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소득주도성장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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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링크는 제가 2019년 6월20일에 클리앙에 썼던 글입니다. 당시 문재인정부 전반기를 지나가는 시점에 소득주도성장이 어느정도 성과를 거뒀다고 주장하는 정부의 홍보 브리핑자료조차 조금만 들여다보면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정책구호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는게 해당 글의 내용이었습니다. 정권이 출범한 2017년 이후 최저임금을 2년연속 크게 늘렸는데 가장 소득이 낮은 1분위계층의 재산소득과 근로소득은 오히려 크게 줄고, 이를 보충하기 위한 공공이전소득만 늘어난 상황, 브리핑에서는 1분위와 5분위의 소득격차가 줄어들고 있음을 홍보하고 있지만, 그렇게 격차가 줄어든 원인이 1분위의 소득증가가 아니라 5분위의 금융소득과 재산소득이 줄어들기 시작해서였다는 것은 조중동같은 수구언론이 아니라 당시 문재인정부의 홍보자료에서도 고스라니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2019년 6월경이면 이미 위의 글에 달린 댓글에도 썼지만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구호 자체가 정부 홈페이지에서 슬그머니 사라지고 “혁신성장”만 남아있던 시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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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후 금융위기 때를 제외하고 거의 매년 30만명 이상 증가하던 취업자가 갑자기 9만7천명 상승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저 2018년이 얼마나 드라마틱한 해였는지 기억이 안나실 분들이 많을텐데, 연초부터 고용통계가 안좋게 나오기 시작하자 2월에는 공무원시험 연기 때문이다, 5월에는 봄비가 많이 내려서 그런거다, 8월에는 폭염 때문에 일시적으로 떨어진거다,,,, 계속 통계가 안좋게 나오니 마지막엔 통계청장을 경질,,,,

하지만 아무리 현실을 가리고 싶어도 현실을 가릴 수는 없고, 결국 2018년의 고용통계는 저렇게 되버렸습니다. 더 심각했던 건 취업자 증가분 자체가 아니라 세부항목이었습니다. 전체 고졸자 수는 6만명 줄어든 것에 반해 고졸취업자 수는 17만명이 줄어들어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계층이 되었고, 산업별로는 제조업이 5만6천명 감소, 서비스업이 6만명 감소로 최저임금의 상승으로 취약해진 곳이 어느곳이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결국, 2018년 최종적이 고용통계를 발표하기 얼마 전인 11월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장하성 정책실장이 경질되면서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담론은 정부 내에서 완전히 침묵상태로 빠져듭니다.


결과적으로 참여정부의 발목을 잡는 실패한 정책이 되버렸고, 애초에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주류경제학의 입장에서는 원인과 결과가 뒤집혀있는 형용모순의 괴랄하다는 지적, 그리고 출범 초부터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를 추진하겠다는 구체적인 설명이 전혀 없었던 점은 무척 안타깝고 아쉽습니다만, 이명박근혜정권 때처럼 단기적이고 근시안적인 부양책만 쏟아내며 성장과 분배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는 태도에 비하면 최소한 뭔가를 시도하고 치열하게 고민했다는 점만큼은 평가해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1212500101

당시 소득주도성장을 공격하던 보수언론들과 야당을 향해 “이 정부(문재인정부)가 해놓은 게 아무것도 없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그러나 이명박근혜정부가 해놓은 일 중 여러분들 기억에 남는게 하나라도 있나? 그들은 단기적 부양에만 목을 메달고 있었을 뿐 우리 경제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차분하게 위기의 본질을 분석하고 효과적인 대응책을 찾으려 하는 자세다. 나라 경제가 곧 망한다는 식의 선동적인 발언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라고 일갈하던 이준구 교수의 지적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일단 이명박근혜정권이 단기적인 경기부양 외에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해서 이번에도 민주당이 소득주도성장 같이 어떤 나라에서도 해보지 않은 시도들이나 주류경제학 이전에 경제학 교과서수준에서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비주류경제학을 기반으로 해서 공약을 들고 나오게 된다면 선거에서 지는 건 둘째 치고, 설령 총선에서 이겨 다시 다수당이 된다 해도 대통령선거에서 승리를 담보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이미 실험적인 정책으로 한번 얻어맞은 과거를 교훈으로 새기지 못하고 “그 때 소득주도성장이 왜 실패했는지”를 되짚어보지 않은 채 또다시 이해불가능한 정책을 들고 나온다면 누가 또 새로운 실험에 동참하겠다며 기꺼이 표를 줄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새삼스레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단어가 잊혀지지 않고 계속 언급되어야 하는 이유는 여전히 소득주도성장이 “실패하지 않았다”는 망상에 빠져서 재경부 마피아들의 음모나 민주당 내 보수적인 계파들의 압력에 어쩔 수 없이 굴복했기 때문에 죄초된거라는 상황인식을 고수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번에도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워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는 현실 때문입니다. 

