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는 것과 일하는 척 하는 것의 차이

요즘 의대증원으로 빚어진 전공의 사직과 의대생 휴학  사태를 보면서 의사의 관점이 아니라 이에 대처하고 있는 정부의 공무원들의 관점에서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정확히는 교육부와 복지부 장차관 및 공무원들이 되겠죠.

이들이 지금 전공의 사직과 의대생 휴학으로 대학병원이 제대로 가동을 하지 않고 수련시스템이 망가지며 의사고시에 응시하지 않아 의사배출도 중단되기 직전인 지금 상황에서 진짜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들이 대화를 시도해야 하는 건 전공의와 의대생이지 의대교수나 개원한 의사들, 또는 의사협회가 아닙니다.

물론, 공무원들 입장에서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대화의 장에 앉혀놓는다는 본질적인 과제는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난제입니다. 지금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수업을 받지 않고 수련받지 않는게 단순히 정치적인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이대로 가다가는 자신들의 미래가 절망으로 바뀌기 때문에 누구랄 것도 없이 자발적으로 결정한 일인데, 사고를 치고 똥을 싸질러놓은 대통령 본인도 아니면서 그들에게 다시 희망과 미래를 제공해줄 권한은 없으니까요. 지금 상황에서 공무원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의대생이나 전공의들이 당장 돌아오고 싶을만큼의 당근을 제시하는게 아니라, 이들이 그나마 귀는 열어두고 정부와 대화라도 이어갈 수 있도록 최소한의 신뢰와 관계를 열어놓는 거겠죠. 

하지만, 현정부의 공무원들은 그렇게 일을 하는게 아니라 일을 하는 척만 하고 있습니다. 격앙된 전공의와 의대생들과 피곤하게 대화를 하기 싫으니 그들을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환자의 생명을 무시하는 이기주의 집단”, “의새” 등등 수많은 모욕적인 표현으로 몰아부쳤습니다. 여기에 전공의들의 사표를 수리해주지 않겠다는 황당한 사표수리 금지 같은 초법적인 대응을 일삼다 이제 와서는 사표를 수리해주겠다,,, 그런데 6월달 이후 시점으로 수리하라는 꼼수를 쓰며 언제든 복귀만 해봐라, 그러면 복귀한 전공의들에게 보복과 철퇴를 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틀어쥐겠다는 속내를 굳이 숨기지도 않고 있습니다. 

의대생들에도 한 학기가 다 지나간 지금에 와서 학기제를 학년제로 바꾸며 지난 동안 수업이 이뤄지지 않은 것을 봐줄테니 돌아와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 뻔한 수작질을 하는데 이게 대단한 특혜이자 봐주기라는 공치사를 늘어놓는 건 또 잊지 않고 하지요. 의사고시도 한 학기를 빼먹은 의대 4학년들에게 무슨 “특혜”를 줘서 의사고시를 볼 수 있게 해주겠다는 공치사 늘어놓는 것도 마찬가지구요.

이미 뒤통수를 여러번 맞아가며 이제는 변호사들의 자문까지 받아가며 복지부 공무원들의 워딩 곳곳에 법적인 함정이 숨어있다는 걸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변죽을 울리는 발표들이 거듭되면 거듭될 수록 의대생들과 전공의들에게 쌓이는 건 모멸감과 그럴 줄 알았다는 식상함 뿐입니다. 현 정권의 공무원들이 발표하는 수많은 발표들, 호소문, 조치들은 정작 전공의와 의대생을 향한 것들이 아니라는 거죠.

그들의 이런 발표는 당사자가 아니라 대통령, 그리고 여론을 형성하는 유권자들을 향한 것입니다. “우리는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다”라는 시위를 하려는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 척을 하려는 목적으로는 더없이 부합하는 말들이고 대책들이지요. 사안의 핵심은 하나도 들어줄 생각조차 없으면서도 마치 무언가를 열심히 제안하고, 또 양보하면서 협상하는 척 하기에는 적절한 변죽 울리는 말들을 거의 날마다 열심히 쏟아내고 있는걸 보면, 이들은 명백하게 “일하는 척 하는” 공무원의 전형적인 행태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공무원들이 진짜 일을 하려 했든, 지금처럼 일하는 척 하든 VIP가 싸지른 똥을 치우는 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차이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무원들이 진짜 일을 하려고 접근했다면 최소한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이 점점 더 우리 모두에게 절망적으로 흘러가는 상황에서 좀 더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지금같은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유권자들이 더 많아졌을 것이고, 의대생이나 전공의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진지하게 “지금처럼 하는게 답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수도 있겠죠.

결국, 누군가 가장 높고 존귀한 자리에서 투척한 똥을 누군가는 손을 더럽히는 걸 감수하고 치워야 합니다. 똥은 한 사람이 쌌지만, 치우는 데 들어갈 인력은 수백명이 되겠죠.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세상이 원래 그런 거고,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원래 그런 자리인것을요. 그나마 지금 이걸 치우지 않았을 땐 결국 수십만명이 똥물을 뒤집어 쓰게 될 수 밖에 없고, 지금 그런 사태를 맞이하고 있는거지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일을 하는 척만 하는 공무원들 때문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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