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거탑의 장준혁이 상징하는 것

오늘 처음으로 하얀거탑 영상을 봤습니다. 며칠 전부터 보기 시작하다 오늘에서야 20화 마지막 편을 봐가는데 장준혁의 마지막 순간들을 보니 눈물이 나더군요. 아, 저렇게 대단한 사람, 아둥바둥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 자기 자신을 철썩같이 믿고 확신하는 사람도 죽는구나 하는 그런 느낌 말이죠. 워낙에 제가 드라마를 안보기도 하지만, 제가 기억하기로 드라마를 보고서 울었던 게 아마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만큼 김명민씨의 연기가 강렬한 것도 있고, 극중 장준혁의 모습이 우리들의 폐부를 자극하는 것도 있고 그런거겠죠.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고 나서 천천히 스토리를 되짚어 보면서 무언가 거슬리는 점들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하더군요.

일단 최도영이라는 대척점에 서있는 인물의 부자연스러움이 그렇습니다. 드라마 각본을 쓴 사람 입장에서야 장준혁의 대척점을 만들기 위해 그런 인물을 설정한 거겠지만, 얼핏 보면 고결하기만 한 것같은 그런 성격이 왜 자신의 가족들에게는 아무런 고민없이 일방적으로 관철되기만 하는게 당연하듯이 그려지는가 하는 부분이 그렇죠.

또 거슬리는 점은 후반부 재판의 발단이 되는 폐생검 여부에 대한 부분이죠. 1센티미터가 안되는 작은 단일성 결절에서 의사들이 볼 때 결핵 흔적이라고 볼 만큼 전형적인 양상이 보였는데 그걸 가지고 폐생검을 제안하는 건 너무 억지설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하기사, 이야기를 만들어가기 위해서야 조금씩이라도 부풀려지는 설정이야 당연한 거긴 하겠지만, 드라마 전반을 걸치면서 의학적으로 오류를 찾기 어려운 정교한 고증에 놀랐던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죠.

사망원인도 전혀 관계없는 색전증이었고, 정말 현실에서 재판이 벌어졌다면 그런 결절을 생검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주의의무”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게 될까,,, 의문입니다.

다른 사소한 것들이야 다른 영상물에 비하면 정말 준수한 편이고, 병원 돌아가는 시스템이나, 학장이나 원장도 아닌 과장을 뽑기 위해 선거씩이나 치루는 광경이 우리나라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야 원래 일본 원작이 있으니까 감수할 수는 있겠죠.

그러나, 생각을 더 해 가면서 불편함이 점점 더 커져가는 이유는 아마도 장준혁이라는 인물 그 자체에서 찾아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장준혁이 아무리 아름답게 미화된다 하더라도, 그가 과장선거에 승리를 하고 재판에서 이기는(1심은 이겼고, 그가 암에 안걸렸다면 상고에서도 이겼을 겁니다. 장준혁측 변호사의 상고 대비한 논리가 딱 짜여져 있더군요.) 그가 보여준 승리의 과정은 마냥 합리화 시켜줄 수 없는 부당하고 선하지 않은 것들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 관객들은 그러한 과정을 주인공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해 나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타협해야만 하는 하나의 현실로 자연스럽게 합리화시켜나가게 되죠. 그런 합리화의 과정이 분명 존재했기 때문에 나중에 장준혁의 죽음에 대해서 슬퍼하거나 최소한 숙연할 수 있는 거죠.

신파조로 나가고 선악구분이 뚜렷한 단순한 구도의 드라마들과는 달리 장준혁이라는 주인공은 우리가 닮고 싶은 면과 우리가 항상 당면하면서 뿌리치지 못하는 압력과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면을 같이 가지고 있습니다. 드라마가 시작한 출발점에서의 장준혁은 우리들 자신과 하나도 다른 게 없는 거죠. 그 상황에서 장준혁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자신만의 정의를 관철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악이라 정의하는 행동을 스스럼없이 저지릅니다. 그에게 양심의 가책은 있을 수 없는 쓰레기에 불과한 것이죠.

