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으로서의 진상

지금은 절판되어서 나오지 않지만, 리처드 코니프가 지은 “부자”라는 책은 지금까지 제 인생에 성경 다음으로 큰 영향을 미친 책입니다. 평범한 인간이 권력과 돈이라는 환경의 변화에 노출되기 시작하면 새로운 형질이 발현되어 전혀 다른 종으로서의 “부자(권력자)”로 변질되기 쉽다는 사실을 진화론과 비교생물학의 관점에서 흥미롭게 풀어간 책이죠.

최근 세간에 화제가 되었던 대기업 임원의 진상짓에 많은 분들이 “그 정도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저런 진상짓을 한 걸까” 라는 의문을 품고 계실지 모르지만, 오히려 그 정도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들일 수록 그런 진상짓을 할 확률이 올라간다는 게 최근의 뇌연구가 밝혀낸 사실입니다.

조직 내에 보스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칭찬과 아부만 듣고, 자신은 지시만 내리는 일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자신이 아닌 타인의 감정을 인식하는게 어려워지고 자기자신이 진상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향이 나타나는데,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뇌기능MRI 영상을 보면 전두엽에 있는 안와전두피질(orbitofrontal cortex)이 손상되어 있는 사람과 같은 패턴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안와전두피질이라는게 안와라고 해서 눈하고 관련이 있는건 아니고, 뇌 전두엽의 밑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피질입니다. 아직도 많은 연구가 진행중이고 완전히 해독된 건 아니지만, 이 안와전두피질이 담당하고 있다고 알려진 기능은 이런 것들입니다.

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738981

즉 감정을 조절하고, 공격성, 공포, 감정적 공감에 관여하는데, 여러가지 감정들 중 특히 분노의 공감에 관여한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감정조절을 이 안와전두피질이 전적으로 간여를 하는 건 아니고, 뇌의 다른 부분들과 함께 연결되어서 협업을 하지만, 이 부분이 손상된 사람들이 감정의 조절, 특히 분노의 조절과 억제에 결함을 일으킨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런 안와전두피질이 손상되거나 기능을 못하게 되는 대표적인 경우가 약물중독, 게임중독과 같은 중독자인데, 이렇게 오랫동안 권위의 혜택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 또한 마약중독(특히 코카인중독)이나 게임중독, 인터넷중독과 같은 효과를 초래하며 인간의 뇌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버리게 된다는 건 생각해 볼 게 많은 사실이죠.

물론, 권력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모든 사람이 그러한 중독현상을 일으키는 건 아닙니다. 젊은 시절의 교육이나 절제력의 훈련정도, 권력에 노출되기 이전의 감수성과 공감능력 수준등과 같은 수많은 요소들에 의해 이러한 성향의 발현이 전혀 안될 수도 있고, 너무나 급격하게 이런 식의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에, 권력에 노출된 인간 모두를 경원시 할 필요는 없을겁니다.

하지만, 건강한 사회라면, 이런 심리적 질병에 빠진 사람들이 계속 그 질병에 빠져있으면서 그 질병을 확산시키고 전염시키는 사태를 막고 제어할 수 있어야 하겠죠. 우리가 뇌 안에서 이런 작용들을 규명하고 이해하기도 훨씬 전부터 이미 경영학에서는 그러한 병증에 빠진 사람들이 권력을 계속 잡고 있을 때에 일어나는 폐해를 이해하고, 그런 병증에 빠진 인간들을 선별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었으며, 이들을 하루속히 시스템에서 배제해야 하는 당위를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회사 안에서는 번듯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약자의 위치에서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 이를테면 웨이터나 청소부 같은 이들에게 전혀 딴판으로 대하는 경우 이런 사람들을 요직으로 승진시켜서는 안된다고 하는게 이른바 “웨이터 법칙(water rule)”이죠. 이번에 일어났던 대기업임원의 진상을 통해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이 웨이터법칙에 대해 주목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사회가 건강해야 이런 병증이 권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 사이에 확산되고 전염되지 않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당장 보직해임된 상무라는 분이 정말로 해임되고 기업판에서 영구퇴출될 지 의문스러운 상황입니다. 그 상무라는 분이 상무가 되는 과정이 실력과 인망으로 상무가 되었던게 아니라 윗사람에게 아부하고 아랫사람의 노력을 자기 성과인 것처럼 포장하며 파벌에 기대어 승진해 왔던 게 컸다고 한다면(그런 사람일수록 웨이터 법칙을 훌륭히 따랐을테죠), 여론이 잠잠해진 시점을 틈타 다시 한 번 화려하게 본인의 회사에서건, 아니면 다른 회사에 가서건 복귀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게 우리나라의 현실이자 현주소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정치판도 그렇고, 기업들 사이에 굳어질 대로 굳어져 있는 갑과 을 사이의 수많은 불합리한 관행들을 봐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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