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에서 장단기 금리 역전(inversion)은 장기금리보다 단기금리가 더 높은 현상을 말합니다. 그러한 역전이 해소되어 장기금리가 다시 단기금리보다 높아지는 것은 스티프닝(steepening)이라 합니다.
그런데, 단기금리가 떨어져서 장단기 금리차가 떨어진다면 이는 채권 투자자들에게는 매우 즐거운 이벤트이기 때무에 가격이 쳐오른다 하여 불 스티프닝(bull steepening)이라 부르고, 반대로 장기채 금리가 올라가서 역전이 깨지면, 채권 투자자들에게 참담한 상황이므로 베어 스티프닝(bear steepening) 이라 합니다. 지금 미국채 10년물과 2,30년물의 금리가 크게 오르면서 바로 이 베어 스티프닝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베어 스티프닝은 양적완화와 같이 인위적으로 채권시세를 조작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경우 종종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연준 같은 중앙은행이 인위적으로 기준금리를 낮추면서 유동성을 공급하는데 당연히 언젠가는 과도한 유동성이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안하는게 이상하지요. 그렇게 중앙정부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올라가면 장기국채는 쓰레기가 되버릴 수 있으므로 아무도 살 사람이 나타나지 않게 됩니다. 실제로 베어 스티프닝 현상 자체가 향후 인플레이션 발생가능성을 시사하는 유력한 현상입니다.
당장 코로나 팬데믹으로 엄청난 유동성을 뿌리기 시작하자 2021 하반기부터 이러한 베어 스티프닝 현상이 계속 심해졌고, 결국 인플레이션은 현실로 다가와 2022년 연준의 가파른 기준금리상승을 촉발하는 방아쇠 역할을 하게 됩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이러한 베어 스티프닝이 발생할 것 같지 않습니다. 기준금리와 3개월물 국채, 그리고 2년물 국채 모두 10년물과 30년물 국채의 금리보다 아직 훨씬 높은 장단기금리역전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건 생각보다 경기침체의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이든 정부가 국채를 예상보다도 훨씬 더 많이 발행하려 하기에 수급요인으로 인해 장기국채의 금리가 올라가는 베어스티프닝의 가능성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있는것이지요.
지금 제기되고 있는 베어 스티프닝의 가능성은 솔직히 매우 낮습니다. 통상적으로 기준금리, 즉 단기국채금리가 매우 낮아져있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압력이 계속 증가하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베어 스티프닝과 현재의 상황은 결이 다릅니다. 1년 전부터 역대 가장 가파른 속도로 기준금리를 올려버린 데다, 인플레이션이 조금씩 잡히고 있는 상황, 노동과 소비상황도 하락폭이 크지 않고 견조하다는 것이지 조금씩 과열이 식고 있는 상황에서 수급요인에 의해 장기국채 금리가 상승해서 현재 1.4% 이상 역전되어있는 3개월물-10년물 간 금리차를 뚫고 베어 스티프닝이 온다? 저는 개인적으로 어렵다 봅니다.
왜냐하면 단순히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그렇게 급격하게 오르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바이든 행정부가 이걸 방치해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처럼 기준금리가 5%가 넘게 올라와있는 상황에서 베어 스티프닝이 발생한다는 건 바이든 행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일으켰다고 해석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버리는데, 내년 대선을 앞두고 그런 상황을 추호라도 용인할 이유는 없겠죠.
현재 장기국채의 수익률이 계속 올라가는 게 수급 때문이라면, 얼마든지 수급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편이 많이 있기도 하구요. 어쨋던, 여기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잡지 못한 채 베어 스티프닝을 용인한다는 건 부동산 시장의 폭락을 부추길 수 있을정도로 경제를 망치는 일이 될 뿐 아니라, 그러한 사태 자체만으로도 심각한 재정문제를 일으키게 될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는 베어 스티프닝이라는 용어에 혹해 불안을 더하는 것보단 중립적인 입장에서 경제상황을 더 지켜보며 관찰하는 게 필요한 국면이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