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몇 명을 늘리면 졸업생들이 소아과 의사를 하려고 할까?

좀 철지난 이야긴데, 여전히 이 주제를 가지고 말싸움 하는 분들이 온라인에 많더군요. 의사나, 의사 싫어하는 분들이나 서로 댓글로 드잡이질 할 거 없이 차분히 생각해보면서 이 문제를 정리해보는 것도 나름 생산적일것 같아서 글을 써봅니다.

자, 지금 의대 정원을 2,000명을 늘리면, 모자라는(?) 소아과 의사가 제대로 충원이 될까요? 의사들이 요즘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레토릭 중 하나가 아이들 수는 20년 전보다 절반도 안되는데, 소아과 의사 수는 두 배(정확히는 84%)가 늘었는데도 왜 소아과의사가 부족하다며 의사 수를 늘리려 하느냐는 건데,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소아과 의사 수가 적다고 느끼고, 심지어는 오픈 런 같은 진귀한 현상까지 일어나는 걸까요?

첫째 원인은 장롱면허입니다. 소아과 전문의의 수는 20년 전보다 두 배가 늘었지만, 실제 현업에서 개원하거나 봉급장이 의사로 진료를 하고 있는 의사 수는 두 배 까지 늘어나지 않은 게 크죠.

두번째 원인은 아이들 부모님들이 진료를 받기 원하는 시간이 제한적입니다. 오픈런이니 뭐니 북새통을 겪는 시간대가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한가한 시간대가 찾아오지요. 정말로 효율적인 진료를 하려면 100% 예약제 운영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말 죽기 일보직전의 상황이 아니면 응급실 방문도 자제시켜야 하구요. 그런 식으로 아이들 부모님의 편의를 희생시키면 현재의 병의원으로도 문제없이 진료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진료시간을 강제로 할당하다보면 내가 연차를 내거나 아이들이 등교를 못하게 되는데, 그건 절대로 건 용납할 수 없으니까 의사 수를 늘려라 마라 하는 측면이 큽니다. 

물론, 진료시간을 강제적으로 배정하는 것이 부당하다 느낄 수 있으니 두번째 원인은 그렇다 치고, 첫번 째 원인인 장롱면허의 존재는 어지간히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소아과 진로를 선택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걸 암시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의대에 들어가면 취업율이 90% 이상이 되고, (전문의 과정을 거치고 필수의료과는 가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연봉도 직장인들 평균연봉 수준을 훨씬 뛰어넘으니까 의대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이미 의대가 곧 취업보장을 의미하는 시대는 한참 전에 지나갔다는 걸 사람들이 잘 모르더라구요. 정도의 차이가 있다 뿐이지 간호사나 의사나 장롱면허의 존재는 점점 더 심각한 문제가 되가고 있다는 겁니다.

한 영역에 전문의가 되기 위해서는 5년이라는 시간동안 거의 인권을 내던지다시피 할 정도의 격무와 공부에 시달린 다음에 비로서 자격증을 얻는겁니다. 그런데, 앞으로 5년간 죽어라 고생해야 하는 사람들은 차치하고, 이미 소아과 전문의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더이상 지불해야 할 비용이 전혀 없는데도 엄청나게 많은 소아과 전문의 자격증 소지자들이 소아과 진료 현장을 떠나서 다른 일을 하거나 그냥 놀고 있는거에요.

그런데, 이런 장롱면허들조차 더이상 소아과 진료를 하지 않고 있는데도 소아과 전문의 자격증을 따기 위해 수련의와 전공의 과정을 거치라고 누군가가 의대 졸업생들에게 이야기한다고 해봅시다. 의대 졸업생들이 그 말을 들으면 뭐라고 할까요? 특별히 부모님이 잘나가는 소아과전문병원을 가지고 있어서 병원을 물려받아야 하는 경우라든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소아과 전문의가 되어 의료선교를 떠나겠다는 비젼을 가지고 있다든지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미친놈이라 하겠죠.

결국 의미있는 숫자 이상의 “장롱면허”가 존재하는 영역에서는 아무리 충원을 하려 해도 배출되는 전문의 수는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건 전적으로 앞뒤가 뒤집힌 이야기죠. 소아과 전문의가 갑자기 비젼이 생기고 지금 소아과 진료를 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들이 다 해결이 된다면, 누가 하지 말라 해도 당장 장롱면허 소지자들부터 소아과 진료를 하겠다고 덤벼듭니다.

미래가 있어야 지원자가 생기는 거지, 지원자가 늘어난다고 없던 미래가 생기는게 아니라는 건 사실 초등생도 알 수 있는 이야긴 아닌가 싶어요.

사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장롱면허”의 심각성은 의사들보다 간호사가 더 큰 문제입니다. 어처구니 없는게 수많은 간호사들이 태움문화 같은 저질스런 직장문화와 격무, 환자나 의사들로 인해 느끼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때려치고 장롱면허로 전락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종합병원들이 싸게 부려먹을 간호사가 부족하다고 간호사를 더 뽑는다고 합니다. 지금 소아과 같은 필수의료과 전문의들의 장롱면허 문제점은 간호사 면허증의 심각성에 비하면 정말 새발의 피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의사들이 이렇게 욕먹고 논리적으로 성립이 안되는 주장들로 마음에 상처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간호사들의 현실을 생각하면 오히려 미안해집니다. 이런 비효율과 어처구니 없는 뻘짓들이 학원들과 병원자본의 돈벌이를 위해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걸 보면 정말 미친 세상이 아닐 수 없어요.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새버렸는데, 결론적으로 의대 정원을 지금보다 몇배로 늘리면 서로 소아과 의사를 하려고 할까? 라는 질문에 정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졸업생 숫자가 아니라 소아과에 과연 미래가 존재하느냐 아니냐에 달려있는거에요. 소아과에 미래가 생긴다면 의대 졸업생들이 소아과 전공을 하겠다고 달려들기 전에 장롱면허들부터 다 진료현장으로 복귀하는게 먼저겠지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