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낙태를 주제로 정치판이 정말 뜨겁습니다. 미국에서 낙태를 주 법으로 제한할 수 없도록 규정한 획기적인 1973년 “로 대 웨이드 Roe v. Wade” 판결이 낙태를 할 때 여성이 어떤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권리를 명확히 했지만, 2022년 6월 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지하는 폭탄같은 판결이 나오면서부터입니다.
트럼프가 지명했던 법관들에 의해 로 대 웨이드 판결이 폐지되면서 대부분의 미국인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낙태정책을 지지하기 때문에 낙태금지 이슈가 선거에서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걸 잘 알면서도 공화당 정치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지지기반인 보수층에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극단적인 낙태제한론을 폐기하지 못한 채 어정쩡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공화당 지지자들 중에서 극단적인 낙테제한에 찬성하는 비율은 어느정도일까요? 중립적인 여론조사 리서치에서 공화당 지지자의 약 15.7%가 완전한 낙태금지를 원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 다음부터입니다.
민주당 당원들은 공화당원들이 낙태에 대해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을거라 인식하는가를 설문했더니, 공화당원의 평균 51.8% 정도는 완전한 낙태금지를 원할 것이다고 응답했습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공화당원들이 낙태에 대해 굉장히 극단적인 성향에 치우쳐있을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겁니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공화당 지지자들을 극단주의라 생각하는 건 어쩌면 반대진영에 대한 폄하나 편견 때문일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공화당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까요? 그들 스스로도 공화당원들의 49.6%는 완전한 낙태금지를 원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스스로도 실제 모습보다 훨씬 더 자신들을 극단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을거라 인식하고 있었던 거지요.
이렇게 한 쪽의 진영이 극단적인 성향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실제로 그들 구성원이 정말로 극단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에 의해, 그리고 그들 스스로에 의해서도 극단적일거라 지레 넘겨짚는 이들에 의해 극단적인 집안으로 규정되는 이유는 그것이 진실이라서가 아니라 유용해서입니다.
현재 공화당을 장악하고 있는 정치인들과 이들의 비호세력은 매우 극단적인 보수주의사상을 옹호하는 자들입니다. 극단주의는 어떤 집단을 막론하고 절박한 심리상태에 빠져있는 구성원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쉬운 스탠드죠. 그렇지만, 실제로 구성원의 대부분이 정말로 극단주의에 빠져있거나 이를 추종하는 게 아닙니다. 아무리 극단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집단도 속을 들여다보면 공화당 처럼 극단주의는 소수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소수에 불과한 극단주의가 한 집단 또는 진영을 집어삼키는 일을 막고 합리적인 토론과 소통으로 올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바로잡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소수의 극단주의자들이 의제를 선점하고 선명성 경쟁을 벌이는 것에 반기를 들어야 합니다. 그들 극단주의자들에게
- 당신들 극단주의자들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
- 당신들은 다수가 아니라 소수에 불과하다.
- 당신들은 우리를 이끌어갈 자격이 없다.
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들고 일어서는 것이 소속한 집단이나 진영에 매우 중요한 과제이며 당연한 소명으로 여기는 이를 내세우고 다수의 지지를 몰아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극단주의가 진영 내에 소수에 불과하며, 진영 전체를 장악할 수 없다는 게 확실해진다면 극단주의라는 망령은 순식간에 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집단 내에 권력을 잡고 있는 정치인들을 굳이 갈아치우지 못하더라도, 그들에게 극단주의가 장사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바뀔 수 있는겁니다.
그러한 변화가 없다면, 상대 진영이 자신들을 극단주의자들이라 공격하는 것도 막을 수 없으며 자신들 스스로를 향한 극단주의 집단이라는 황당한 편견 또한 지워낼 수 없을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