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50을 훌쩍 넘어서다보니 먹는걸 줄이고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몸이 관리가 안됩니다. 체중관리를 위한 운동에 유산소운동만한 게 없다보니 자연스레 러닝에 관심을 가지면서 그동안 참 많은 러닝화를 이거저거 사서 신어봤네요.
요즘 러닝화의 화두는 단연 반발력 일겁니다. 약 5년 전 쯤만 해도 반발력이 있는 운동화는 마라토너나 육상선수들만 신는 구름 위(가격 면에서)의 신발이었죠. 킵초게가 신고서 2시간의 벽을 깼다고 해서 유명해진 나이키의 베이퍼 플라이 넥스트% 만 해도 수량이 한정되어서 실제 마라톤 공식기록을 제시해야만 살 수 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당시의 줌x폼을 100% 사용한 신발은 말 그대로 돈이 있어도 못사던 때였습니다. 오죽하면 단단하고 질긴 리액트폼 신발을 “반발력” 때문에 선택하던 러너마저 나왔었죠. 그 때는 정말 큰맘 먹고 리액트폼과 줌x폼을 섞어서 만든 페가수스 터보를 사고 그랬었죠.
그랬던 몇년 전 때가 무색하게 지금은 가볍고 반발력 있으면서도 비교적 싸고 내구성이 좋은 신발들이 정말 많이 나왔습니다. 굳이 30만원 넘는 돈을 지불해서 유명 선수들이 신었다던 최고급 라인의 마라톤화를 사지 않아도, 나이키라면 줌x폼을 100% 채용한 중창의 신발들을 합리적인 가격과 내구성으로 접할 수 있으며, 경쟁사들도 이에 질새라 다들 가볍고 반발력 있는 신발들을 내주고 있으며, 반발력 있는 신발의 유행을 선도하는 나이키를 뛰어넘는 통통 튀는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반발력이 좋은 신발의 저변이 넓어지다보니, “안정화에는 쿠션이나 반발력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과거의 통설을 깨버린 혁신적인 제품들도 나와주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제품이 나이키 인피니티 런 시리즈인데, 이번에 나온 인피니티 런4 는 전형적인 안정화의 설계임에도 푹신하고 두꺼운 리액트x 폼에 더해 지금까지 나온 안정화들을 압도하는 반발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제가 발목이 과내전(ankle overpronation)성향이 있다보니 러닝화를 살 때에도 안정화를 항상 염두에 두는데, 인피니티 RN 4 구입해서 달려보니, 줌x폼을 전면적으로 채용한 신발보다 조금 못할 뿐이지, 페가수스 터보는 애저녁에 발라버리는 쿠션감과 반발력을 선보여줍니다.
이런 쿠션감과 반발력 때문에 달릴 때 소모되는 에너지가 일반적인 안정화(줌 스트럭쳐24 )와는 비교가 안될정도로 적습니다. 달릴 때마다 경쾌하게 스탭을 밟게 해주고, 달리는 속도가 줄지 않고 유지되도록 밀어주는 느낌이 너무 좋습니다. 말 그대로 달리기가 즐거워집니다.
큰 맘 먹고 샀던 알파 플라이 넥스트%나, 에어 줌 템포 넥스트 같은 줌x폼 채용 신발에 플레이트를 넣은 최고급 라인의 신발들도 물론 차원이 다른 느낌을 줍니다만, 너무 내구성이 떨어지고 가격이 비싸다 보니 심리적으로 부담이 있어서 “즐거움”이라는 측면에서는 자꾸 걸리는 게 느껴지는걸 생각하면,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나이키의 줌x폼처럼 Pebax 쿠션을 채용한 타사의 제품들도 일부 체험해봤는데, 소재 자체의 경량성이나 쿠션감, 반발력은 분명 좋았지만, 인피니티 런 시리즈와 같은 압도적인 두께에서 나오는 충격흡수력은 쉽게 재현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줌x폼을 채용한 인빈서블 런 시리즈의 쿠션감에 대해 호기심과 관심을 가지실 분들도 많으실 겁니다만, 제 개인적으로는 내구성이 많이 떨어지고, 너무 심하게 튀는 쿠션도 생각보다 별로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제게 가장 안정적이고 즐겁게 러닝할 수 있는 쿠션감과 반발력을 주는 신발은 이번에 나온 인피니티 RN 4 라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는 쿠션감과 반발력이 주는 러닝의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지만, 사실 이러한 반발력은 양날의 칼과 같은 겁니다. 장점만 있는게 아니라 단점이 분명 존재하고, 어떤 상황에서는 그러한 단점이 크게 드러나게 됩니다. 쿠션감과 반발력이 강조되는 요즘 러닝화들은 착지 시 충격을 줄여주고 발을 뒤로 찰 때 힘을 더해주면서 달릴 때 에너지 소모를 줄여주기 때문에 체력소모가 줄어드는 대신, 반발력의 크기만큼 허리 디스크에 가해지는 압력을 제어하는게 상당히 까다로워집니다.
