 나머지 20억은?)
이 기타손실이 뭘까 하도 궁금해서 종토방에다 질문을 해봤는데 알고 답을 주는 분들이 아무도 없더군요. 어떤 분은 관계기업의 소마젠에서 발행한 전환사채의 평가손실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기타손실이 일회성으로 크게 늘어나야지 1분기와 2분기 계속해서 늘어난다는 것도 납득이 안가고, 도대체 얼마나 전환사채를 크게 발행했길래 평가손실로 120억씩이 잡힌다는 건지도 잘 모르겠더라구요.
결국, 이 기타손실의 정확한 내역을 알기 위해서는 회사에 직접 전화해서 알아보는 수밖에 없겠지만, 굳이 그런 수고까지 해야 할 이유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타손실의 내역을 주석에서라도 정확하게 기재해놨다면 영업현금흐름이 양호한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순이익만 훼손되어 주가가 저평가상황에 빠지는 경우들도 많기 때문에 거기에서 투자기회를 잡을수 있습니다. 투자자에게도 유리한 정보일 뿐 아니라 회사 차원에서도 나쁜 정보공개가 아닐수 있다는 거지요. 그럼에도 그런 회계데이터 공개에 아무런 관심이 없든지, 아니면 혹여 숨기고 싶어하는 의도가 있는거든지 어느쪽으로 봐도 딱히 더 알아볼 이유는 없는거겠다는 결론을 내리는 건 달라지지 않는다 봤습니다.
물론, 회사를 직접 방문해서 회사 분위기를 본다든지 회사가 제공하는 서비스와 제품을 제대로 파악하는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분석을 한다든지, 다양한 각도와 관점에서 정확히 회사를 판단하고 평가하는게 투자성공에 더 도움이 될수도 있을겁니다. 저처럼 사업보고서와 재무제표자료만 가지고 왜곡된 시각으로만 회사를 바라보면 정말 좋은 투자기회를 놓치는 일도 빈번히 발생하겠죠.
하지만, 이렇게 재무제표를 성의없이,, 혹은 의심스러운 맥락으로 공개하는 회사, 이로 인해 이미 한번 감사보고서에서 이를 지적당한 회사를 그냥 고민하지 않고 걸러내는 습관도 효율적인 안전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기사, 이미 ROE30 이상이라는 스크리닝 기준에서부터 이익이라는 게 일시적인 평가이익(중단영업이익)에 의한 것이었으므로 딱 그 지점에서 사업보고서를 덮고 넘어갔으면 시간을 더 절약했을텐데, 아무 생각없이 습관처럼 최근분기 주석까지 읽다 찜찜함만 커져버린 건 수업료로 치고 넘어가야 할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