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믿을 것인가

이제부터는 나심 탈레브의 책 “행운에 속지마라”에 나오는 일화를 풀어서 소개해보겠습니다. 1년 넘게 주식시장이 고평가되었고 조만간 하락할 것이라 주장하던 경제학 교수 로버트 실러와 TV 쇼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던 평론가 조지 윌은 대화 중 실러 교수에게 이렇게 지적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금까지 당신의 말(주식시장이 고평가 상태라는 말)을 믿었다면 돈을 잃었을 것입니다.”

평론가 조지 윌이 TV인터뷰를 진행했던 시점은 실러 교수가 주식시장이 고평가되었다고 발표했던 시점보다 주가가 두 배 넘게 올랐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실러 교수의 말을 믿고 주식을 팔아 현금을 들고 있었다면, 떼돈을 벌 기회를 발로 차버리는게 된거죠. 평범한 우리들이 생각하기에는 조지 윌의 지적이 옳고 로버트 실러 교수의 지적은 어리석거나 너무 성급하고 섯부른 주장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조지 윌의 반론에 로버트 실러교수의 대응은 이랬습니다.

“한 번 틀린 시장 예측에 지나치게 비중을 두어서는 안됩니다.”

그의 대응은 굉장히 김빠지고 방어적인 표현처럼 들립니다. 실러 교수는 주식시장이 고평가 되었고 하락할 확률이 높다는 예측을 했으나, 시장은 언제나 합리적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그런 합리적 가정에 기반한 예측에 반드시 부합하라는 법이 없습니다. 만약 실러교수가 엉터리 논리나 지극히 일방적이고 주관적인 생각에 기반해 시장예측을 했다면, 그의 예측결과에 상관없이 우리는 그의 주장에 관심을 가지고 경청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로버트 실러 교수는 저명한 경제학교수이며 그의 주장들은 학문적으로 타당한 전제들과 논리적인 정합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로버트 실러 교수의 주장은 나중에 거품이 붕괴하며 고평가라는 주장도, 하락할 것이라는 주장도 사실이었던 것으로 드러나죠.

문제는 멍청한 시장이 한 번 더 멍청해지지 말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2008년에 거품이 붕괴되었지만, 다른 평행세계에서는 우연한 계기로 시장의 광기와 열정이 더 빨리 무너졌을 수도, 아니면 몇 년을 더 이어가다 더 크게 붕괴했을수도 있는겁니다.

그러한 고평가상황을 인식한 시점에서 방어적으로 시장에 대응하지 않고 계속해서 주식이나 잘나가는 투자종목에 계속 대부분의 자금을 투자하는 행위는 횟수에 제한을 두지 않고 무한정 러시아 룰렛을 돌리는 행위가 될 수 있는겁니다. 결국은 죽는거죠.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탐욕에 쩔어서 무지성으로 거품에 올라타는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는 무사히 안죽고 돈벌어서 빠져나올 수 있다”라고 생각하며 적당히 러시안 룰렛을 돌리다 기가막힌 타이밍에 빠져나갈 생각을 합니다. 물론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해서 이를 평균으로 낸다면 이익을 보기 어려운 투자가 될 것입니다. 물론 확률론적으로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했을때 말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당장 내 눈 앞에서 현실로 드러나는 생생한 위험에 대해서만 관심을 보입니다. 단지 하나의 결과값에 불과한 당장의 결과를 마치 보편적인 원리라도 되는 양 일반화 시킴으로서 눈 앞의 결과가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착각합니다. 수학에 문외한인 평론가 조지 윌이 저질렀던 잘못을 우리의 직관은 동의하며 옳다고 여긴다는 거지요.

이러한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지나치게 공격적인 포지션(롱포지션이든 숏포지션이든)을 설정하고 무모하게 투자하는 것이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깨닫고 당장 그만두어야 하며, 여기까지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진짜 고민해야 할 건 그 다음일겁니다.

시장의 광기가 인간의 본능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인정하고 보수적이나마 시장의 상승분위기로 인한 주가상승에 발을 담가 수익을 챙기는 모멘텀 중심의 투자전략을 채택할 것인지, 아니면 과대평가된 시장이 붕괴할 때 적절히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평가된 시장에서 완전히 떠나 기다리거나, 오히려 높아질 가능성이 큰 변동성에 투자하는 투자전략을 채택할 것인지,,, 이건 딱히 정답이 있는게 아니라 저마다의 상황과 개개인의 재능에 따라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을겁니다.

쉽고 편한 길은 전자의 선택입니다. 현금비중을 늘리되 주식비중을 보수적으로나마 완전히 비우지 않고 유지시키는 것이 언제까지 계속될 지 모르는 거품의 시대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편한 마음으로 기회를 기다릴 수 있는 방편이 되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수익률이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는데 이게 과연 현명한 것일까 반문하는 분들도 계실테지만, 정말 투자의 고수나 투자를 업으로 삼고 있는 프로페셔널한 기관투자자들이 아니라면 수익률을 탐내기보다 안정성이라는 기본을 먼저 챙기는 게 중요하지 싶습니다.

무엇보다, 당장 제가 후자의 길을 시험삼아 걸어가고 있는데, 영 상황이 좋지 못합니다. ㅜㅜ 정말 많은 인내심과 공부를 필요로 하는 어려운 길이죠. 저도 다음번 실험은 어려운 길이 아닌 좀 더 쉬운 길로 선택해야겠다 다짐하고 있습니다.

어쨋던 간에, 이러한 선택을 고민하기 전에 먼저 무제한의 탐욕에 쩔어서 무절제한 위험감수를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해서만큼은 반드시 돌아보아 자제해야 합니다. 지금이 바로 그러한 반성과 대비가 절실하게 요청되는 거품형성기를 지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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