요추전만을 확실하게 유지하고, 착지 시의 충격을 복근으로 잘 버텨주지 못하면, 허리 디스크가 부담하는 압력이 일반적인 신발보다 훨씬 커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줌 스트럭쳐24를 신고 달릴 때에 비교해 같은 거리를 알파플라이 넥스트%나 인티니티 RN 4를 신고 달리면 허리쪽이 뻐근해지는 느낌이 더 뚜렷하게 나옵니다.
이는 일반적인 신발로는 온전히 장단지의 근육들을 사용해서 발을 뒤로 차올려야 하는 데 반해, 반발력이 있는 신발들은 체중을 실어서 신발의 쿠션을 눌렀다 되돌리는 갑작스런 반발력의 힘으로 발이 차올려지기 때문에 충격량이 더 클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발력이 높은 신발들을 신다 줌 스트럭쳐24같은 일반 러닝화를 신고 달리면 장단지가 금방 지치고 피로해지는 대신, 허리 통증은 거의 느껴지지 않게 됩니다. 힐스트라이크를 하지 않고 미드풋 스트라이크를 한다면, 어느 쪽이던 무릎에 통증이 오는 경우는 거의 없으나, 제대로 된 미드풋 스트라이크가 되지 않는다면, 반발력 있는 신발을 신었을 때에 무릎 통증이나 부상이 오기도 더 쉬워지구요.
결국, 저같이 체력이 약한 초보 러너들이 즐거운 러닝을 하려면, 일단 장단지근육을 먼저 강화시키는 게 순서인데, 그걸 하기가 귀찮고 힘들거 같으니 그걸 건너 뛰려고 반발력 있는 러닝화를 선호하는 식이라면, 허리 디스크나 무릎쪽의 부상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겁니다.
그래서 저같이 나이많고 근육이 빈약한 초보러너는 될 수 있으면 반발력이 있는 러닝화보다는 자신의 발목에 맞으면서도, 적당한 쿠션감에 반발력은 떨어지는 신발이 필요합니다. 꼭 나이든 사람이 아니라도, 시작한 지 얼마 안된 러너나, 부상에서 회복중인 러너들은 가급적 반발력이 있는 신발은 조심해야 해요.
그래서 이번에 나온 인피니티 RN 4가 정말 짜릿한 신발이라는 걸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러닝할 때에는 줌 스트럭쳐24 같은 일반적인 러닝화를 주로 쓰게 될 것 같습니다. 부상방지에 중점을 두면서 러닝 거리를 늘리면서 점점 장단지 근육을 키워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일반적인 러닝화로도 인티니티 RN 4 나 줌x 폼이나 Pebax소재를 채용한 타사의 고반발력 신발들이 주는 러닝의 즐거움을 재현할 수 있을거라 기대해봅니다.
높은 반발력을 가진 고가의 러닝화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게 “내가 정말로 근육을 키우고 러닝실력을 키우게 된다면, 이런 느낌으로 달리게 될 수 있다”는 목표를 직접적인 체험으로 인식하게 해줄 수 있거든요. 그래서 가끔씩은 알파플라이 넥스트%나 인피니티 RN 4 같은 신발을 신고 기분을 내주면 또 그거대로 즐겁고 의미있는 러닝이 되겠죠.
어쨋던, 부상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하면서 러닝을 하는게 제일 중요합니다. 요즘 러닝화들이 너무 반발력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보니 그 점을 깊게 생각하지 못하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되어서 이런 글을 써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