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코어CPI가 잡히지 않으면서 고용통계나 소비지표들이 여전히 강하다보면 사람들은 당연히 강한 경기침체로 물가가 하락하는 상황보다는 인플레이션이 잘 잡히지 않으면서 경기침체에 빠지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연상하게 마련입니다.
이미 몇달 전부터 민간소비나 고용상황이 계속 좋을수밖에 없는 이유 등을 근거로 스태그플레이션을 점치는 전문가들이 점점 늘기 시작했고, 저도 그런 전문가들의 주장과 논거를 진지하게 소개해왔습니다.
이렇게 경기침체보다 더 강한 인플레이션 시나리오가 사람들에게 회자될수록 미국채는 투자자들에게서 소외되는 반면, 주식은 채권 대비 타격이 덜할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전제되는 경우 대게 달러화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미국 주식보다 우리나라같이 재정건전성이 좋은 국가의 국채나 주식이 각광을 받는다는 주장도 충분히 설득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인플레이션이 고착화될지 모른다는 우려와 불안이 퍼지는 것과, 실제로 몇 년 후 까지도 스태그플레이션이 지속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 지금처럼 인플레이션이 잡히느냐 아니느냐의 갈림길에 있을 때 연준이 과거 볼커처럼 행동할 지, 아니면 아서 번즈처럼 행동할 지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인플레이션을 제대로 잡지 못했을 때 연준이 받게 될 비난도 비난이지만, 연준의장이 파월 개인의 명예와 의장 퇴임 이후의 입지를 생각하면 가장 선택하지 말아야 할 옵션이 인플레이션을 방치하는 선택입니다.
- 연준과 바이든 행정부가 은근슬쩍 유동성을 계속 풀면서 경기부양에 집착하고 있다는 주장들이 있는데, 이런 주장이 정말이라면 당분간 인플레이션은 수그러들지 않은 채 계속 날뛸겁니다. 그렇다면, 그런 상태로 맞이하게 될 내년 하반기의 미 대선을 생각해봅시다. 대선 기간 동안 최대의 이슈는 단연 인플레이션이 될것입니다. 이미 지난 중간선거 때에도 인플레이션이 가장 큰 선거쟁점이였고, 이 때문에 공화당이 압승할 분위기였지만, 트럼프가 너무 나대는 바람에 신승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중간선거를 지나 대선에서까지 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고 선거이슈로 이어진다는 건 민주당 입장에서는 경기침체나 금융위기보다 훨씬 더 큰 부담입니다. 금융위기는 기득권 세력이나 금융자본의 무책임과 모럴 해저드 탓이라고 화살을 돌릴수 있으나, 인플레이션은 100% 재정을 엄청나게 써댄 민주당과 바이든 탓이거든요.
- 섯부르게 올해 초부터 경기침체를 예측했던 사람들이 틀렸던 이유는 특별히 확신할만한 근거도 없이 단지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올렸다는 사실만을 가지고 고용상황과 민간소비가 빠르게 가라앉을거라고 단정했기 때문입니다. 고용과 소비가 별다른 변화를 보일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았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경기침체를 확신했던 이유는 이들 고용과 소비 지표들이 대부분 “경기후행지표”이기 때문입니다. “경기침체를 전망할 때 경기후행지표들은 크게 신경 안써도 된다,,,” 여기까진 오류가 없지만, 그것이 경기침체가 빠르게 올거라는 전망의 근거가 된다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지요. 그러데, 이제 턴이 바뀌어 여전히 강력한 고용과 소비가 지속되면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이야기가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경기후행지표들을 근거로 경기를 전망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이들 또한 오류인건 마찬가지입니다.
미래를 경기후행지표들을 가지고 예측하려는 행위는 방향성이 어느쪽이건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인플레이션이라는 현상도 공급과 수요 두 측면에서 제각각 다른 방향의 압력이 작동할 수 있습니다. 한 쪽에선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거나, 전쟁 또는 천재지변이 일어나 공급망이 붕괴되며 인플레이션 압력이 강해지더라도, 다른 한 쪽에서는 자산가격이 하락하고 실업자가 늘면서 소비가 꺽여서 디플레이션 압력이 생겨 서로 상쇄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렇게 미래를 예측하는 게 덧없고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어느 쪽에 배팅하는 것이 더 높은 기대값을 취할 수 있는지는 계산할 수 있습니다. 장단기금리차나 현재 주가의 밸류에이션 상황, 유동성 추세 등 다양한 수치들이 인플레이션보다는 경기침체에 배팅하는 게 기대값이 높다는 힌트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이나 인플레이션에 조급한 투자를 하는건 위험할 수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