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ko.wikipedia.org/wiki/원시불교
위의 링크를 위키백과에는 원시불교에 대한 설명이 잘 나와있습니다. 기독교에서 예수와 사도의 행적들 한참 후대에 이르러 기록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불교의 창시자인 붓다도 그의 생전 말했던 많은 가르침을 그의 제자들이 암송과 구전으로 보존하던 시절이 무려 100년 넘게 이어져 왔습니다. 문제는 구전으로 전승되던 붓다의 가르침이 정리되고 문서로 남겨진 최초의 시점 이전에 이미 불교계가 분열되 있었다는 점입니다.
불교의 최초의 분열은 발원지인 인도에서 상좌부와 대중부로, 곧이어 수많은 분열이 이어지며 서로 부파불교라는 분열의 시대가 시작된 이후에 그렇게 분열된 각자의 입장을 반영하는 경전이 만들어지기 시작한거죠. 그렇기에 진정한 근본불교의 경전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끊임없는 분열을 거듭한 부파불교의 시대를 넘어 천년의 세월을 넘어 각각의 국가와 권력에 천착해버린 불교의 분파들에서 전승되어지는 경전들 보다는 최초로 구전에서 문서로 정리된 초기 경전들이 붓다의 입에서 나온 원래의 가르침에 가까운 경전일 것이라는 건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붓다는 생전에 설법을 할 때 귀족들이 쓰던 언어로 설법하지 않고 평민들이 쓰던 언어로 설법을 했습니다. 때문에 이러한 초기 경전들도 당시 인도의 왕족이나 귀족들이 쓰던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지지 않았습니다. 인도의 평민들이 쓰던 팔리어로 기록되었죠. 그래서 이러한 초기경전들을 통틀어 팔리삼장(tipitaka)이라 합니다.
https://www.wikizero.com/ko/팔리_삼장
우리나라에서 “불교”라고 하면 으례 대승불교에서 도래한 조계종과 천태종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렇게 대승불교에서 전승되어오는 수많은 경전들을 통달하고 깊게 이해해서 실천하는 것이 불교를 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의 작은 가지를 붙잡고 타고 올라가 결국에는 거대한 근본으로 올라가는 접근법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타고 올라가다 보면, 수많은 교단의 분열의 과정에서 돈과 권력같은 세속적인 이해관계로 인해 무시되고 가리워진 그늘들을 놓치고 엉뚱한 길로 빠지게 될 수 있습니다. 마치 기독교가 걸어왔던 길이 그랬듯이 말이지요. 그렇기에 완전히 반대의 접근을 시도해보는 것도 불교를 이해하고 접근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