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인 장비다”의 의미

장판교에서 장비가 홀로 조조군(만총의 부대)을 막아서서 사자후로 내지른 대사가 “나는 연인 장비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여기서 연인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농담은 농담으로 제껴두고, 연나라 사람 장비라는 자기소개는 실제 정사에서도 언급되고 있을 정도로 장비 본인이 자주 쓰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왜 장비가 연나라 사람임을 자처하는지 구체적인 이유는 알 수없으나, 그의 출생이 탁군 지역으로 과거 연나라 땅에 속해있다는 것에서 근거를 확인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한나라의 국가시스템이 살아있는 동안 자신을 연나라사람으로 자처하는 행위는 역모에 해당하는 중죄가 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지역감정이나 출생지에 대한 자부심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는거지요.

예를 들어 통일신라시대 때 전라도에 사는 누군가가 “나는 백제 사람이다”라고 공개적으로 외친다면 그건 빼도박도 못할 역모가 되는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조조에 의해 유비가 크게 패해 백성과 함께 도주하던 시기는 아직 한나라가 완전히 무너지지도 않았고, 조조가 헌제를 노골적으로 꼭두각시처럼 부리던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시기임에도 노골적으로 자신을 연나라 사람으로 자칭했다는 건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을 수 있는거죠.

  1. 탁군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공손찬이 민중들에게 지역감정을 부추겨서 훗날 패업을 이루려고 했을 것이다. – 실제로 장비는 공손찬의 부장이나 다름없던 유비와 함께 하던 사람이었죠.
  2. 당시의 황제나 조정은 이미 지방정부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어려울만큼 상황이 열악해졌고 각각의 지역이 제후들과 호족들에 의해 준 독립국과 마찬가지의 강력한 지역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3. 장비의 족보 상 조상 중에 연나라 때 고관대작을 지내던 인물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타임머신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장비를 직접 인터뷰해서 그 자초지종을 물어볼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 그가 외치던 한만디 말에서도 무언가 부조리함을 감지하고 그 배경을 따져보는 호기심과 추리력을 잃지 않는다면 삼국지를 한 번 더 읽더라도 좀 더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할 기회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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