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현실과 자산거품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그의 책 “행운에 속지 마라”에서 강조하고 있는 내용은 우연히 성공하거나 실패한 사례들을 우리가 보통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인지, 그리고 그러한 통상적인 인식이 투자의 세계에서는 우리를 좌절시키는 덫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교훈을 설득하기 위해 여러가지 사고실험과 우화들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대체현실 이야기입니다.

대체현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실제현실에서 확률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또다른 가능성을 상정하는 가상현실입니다. 어렵게 생각할 게 아니고, 우리가 주사위를 굴려서 우연히 3이 나왔다고 한다면, 그 외의 숫자들이 나오는 또다른 현실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겁니다. 거창하게 무슨 평행우주니 이런 걸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확률적으로 발생가능한 다양한 결과값들을 모두 상정할 수 있도록 확장된 다중세계를 가정하는겁니다.

이런 상상이 필요한 이유는 확률적으로 대박을 내거나 쪽박을 내는 극단적인 결과값이 포함된 투자를 우리의 현실에서 실제로 겪어보고 위험성을 판단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자칫 한번에 내 모든 재산을 다 잃고 쪽박이 날 수 있는 확률을 직접 몸으로 체험한 다음에야 그게 위험한 거였구나 깨닫는 거만큼 멍청한 행동은 없으니까요.

요즘 코인과 인공지능 테마주들이 거침없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미 재무부의 의도된 유동성 증가로 돈이 풀리면서 경제상황과 상관없이 특정 자산가격이 오르는 현상은 역사상 언제나 존재해왔습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건 이러한 거품이 얼마나 있다 꺼지게 될 것인지, 어디까지 오르다 거품붕괴가 나올지에 대한 것이죠. 이건 물리학적인 필연이나 특정 경제법칙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 순전히 우연과 랜덤성에 의해 결정되는 변수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거품이 어떤 경로를 밟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대체현실을 가정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당장 예상하지 못한 돌발상황이 일어나 작금의 거품이 붕괴할 수도 있을 것이며, 내년이 넘어 내후년까지도 대책없이 거품이 커질 수도 있습니다. 드물겠지만, 이런 거품이 서서히 김이 빠지듯 안정적으로 내려갈수도 있겠지요. 이 때 이런 거품에 탑승하는 투자를 결정한 모든 대체현실들 중에 종국적으로 파국과 파산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체현실은 몇 개나 될까요?

그러한 대체현실은 모든 상정가능한 대체현실 중에서 극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면 지금까지 인류역사 속에서 거품이 한 번 형성되기 시작하면 통제 불가능한 경착륙으로 귀결되었던 게 그렇지 않았던 경우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그렇게 무너지는 확률이 높다는 것만 문제가 아니죠. 거품이 끼는 기간 동안 얼마를 벌어들였던 간에 그걸 적절한 시기에 현금화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면 언제 어떤 형태로 무너지더라도 결국은 모든 돈을 다 잃게 되어 재기할 수 없게 됩니다.

거품에 올라탄다는 것이 그래서 무서운겁니다. 얼마나 많은 돈을 벌든, 얼마나 오랜 기간 짭짤하게 수익을 내던간에 마지막 순간에 탈출하지 못하면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너무 치명적인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거품이 형성되가는 시기에는 더더욱 보수적으로 자산을 운용해야 합니다. 일단 살아남기만 해도 그 순간 거의 모든 경쟁자를 제치고 상위 5%의 승자가 되어있을테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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