미국이나 일부 선진국이 최근 최저임금을 가파르게 올렸는데도 오히려 고용이 늘어났다는 게 “실증”되었다며 “실증”이라는 단어를 모욕하는 주장을 펴는 사람이 실제로 있더라구요. 아니, 그렇게 최저임금을 올리면 고용이 늘어나고 소득이 늘어나는데 왜 전세계 각국은 그런 좋은 정책을 다들 따라하지 않고 있는지,,, 그 이전에 지난 2017년과 2018년 문재인정부를 괴롭혔던 처참했던 고용통계는 경질되었던 통계청장이 통계조작을 했다는 건지,,, 

https://www.khan.co.kr/national/labor/article/202305171449001

그런 황당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도대체 무얼 근거로 그러는건가 봤는데, 위의 기사에 나오는 연구결과를 가지고 그렇게 강변하는게 아닌가 싶더라구요. 하지만, 위의 연구는 “최저임금을 크게 올리면 고용이 늘어난다” 주장을 실증하는 데이터가 아닙니다. 그렇게 최저임금을 크게 올렸더니 고용이 늘어난 지역도 “일부”에 불과했고, 결론은 기사 후반부에 언급하고 있듯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실업효과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임금수준이 어디까지인지는 실제로 올려보면서 확인해봐야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문재인정부 때 그렇게 올려보면서 고용상황이 악화되는 인상률이 어느정도인지를 이미 확인한거지요.

지금 해결해야 할 진짜 문제는 윤석열정권이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하려 시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기업들이나 자영업자들의 편의에 맞춰서 차등적용을 하기 시작하면 최저임금 자체가 1만원이 되든 1만5천원이 되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냥 그 자체로 무력화되버릴 수 있는 사안입니다.

부끄러운 흑역사를 부끄럽다고 없던양 무시하고, 실패했던 과거에서 교훈을 얻는게 아니라 실패한 게 아니라는 합리화로 실수를 반복할 지언정 자존감을 희생할 수는 없다는 그런 여유는 지배층과 기득권세력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그들의 부패와 무능을 심판하고 대안이 되겠다 나서는 사람들은 그들보다 훨씬 더 엄중한 잣대를 통과해야만 유권자들에게 관심과 지지를 받는 건 당위적으로도 문제될 게 없는 역사의 보편적인 원리입니다.

이렇게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어디로 나아갈 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기는 커녕, 우리 편이 더 유능하고 정당한데 왜 국민들은 우리를 지지하지 않고 유권자들은 우리를 선택하지 않는가 한탄하는 걸 넘어서 유권자들을 개돼지들이라고 힐난하는 태도들을 보이는 사람들은 이들을 품고 있는 정당이나 파벌들에게 걸림돌이자 신발 속 모래에 불과한 존재들이라고 봅니다. 윤석열정권이 이렇게 광범위하게 삽질을 하고 있는데도 흔들림이 별로 없는 이유는 다른 데 있는게 아니에요. 민주당이 가야 할 길을 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야 할 길이 코어 지지자도 아닌 제가 생각하고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습니다. 민주당을 이끌어갈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민주당 당원들이죠. 다만, 그렇게 핵심 지지자를 자처하는 분들이 정작 민주당의 진로에 대해서 하등 고민을 하지 않고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이 최고이니 이들이 어디로 갈 것인지 방향만 정해주면 그대로 따라가겠다는 식으로 검증과 비판을 건너뛰려는 자세를 취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는겁니다. 

그런 식으로 검증과 비판, 그리고 치열한 토론이 없으면 민주당이라는 정당 내에서는 의견이 일치될 지 몰라도, 유권자들을 제대로 설득하는 건 실패할겁니다. 솔직히 탄핵정국이 아니었다면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논리적으로 성립하기 어려운데다 어떤 나라에서도 시도해보지 못했던 파격적인 경제실험에 공감해서 유권자들이 민주당에 표를 주었을까요?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한 것도 코로나 판데믹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것이 컸지 경제정책이 성공해서 압승했다고 볼 수는 없잖아요.

결론은 민주당은 해야 할 일도 많고, 갈길도 멀다는 겁니다. 지금이라도 정신차리고 제대로 시작해야 해요. 윤석열정권이 이렇게 나라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는데도 총선에서 패배하면 민주당 지도부는 뭐라고 변명할거에요? 적어도 대다수 유권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정책공약을 지금부터라도 고민하고 철저하게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해봅니다. 하다못해 잘못했던 것들은 잘못했다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새출발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주면 마음 편하게 표를 찍어줄텐데,, 앞으로 어떻게 하는지 지켜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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