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하이에크

하이에크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학자입니다. 젊었을 적에는 사회주의에 심취해 사회주의 경제학을 공부하려고 빈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빈 대학에서 “루트비히 폰 미제스”를 만나서 그의 저서 “사회주의(Socialism : An Economic and Sociological Analysis)”를 접하고 나서 사회주의를 버리고 자유주의자로 전향하게 됩니다. 하이에크가 빈 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영향을 준 카를 멩거나 미제스, 그리고 하이에크와 같은 인물들을 우리는 오스트리아 학파라고 부릅니다.

시장에 의해 결정되는 가격시스템은 사회라는 인간집단의 집단적 행동의 취합이 아니라, 개개인의 고유한 인간행동의 표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에 어떤 형태의 관료주의나 집산주의로도 올바른 가격결정과정을 복제할 수 없다는 미제의 주장에 동의하면서부터 하이에크는 그 당시 전세계를 양분하던 주류 경제학인 마르크스 경제학과 케인스 경제학 모두를 거부하고 소외된 비주류 경제학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의 주요한 업적 중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것을 근거로 그를 경제학자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가 해왔던 말이나 저서들을 보면, 일단 과학적 접근방법을 활용하지 않는 면에 있어서 경제학자라고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학문적인 엄정성이나 검증 가능성에서 출발하는 게 아니라 하이에크가 빈 대학에서 활동하던 당시의 정치상황, 즉 공산주의와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가 맹위를 떨치며 저지르는 만행들에 대한 정치적 반작용에서 출발하는 하나의 정치사상에 가깝다고 봐야 할겁니다. 아래는 하이에크의 주장이나 발언 및 행태들입니다.


사회주의가 실패할수밖에 없는 결함은 사유재산을 용인하지 않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개인들에게 사적인 형태로 넓게 분산된 (특정 시간적 그리고 공간적 환경에 대한) 지식을 단일한 중앙계획자가 수집하고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바로 지식 사용의 탈중앙화에 있다.(지식의 중앙집중적 사용이 문제라면, 왜 가족, 동호회, 기업은 사회주의와 같은 문제에 직면하지 않는지 설명할 수 없게 됨)

자유란 “개인이 자신의 정보를 목적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상태”이다. 강제란 “타인에 의한 환경과 상황이 통제되는 상태로, 개인이 더 큰 악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일관된 계획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목적을 위해 행동하도록 강요받는 것”이다. (하이에크의 자유와 강제에는 어떤 물리적인 기준이나 지표도 제공되지 않으며 일종의 정신적 술어이며 모든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상황과 양립될 수 있다. 하이에크 본인도 강제와 자유를 명확하게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다.)

징병제나 세금도 강제가 아닌 자유에 부합하며 자유주의적으로 정당하다.(본인 스스로도 강제와 자유를 객관적이고 명확하게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의 근거로 자주 인용됨.)

경제적인 측면에서 집산주의적 계획, 정부의 간섭과 통제는 결국 정치적 자유도 잃게 만들고 노예의 길을 가게 된다. 왜 대중은 자유를 버리고 노예의 길을 선택할까? 자유는 경쟁, 노력, 책임이 기본이다. 경쟁하기 싫고 노력하기도 싫고 책임지기도 싫은 미성숙한 대중이 쉽게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할 때 달콤하게 등장하는 정치세력은 언제나 전체주의자들이다.(그래서 케인스주의도 결국에는 전체주의의 길로 빠져들거라고 예언함)

나는 고전적인 자유방임주의로 되돌아가는 것에 반대한다. 자유방임의 원리에 대한 아둔한 고집만큼 자유주의의 명분에 해를 입힌 것은 없다. 대신 경쟁이 가능한 한 최대한 유익하게 작동하도록 체계를 의식적으로 창출하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후대의 학자들에 의해 신자유주의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으나, 자유방임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의 감시를 전제로 하는 고전 자유주의나, 시장의 자유가 국가를 조직화하고 규칙화하기 위한 원리로 작동하는 신자유주의에서나 결국 “자유방임에 대한 아둔한 고집”이라는 점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음. 구체적으로 자유방임의 원리에 무엇이 문제가 있었고, 무얼 버리고 비판해야 한다는 것인지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경쟁이 어떻게 유익하게 작동하도록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다루지 않는 모호한 태도를 유지)

이란 미국대사관 인질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이란에 폭격을 해야 한다!

(피노체트 치하의)칠레에서, 정치적 자유가 아닌 경제적 자유의 회복은 절대적으로 환상적인 경제 회복으로 이어졌다. … 정치적 자유 없이 경제적 자유를 가질 수 있지만, 경제적 자유 없이는 정치적 자유를 가질 수 없다.

아시다시피, 독재자가 자유주의적인 방식으로 통치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자유주의의 완전한 부족으로 통치하는 것도 가능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자유주의가 부족한 민주 정부보다 자유주의 독재자를 선호한다. 칠레에서 우리는 독재 정부에서 자유주의 정부로의 전환을 목격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도기 동안 특정 독재 권력을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합의로 유지하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


애초에 경제학을 과학의 한 범주로 생각하고, 과학의 잣대에서 본다면, 하이에크의 말이나 주장들은 절대 과학이 아니지요. 그의 말이 과학적 접근법에서 오죽 심하게 벗어났으면 그와 밀접하게 교류해왔던 밀턴 프리드먼 같은 신자유주의자조차 그의 경제학이 혼란스럽고, 이런 것들이 왜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했겠습니까?

하지만, 하이에크의 전체주의와 정부주도의 집산주의 경제정책에 대한 강박적인 거부감에서 출발한 주장들은 결국 그와 같은 감정선을 공유하며 반공주의와 작은 정부에 미쳐있었던 정치인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고 추앙받게 됩니다. 다름 아닌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

마가릿 대처는 결국 하이에크의 주장대로 영국병을 치유하려 시도했고, 레이건의 연설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경제학자도 바로 하이에크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전체주의와 집산주의에 대한 환멸과 공포라는 정서와 감정에서 출발한 논리와 주장이라 해도 그 끝이 “경제적 자유를 위해 정치적 자유를 희생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면서 학살자 피노체트를 옹호하는 결론이라면 아무리 영국과 미국의 국가수반에 의해 추앙받았을 지언정, 역겹다는 감정을 내비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합니다.

애초에 학문적으로는 첫 출발부터 학문적 엄정성을 위배하며 검증이나 반증을 할만한 구체적인 내용조차 없었기에 비주류 경제학으로서의 오스트리아학파를 이해하고 배우기 위해서는 하이에크를 배제하고 미제스나 다른 이들을 공부하는게 올바른 접근방법이기에 남은 건 그의 진정성과 정서적 공감의 영역일텐데, 피노체트와 같은 학살자를 옹호하고 경제적 자유주의를 위해서는 독재도, 학살자도, 심지어는 자유주의가 그렇게 증오하는 세금도, 징병제도 모두 다 Yes라 말하는 그의 주장을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이해하고 비판하려 시도할 필요는 없을겁니다.

애초에 이딴 것들이 왜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는지 모르겠다고 한 밀턴 프리드먼의 생각이 백 번 천 번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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