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파괴에 있어 특허의 역할 – 서강법률논총 11권 1호
슘페터가 제안한 “창조적 파괴”라는 말은 상당히 유명한 단어입니다. 기업의 혁신이나 기술발전이 기존의 질서나 가치를 파괴할 수 있다는 우려의 뜻으로 통용되기도 하고, 기존의 기득권과 구시대적인 잔재를 파괴하지 않으면 새로운 진보나 창조가 불가능하다는 진보주의를 상장하는 단어로 쓰이기도 합니다.
경제학자인 조셉 슘페터가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이라는 단어를 쓴 원래의 취지는 그러한 파괴가 경제발전의 원동력임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이유로 파괴가 지연되고 지체되는 현상을 안타까워하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한 사회나 국가에서 창조적 파괴가 이뤄지는 단계는 세 단계로 발명-혁신-확산 의 과정을 거치며 사회의 변모, 즉 진화를 이끌어냅니다. 이 때 창조적 파괴가 가장 격렬하게 이뤄지는 단계는 마지막 확산의 단계이며, 사회 전반에 새로울 발명과 혁신이 확산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모방”의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그 모방의 단계에서 사회는 가장 큰 변화와 혼란, 그리고 기존 시스템의 파괴가 진행됩니다.
문제는, 그러한 확산의 원천인 모방을 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특허제도가 창조적 파괴를 지연시키거나 좌초시킬 수 있다는 점이죠. 특허제도 자체가 사라지면 발명자들의 권익을 보호하지 못해 기술발전이 더뎌지지만, 필요 이상의 특허보호는 전략적 특허를 야기해 기득권 대기업의 독점력을 확장시켜서 새로운 혁신가가 창조적 파괴를 일으킬 기회를 방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국은 특허제도를 통해 어디까지를 보장하고 어디까지를 열어줄 것인지에 대해 저마다 고민하며 선택하게 마련입니다.
법적으로는 대게 20년 정도의 특허권을 보장하고 있으나, 한번 독점력을 활용해 시장에서 우월한 지위를 획득한 기업은 그러한 독점력을 계속 유지해나가고 싶은 동기가 충분히 존재하며, 여러가지 꼼수들을 동원해 사실상 영원히 독점력을 지속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승자의 독점력이 새로운 혁신가의 발명과 혁신, 그리고 창조적 파괴를 방해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이죠. 이러한 창조적 파괴의 방해는 결국 사회적 후생을 감소시킵니다.
실제로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했을 때, 와트의 특허는 굉장히 광범위한 영역을 특허출원해서 경쟁자들이 유사발명을 할 여지른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결국, 와트는 수많은 소송들에도 불구하고 30년간 증기기관 시장을 독점했고, 그의 경쟁자들인 혼블로워나 워스버로 등의 제품혁신 시도를 봉쇄했습니다. 그 30년 동안 증기기관의 연료효율성은 거의 변하지 않았던 반면, 이 후 30년 동안은 연료효율이 적어도 5배 이상 향상되었습니다.
이러한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라는 개념이 요즘에 와서 다시 조명받는 이유들 중 하나는 “중국”입니다.
A 2023 study on quantity-based subsidies under heterogenous innovations developed a Schumpeterian growth model analyzing the direct relationship between China’s industrial policy and its impact on economic growth.
위의 기사내용 중에 Schumpeterian growth model에 의거한 분석결과를 중국이 발표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의 세 단계를 거치는 시간을 절약하고 빠르게 진행시키기 위해 중국 정부가 시도했던 여러 시도들 중 막대한 양의 보조금이 어떠한 기여를 했는지 조사해봤다는 겁니다. 기사의 결론은 중국정부의 보조금정책들이 양적으로는 성공적이었지만, 질적으로는 부작용이 많았으며 반성해야 할 점들이 있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앞으로는 막대한 보조금정책을 수정해서 더 좁은 영역에 선별적이고 절제된 보조금만 지급하겠다는 거지요.
중국이 지금까지 이뤄온 엄청난 성장과 이를 추동해온 급격한 혁신들이 전적으로 보조금정책 때문은 아닐겁니다. 보조금보다 더 결정적인 요인은 외국의 특허권을 보장하는 데 소홀하는 걸 넘어 기술을 훔치거나 베끼는 걸 거리끼지 않는 전반적인 관행들이 급격한 발전의 중요한 동력이 되었을겁니다. 이게 중국을 비도덕적이라 욕하려는 의도보다는, 중진국 입장에서 fast follower 전략을 취한 국가라면 어디든 그런 과정을 밟아가는 거겠죠. 우리나라도 과거가 그리 깨끗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압니다.
중요한 건, fast follower 전략에 입각해 양적인 보조금정책이나 특허를 무시하는 것과 같은 방법들로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 중 확산속도를 극대화 해왔던 관행이 이제는 한계에 봉착한 상태라는 걸 중국정부도 점차로 깨닫고 인정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위의 논문에서도 특허를 통한 경쟁우위의 유지에 현실적인 한계가 존재하고, 우위를 선점한 기업들도 특허 비용보다 비밀유지 비용이 낮을 경우 특허에 집착하지 않고도 리드타임이나 영업비밀과 같은 대안적 장벽이 훨씬 효과적인 보호장벽이 되어준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기술발전이 고도화되면 될수록 두드러집니다.
확실히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연구결과가 아니더라도 중국이 기존의 방식대로 기술혁신과 성장을 지속해나가는 데 벽에 부딪히는 느낌은 분명히 듭니다. 그래서 반도체 굴기라는 슬로건에 더 집착하며 역량을 그렇게 첨예한 경쟁부문들에 집중하며 사활을 걸고 있기는 한데, 어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건, 중국이 이러한 내부와 외부의 도전을 잘 극복하고 무언가 제대로 된 답을 내는 데 성공한다면 우리나라는 반대급부로 매우 큰 어려움과 도전에 직면하게 될것이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