전반부의 과장선거전에서 수많은 동료나 선배의사들이 장준혁을 중심으로 파벌을 만들며 온갖 권모술수를 저지르지만, 드라마에서는 그야말로 “의사들” 끼리의 정치놀음이기 때문에 누가 직장에서 쫓겨나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여야 한다거나 부당함과 억울함으로 자신의 생명을 던지는 걸 고민하기까지 하는 사태까지 발전하지는 않았죠. 그러나, 이게 의사사회가 아닌 직장이나 기업체, 또는 국가의 단계로 넘어간다면 한 사람의 야망이나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이런 편법과 권모술수가 펼쳐질 때 얼마나 파괴적이고 무서운 결과가 나올 것인지는 분명한 거지요.

장준혁의 모습에서 자기 자신의 처지와 공통점을 찾아내어서 공감하고, 그의 그러한 “악행”의 명징함을 망각하게 되는 심리기제를 돌아보면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이만큼 잘 제시해 주는 사례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장준혁 과장이 만약 담관암에 걸리지 않거나 완치를 받고서 재판을 이기든 지든 치명적인 타격을 입지 않은 채 계속해서 그가 추구해 왔던 “승리”를 거둔다면 결국 끝에 남는 종착지는 자신의 이상을 맘껏 펼치며 사람들을 구하는 이상적인 명의가 아니라, 부원장이나 과장 선거 때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행태를 보였던 정형외과 과장이 될 수 밖에 없지요.

당장 장준혁이 과장이 되니까 그를 온갖 비리와 권모술수로 도와주었던 이들이 가차없이 투자한 만큼 봉을 뽑아가지 않던가요? 장준혁이 원하는 승리에는 언제나 그러한 댓가가 필연적으로 따라오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런 댓가를 치루다 보면 결국에는 자신 스스로도 부원장이나 정형외과 과장이 되는 수 밖에 없는 거지요.

그런 장준혁의 숙명을 막아낼 수 있는 존재는 결국 “담관암”이라는 사신, 즉 죽음 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주인공이 그 시점에서 죽는 것은 필연인 겁니다. 그 이상을 끌다 보면 아무리 그를 미화하더라도 시청자들 눈에 장준혁은 결국 부원장이나 정형외과 과장처럼 비쳐지게 되어 있으니까요.

누구라도 그런 필연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그래서 결국 받아들이고 합리화시킬 수 밖에 없는 “평범성”을 지닌 악이야 말로 가장 무섭고 공포스러운 악의 구현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우리의 양심이라는 방벽을 허물어뜨리기 가장 쉬운 악이 바로 이런 평범하고 친근한 모습을 한 악일 테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악에 대항하는 모습을 드라마가 제시해 주느냐 하면, 그 부분이 가장 결정적으로 결여되었기 때문에 불편한 마음이 크게 드는 겁니다. 장준혁의 대척점에 서있던 최도영이 그런 평범한 악의 대안이 될 수 없는 건 그의 오로지 고귀해 보이기만 한 그의 행동에서는 평범한 일상에서 주변사람들을 향한 사랑과 고민이 거세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죠. 그의 아내와 딸아이를 위해 그가 내 보였던 고민이 드라마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은 것은, 평범한 우리들이 그런 고민을 하게 되면 백이면 백 현실과 타협하게 된다는 것을 작가가 간파했기 때문이라 봅니다.

장준혁이라는 친근하면서도 평범성 가득함으로 인해 거부하기 힘든 악을 제시해 놓고서, 거기에 대한 정확한 대안이나 답은 내놓지 못한 채 최도영이라는 인위적이고 인공적인 고결함만을 대척점에 달아놓는 드라마의 전개가 씁슬하기까지 한 느낌은 드라마를 보고 한참 뒤인 지금에사 생겨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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