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안에서 이뤄지는 순환참조의 모순들

경제학이 일반적인 자연과학과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부분은 경제학 이론 대부분이 “반증가능성”이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자연과학에서는 어떤 가설이나 주장에 반증가능성이 결여되면 그건 이론이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경제학에서는 반증 가능한 이론을 구축하는게 처음부터 쉽지 않습니다. 구조적으로 순환참조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가장 전형적인 사례가 경제학의 중요한 이론 중 하나인 효용이론(utility theory)입니다. 사람들은 항당 비용 대비 최대의 효용을 얻기 위해 어떤 거래를 할 때던 최대한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주장, 즉 모든 인간이 효용 극대화를 추구한다는 경제학의 기본전제와도 같은 명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효용”이라는 개념이 뭘까요? 최대한의 만족이나 효율, 또는 기대하는 효과를 누렸다는 걸 의미하는 이 효용이라는 개념은 어디까지나 거래를 한 당사자들의 심리변화를 비롯한 그들만의 주관적인 상태를 대변하는 모호하고 주관적인 개념일 뿐 아니라, 이러한 효용이라는 것 자체가 거래 이전의 펀더멘털(본질)이 아닌, 거래 이후의 “결과”에 연관지어 정의되는 개념입니다.

결국, 경제학의 어떤 명제가 되었든간에 이 “효용”이라는 개념이 그 명제에 포함되는 순간, 해당 명제는 너무 모호하고 주관적이라서 반증가능성을 상실하게 되는것입니다.

경제학에서 저질러지고 있는 또다른 순환참조 사례에는 자본자산 가격결정모형(CAPM)이 있습니다. 학자들은 CAPM으로 시장의 효율성을 분석합니다. 툭정 시장이 표준적인 CAPM모형에 부합해 합리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면, 해당 시장에서 기대할 수 있는 수익률은 항상 체계적 위험(risk)에 의해 결정되어야 하며, 기대수익률과 체계적 위험은 정비례하는 선형관계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죠.

실제로 특정기간이나 종목에 집중적으로 심한 변동성을 보이던 코스닥시장이 과연 합리적으로 움직이는 효율적 시장이 맞는지를 검증하는 데에 CAPM모형을 활용하는 논문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 코스닥시장에서의 사전적 효율성 및 CAPM 검증 )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이 CAPM모형이라는 것 자체가 시장이 효율적이라고 가정하고, 그런 가정에서 출발해 나온 모형입니다. 현실세계를 반영하고 있는 부분이 전혀 없으면서, 애초에 모든 시장을 효율적이라고 가정하고 만든 모형을 가지고 특정 시장이 효율적인지 아닌지 검증하겠다는 시도 자체가 순환논리에 가깝다는 거지요. 객관적인 현실에서 출발하지 않고 가상의 단순화한 이상세계를 전제하고 거기에서 출발한 논리가 반박가능성을 확보한 과학이론이 될 수는 없는겁니다.

결국, 경제학의 여러 핵심개념들이 반증 불가능하며 모호한 개념들이 많기 때문에, 경제학은 그 자체로는 이론이 될 수 없습니다. 경제학이 확고한 이론, 적어도 자연과학에 비견될 수 있는 이론 비슷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특정한 상황에 기반했을 때에만 성립가능하다는 전제조건이 부연되어야만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통찰은 비단 경제학을 공부하거나 가르치는 경제학도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다름아닌 현실세계에서 경제학을 주요한 무기로 활용하고 있는 투자자들이라면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하는 유의사항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것이지요. 미국 주식시장에서 125년 동안 저PER에 매수하고, 고PER에 매도했다면 실적이 부진했을겁니다. 그렇다면, 저PER주를 주로 다루는 가치투자가 잘못된 투자전략일까요? 반대로 특정한 투자전략을 백테스팅 했는데 100년 넘게 봤을 때 장기적으로 실적이 좋았다면, 그러한 투자전략이 올바른 투자이론이 될 수 있는걸까요?

모든 투자자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특정한 시장에서 패턴을 파악하려 노력하고, 그러한 패턴을 이론이라 부르며 활용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이론(?)들은 전체적인 맥락을 반영하고, 다양한 상황을 파악했을 때에 비로서 조금씩 확고해집니다. 특정한 패턴을 상황이나 맥락을 따지지 않고 절대적인 과학이론처럼 고집스럽게 고수하다보면 언제나 실패하기 마련이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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