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전세계적으로 거의 남아있지 않고 퇴치되었다고 알려진 소아마비는 고대 예술작품들에도 묘사되있을 정도로 오래된 전염병입니다. 그런데, 소아마비가 인류에 본격적으로 공포의 존재로 등극하게 된 건 중세나 고대가 아니라 겨우 100년 전 쯤인 1,900년 전후부터였습니다.

사람들이 공포를 느꼈던 건, 소아마비가 어떤 경로로 창궐하는지, 왜 하필 1,900년 경부터 급속도로 창궐하게 되었는지 아무도 밝혀내지 못한 채 어린아이들을 중심으로 호홉부전으로 사망하거나 후유증인 근위축으로 심한 장애를 남겼다는 점입니다.

다른 여타의 전염병들처럼 후진국이나 위생이 좋지 못한 지역에서 창궐하는 게 아니라 선진국에서, 그리고 전반적인 위생상태가 양호한 지역에서 더 심하게 창궐했으며, 부유층이나 중산층에도 예외없이 창궐하니 그 원인을 종잡을 수가 없었던 거죠. 지금에 와서야 소아마비를 일으키는 폴리오바이러스가 어떻게 전파되는지 규명되어 있지만, 1,900년 전반기를 살던 인류에겐 그야말로 미지의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폴리오바이러스는 앞서 언급했듯이 고대 때부터 우리 인류와 함께 하던 바이러스였습니다. 인간의 장 내에서 살다 대변이나 침을 통해 다른 인간으로 전염되는데, 수천년 전부터 인간과 폴리오바이러스는 함께 부대끼던 존재였기에 인간의 면역시스템에는 폴리오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충분히 존재해 심각하고 치명적인 증상을 일으키는 일이 적었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폴리오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존재하지 않는 영유아들 또한 모유에 포함된 다량의 항체를 먹음으로써 폴리오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와도 대부분 약하게 앓고 지나가는 정도로 그쳤죠. 그리고, 아이가 성장하는 내내 폴리오바이러스에 노출되면서 자연스레 백신을 맞은 것 같이 폴리오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이 형성되었죠.

그런데, 1,900년을 전후해 산업화가 시작되고, 젖을 먹어야 할 영유아들에 “모유 대신 분유”를 먹이기 시작하면서 아기들이 폴리오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몸에 받아들일 기회가 박탈되버린 겁니다. 거기에 산업화와 더 청결한 환경에 더해 위생수준이 높아지다보니 성장하는 과정에서 폴리오바이러스에 노출이 안되어서 자연적인 면역이 형성되지도 않았던 겁니다. 역설적이지만, 산업화와 위생상태의 개선이 면역이 형성될 기회를 가로막아 갑자기 무시무시한 공포의 질병으로 위세를 떨치게 된거였죠.

흥미로운 건, 인간 뿐 아니라 폴리오바이러스 입장에서도 이러한 산업화와 위생 증진으로 인한 인간 숙주의 면역결핍은 재앙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바이러스도 종족보존을 위해서는 숙주인 인간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면 안됩니다. 평생 인간의 장 속에서 별다른 피해도 주지 않고 조용히 번식을 계속하는게 폴리오바이러스의 입장에선 훨씬 더 유리한 생존방식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바이러스들은 처음 인간에 들러붙어 전염될 때에는 인체에 매우 격렬한 증상을 일으키거나 사망까지 초래하는 심한 병증을 일으키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인체에 별다른 해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진화합니다. 그렇지 않고 사람을 죽이거나 치명적인 장애를 일으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바이러스는 전파력이 떨어지고 자연적으로 사멸될 수 밖에 없으니까요.

즉, 폴리오바이러스 입장에서는 인간이 자신들에 대한 면역이 형성되있는 상황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훨씬 더 생존에 유리하다는 거지요. 자연선택과 진화가 일으키는 일종의 패러독스입니다.

결과적으로, 갑작스레 인간이라는 숙주에 엄청난 피해를 안긴 폴리오바이러스는 소크의 폴리오바이러스 백신이 널리 퍼져나가면서 이제는 2020년 이후 파키스탄과 아프카니스탄을 제외한 곳에선 더이상 감염사례가 보고되고 있지 않습니다. 수천년을 조용히 인간이라는 숙주와 공존해오던 폴리오바이러스는 이렇게 인간의 산업화라는 대격변을 맞아 갑작스레 인간에 엄청난 피해를 입히다 결국 “백신”이라는 인간의 강력한 반격에 의해 자연계에서 쓸쓸히 퇴장한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자연계라는 게 절대 단순하지 않고 오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숙주의 면역시스템이 결과적으로는 바이러스의 안정적인 종족보존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는 역설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