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ko.wikipedia.org/wiki/권리
위키백과에서 권리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보면 당연하면서도 상식적인 설명이 나옵니다.
권리(權利)는 인간과 집단이 국가, 사회, 단체 활동을 함에 있어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힘이다. 또한 법이 보호하려는 이익을 뜻하기도 한다. 사전적인 의미의 권리는 어떤 일을 주체적으로 자유롭게 처리하거나 타인에 대하여 당연히 주장하고 요구할 수 있는 자격이나 힘을 의미한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쓰는 권리라는 단어는 이렇듯 “사법체계”라는 시스템을 전제로 한 개념이고, 당연히 사법 시스템이 보장하고 보호하는 자격이나 힘을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인간으로서의 권리,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려 마땅한 권리와 같은 “인권”이라는 좀 더 근본적이고 상위의 개념을 논할 때 권리는 사법시스템의 보장을 전제로 하지 않게 되므로, 이 때는 철학적인 영역에서 다루어지는 다른 개념으로서 권리라는 개념을 다루게 됩니다. 이렇게 사법시스템을 전제로 하지 않는 태어나서부터 주어지는 무조건적인 권리를 “자연권” 또는 “인권”이라 부르기도 하지요.
이렇게 인간이 무언가의 조건이 없이도 가지고 있는 권리, 즉 “인권”이라는 것의 가장기초적이고 필수적인 부분은 당연히 “생명권”이겠습니다. 이 인간의 당연한 생명권을 고민해보면 철학이 다루고 있는 근원적인 권리라는 것의 본질이 무엇인지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한 사람을 희생시켜서 그 장기들을 가지고 9명을 살릴 수 있다고 가정해봅니다. 그렇다면, 한 사람을 죽여서 9명을 살릴 수 있으니 그 사람의 장기를 강제적출하는 게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만약, 어떤 사회에서 다수를 위해 소수의 생명권을 무시하고 억압하는 게 온당하게 여겨지고 실제 허용되고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런 사회에서는 인간의 생명은 개별성을 가진 독립된 주체가 아니라 얼마든지 계산이 가능한 일개 단위의 일종에 지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런 사회에서 인간의 생명권을 비롯한 인권이 존재한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요.
이렇듯 철학에서 말하는 “권리”란 사법시스템이 규정하는 권리와 다른 개념입니다. 철학에서 말하는 권리는 “마땅히 누려야 하는데 있어 전제조건이 필요치 않으며, 다른 그 어떤 것에 의해 압도될 수 없는 자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인권이라는 것은 사회적인 합의나 사법적인 보장같은 전제조건이 있어야 보장되는 가치가 되어서는 안되는 겁니다.
이런 생각이 지금이야 상식에 가까운 것으로 다들 동의하고 있을지 몰라도,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라는 개념은 생소한 것이었습니다. 종교나 인종, 민족의 구분에 따라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고, 정말로 당연하게 보장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가를 두고 수많은 논쟁이 있었던 게 현실입니다. 인간이 한 인간으로서 “평등”하다는 생각을 조금만 더 확장해도 너무나 당연할 수 밖에 없는 개념이 저마다의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 부정당하고 멸시받아왔던 거지요.
이렇듯 인간의 보편적인 권리란 인간의 능력과 조건에 기반한 존중이 아닌 인간의 보편성, 즉 인간의 욕구(생존욕구, 존중받을 욕구등등)에 기반해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최소한의 욕구충족이라는 개념으로 정리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연권”의 정의와 존재기반이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최소한의 욕구”에 있다고 볼 때 동물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할 욕구가 존재한다고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정말로 동물들에게 기초적인 욕구, 즉 고통을 피하고 생존을 추구하고자 하는 지극히 당연한 욕구는 인간들의 욕구와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하는 “자연권”의 일종으로 편입되어야 할까요? 그렇지 않다면, 이러한 욕구기반의 권리 개념이 아닌 다른 원리에서 출발한 윤리와 인간권리의 규정을 따로 개발하면서까지 동물의 존중받아야 할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욕구를 무시하는 게 올바르고 합리적인 방향일까요?
정답을 제시할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전혀 다른 두 방향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고 서로 머리를 맞대며 논의하는 것이 얼마나 생산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는 자못 기대되는 미래상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