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인플레이션 레토릭이 크게 후퇴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강력한 인플레이션이 다가오고 있다며 국채 숏포지션에 원자재 롱포지션을 계속 고수하고 있는 전문가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유가가 크게 떨어지고, 경기선행지수들이 계속 떨어지면서 경기둔화를 가르키고 있으며, 미국채 시장금리가 엄청나게 떨어지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도 어떻게 인플레이션을 계속 외칠 수 있는가, 논리적인 근거가 궁금해서 들어보면, 가장 강력하게 밀고 있는 근거라는게 “40년 물가사이클”이더군요.
이게 뭔 소린가 보면 1970년대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던 그런 상황이 이제 다시한번 재현될거라는 주장을 “사이클”이라는 용어로 포장하고 있는 것인데,,, 그런 식이면 이전의 1930년대 대공황 시대에 미국의 물가는 뭐라는 말인지 수긍이 쉽지 않습니다.
사실 경기변동 사이클 중에 “40년”을 주기로 하는 사이클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가까운 주기의 사이클이라면 유명한 콘드라티예프 파동이 있지만, 최소치가 40년, 최대치가 70년의 주기로 느슨한 경계를 가지고 있는지라 이 콘드라티예프 파동을 가지고 40년 주기설을 미는 건지는 잘 모르겠더군요.
하지만, 콘드라티예프 파동을 비롯한 수많은 경기 사이클들은 어디까지나 경험칙이지 특별한 이론적 정합성을 가진 이론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기도 40년에서 70년까지 굉장히 다양하게, 나쁘게 말하자면 임의대로 그려볼 수 있는 유도리가 존재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파동인 겁니다. 주가차트에서 추세선을 그려보거나 여러가지 상상력을 동원해서 그림을 그려보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는거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주기를 가지는 장단기 경기사이클들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시장이라는 게 원래부터 합리적인 근거에 기대어 정합적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엉뚱한 곳에서 자그마한 물결이 일어나 점점 크기를 키워서 전세계 경제를 뒤엎어버리는 변동을 일으키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말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투자를 하는 이라면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 시장이 어떤 위치에 놓여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즉 시장이 하락하기 쉬울만큼 고평가된 상황에 놓여있는지, 아니면 반대로 상승할 수 있는 저평가된 상황에 놓여있는지를 장기로든 단기로든 다양한 기간을 상정해서 현재를 평가해야만 하는겁니다.
물가의 측면에서 콘드라티예프 파동이라는 40년에서 70년 주기를 가지는 초장기 사이클의 어느 지점에 와있는가를 우리가 판단해야 한다면, 당연히 매우 낮은 물가수준의 상황이라 말할 수 있을겁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10년에서 20년을 바라보고 투자할 때 물가상승율이 높아질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투자전략을 짜는 게 합리적일 겁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 2-3년 내에 물가가 어떻게 될 것인지, 이에 따른 국채 장기물 금리가 어떻게 되고 원자재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를 가늠해보기 위해 40년 주기든, 뭉뚱그려 콘드라티예프 주기를 꺼내든다면? 뭔가 크게 엇나간 황당한 결론에 빠지게 될 수도 있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경기사이클을 가지고 투자전략을 짜는 건 굉장히 주의해서 시도해야 하는 세심한 작업이며, 장기든 단기든 이런 경기사이클을 근거로 해서 지금 당장 주식이나 채권, 원자재를 사거나 팔아라 말하는 전문가의 말은 정말정말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