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기차 수요가 예전만큼의 성장을 지속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신 다양한 형태의 하이브리드 차의 수요가 늘고, 전기차 충전인프라가 부족한 틈새를 공략하고 있죠. 당연히 전기차 시장이 이대로 가면 전형적인 캐즘(Chasm)에 빠지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제 생각은 전기차 시장은 이미 캐즘에 빠져있다는 판단입니다. 기술적인 측면이 아닌 경제의 측면에서 혁신이란 기술적 진보가 아닌 보급율과 점유율의 빠른 확산에 의해 규정됩니다. 그런 잣대라면 전기차를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충전 인프라”의 확장속도로 볼 때 점유율이 지금보다 빠른 속도로 늘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렇게 전기차가 시장성이 있고 혁신이 맞다면 “왜 충전인프라는 제대로 늘어나지 않는가” 하는 점 입니다.
정말로 전기차가 내연기관 차에 비해 혁신이 분명하다면 나라에서 인프라를 깔기를 기다리기 이전에 전기차 제조사들이든, 전력회사든 어디라도 돈 냄새를 맡고 먼저 나서서 충전인프라를 까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았을겁니다. 자동차가 마차를 대체하는 과정에서는 빠른 속도로 도로와 주유소가 보급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떼돈을 번 거대 석유재벌들이나 도로를 건설하며 성장한 수많은 건설회사들이 등장했습니다.
자동차가 마차에 비해 혁신이 분명했기 때문에 자동차가 굴러가는 인프라도 돈과 기회가 되어주었던 겁니다. 그런데, 전기차에서는 이런런 전개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주유소를 제대로 운용하기 어려운 곳이나 석유를 안정적으로 보급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나라에서 전기차 보급이 더 빠릅니다. 전기차가 굴러다니는 데 필요한 인프라를 까는데 돈이 안되니까 투자가 지지부진한 것이라면, 전기차 자체가 혁신이 될 정도의 진보가 아닌거지요.
인정해야 하는 건 지금까지 나왔던 전기차는 분명 혁신이라 부르기에는 많이 부족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사려 하기에는 너무 비싸고 인프라가 부족한데다 확충되는 속도도 불충분합니다. 그리고, 그런 장애를 무시하고라도 사야 한다는 이점이 없어요. 하지만, 이제부터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혁신이라는 건 소비자들의 돈과 시간을 혁신적으로 절감시켜줄 때에 비로서 혁신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지금 당장은 배터리를 제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충분히 혁신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캐즘 단계에서 빠져나오기 어렵지만, 기술과 제조능력이 진보하면 할수록 배터리의 제조단가는 더 싸지면 싸지지 비싸지긴 어렵습니다. 반면, 내연기관차는 지금 여기서 더 싸게 만드는게 가능할까요?
한 쪽은 계속 정체되는 데 다른 한 쪽은 개선의 여지가 무궁무진하다면 결과는 뻔한겁니다.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체된 시장은 사장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이라는 게 다들 전망을 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별거 없을거 같다는 전망 하나로 지금 당장부터 외면받게 되니까요. 시간이 얼마가 걸릴지는 모르나, 결국 전기차 시장의 미래는 무한하게 열려있습니다. 다만 그 전제조건이 “배터리를 더 싸게 만들 수 있는 기술”과 “배터리를 더 가볍게 만들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말이지요.
결국, 승부는 지금부터입니다. 지금까지의 전기차 시장이나 배터리 시장은 우스울 정도의 엄청난 성장 잠재력이 아직도 열려있는 반면, 진정 필수적인 기술발전이 열리지 못한다면 종국엔 다른 차세대 동력원(수소)에 추월당해 사장당할 수도 있는 열린 결말의 스토리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각광받는 전기차 제조사나 배터리 제조사들의 밸류에이션은 불안하다는게 제 결론입니다. 앞으로 전기차 시장이 크게 발전할 때에 진짜 성공할 기업이 지금 각광받고 있는 기업들 중에 있을지 어떨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