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다큐 – 마이클 센델 교수의 성찰
영상 시청을 권하는 의미로 내용 전부를 옮겨오지는 않고 인상적인 부분만 잠깐 발췌해봅니다.
1980년대부터 90년대, 2000년대 초반까지 부의 불평등이 심화됐어요. 그런데 주류 정당들은 중도 우파든 중도 좌파든 이 불평등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이 말한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죠.
“글로벌 경제에서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대학에 가서 학위를 따라. 네가 얼마나 벌 수 있을지는 네가 얼마나 배우느냐에 달렸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
제가 상승의 레토릭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조언이 간과한 것은 그 안에 담긴 암묵적인 모욕(insult)이었어요. 그 모욕이란 건 이런 겁니다.
“새로운 경제 체제에서 고전하고 있고 학위도 없다면, 당신의 실패는 당신의 잘못일 것이다.”
대다수가 갖고 있지 않은 대학 학위를 품위있는 일자리와 삶을 위한 필수 조건으로 삼는 경제체제를 만드는 건 어리석은 일이에요. 이런 접근은 일종의 포퓰리즘적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지름길이에요. 그게 바로 우리가 목격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현상이죠.
대안에 대해 말하고 있는 부분은 마이클 센델 교수의 주장을 경청하지만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마이클 센델 교수는 현재의 미국 사회와 정치의 병리적인 현상들을 가장 명쾌하고 간결하게 분석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간단하지 않은 게 포퓰리즘적 반발을 일으키고 있는 이들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 구체적인 피해액수나 사례가 아닌 모욕감이라는 감정의 형태를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감정은 모호합니다. 명확한 근거가 존재하지 않고 잘못된 근거에서 출발한 감정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모욕감이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한 사람이 느끼는 모욕감은 별게 아니지만 주변의 이웃들과 공동체를 구성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조금씩 이를 공감하게 된다면 끝도 없이 확대재생산되고 강화되며 결국에는 거대한 세계관을 구축하게 됩니다.
그러한 세계관은 같은 감정을 공유하지 않던 이들도 계속 끌어들이며 정치적인 생명력을 얻게 됩니다. 그렇게 유럽의 극우정당들이 득세하고 트럼프가 재선을 하게 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가장 강력했던 집단적 모욕감은 1차세계대전 패전국이었던 독일에서 나왔고 결국은 모욕감이 광기로 변질되어 아돌프 히틀러를 낳았던 걸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수천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하고 독일민족 이외의 이민족은 노예가 되어 마땅하다는 악마적인 광기를 낳은 것이 결코 무슨 거창한 범죄에서 시작한 게 아닙니다. 집단적으로 공감되고 강화되던 모욕감에서 시작해서 그 악마가 출현할 수 있었던 겁니다. 악은 평범함 속에 숨어서 양심에 의해 적발되지 않는 가운데 성장합니다.
마이클 센델 교수가 미국사회에서 집단적인 모욕감이 생겨나게 된 연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도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저런 모욕감이 정말로 실체가 존재하는 것인지 의아해집니다. 학위도 없다는 것이 실패의 원인이라는 인식이 과연 당시의 경제현상을 정말로 제대로 표현해주는 명제가 맞는 것일까요? 사실은 대학 학위가 성공과 안전을 약속해주는 어떤 근거도 되줄 수 없었다는 게 진실이었습니다. 대학 학위를 딴다고 해서 정말로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도,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던 것도, 품위있는 일자리를 보장받는 것도 아닙니다.
언제나 그랬지만 성공은 소수의 몫이었고 자수성가로 엄청난 부와 권력을 쥔 사람들 중에는 대학 학위가 아무런 역할을 해주지 않았던 경우가 다수 섞여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실패와 불우한 환경을 학위가 없었기 때문에, 학위 없는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사회 때문이라 생각하며 모욕감을 느끼는 건 단지 자신의 화풀이를 넘어서 다른 이들에게 설득력이 있는 제대로 된 분석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이들의 생각이 옳다고 지지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단결해야 한다 말하고 세력을 이루어 잘못된(순전히 그들의 눈에)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고 부추기는 사람은 정치적으로는 기회주의자이며 도덕적으로는 몰염치한 선동가라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미국의 트럼프나 유럽의 극우정당들이 득세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움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