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royalsocietypublishing.org/doi/10.1098/rspb.2021.1052
위의 논문에서 “에피소드 기억(episodic memory)” 이라고 부르는 기억력은 독특한 과거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무엇이, 어디서, 언제 일어났는지를 포함하여 이벤트가 발생한 맥락에 대한 정보를 다루고 저장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다른 형태의 기억능력은 의미기억과 절차기억이 있습니다. 특정 사건의 맥락이 없이 학습을 통한 단순지식(사과는 빨갛다 등등)을 기억하는 능력은 “의미 기억(semantic memory)”이라고 하며 자전거를 탈 때 어떻게 움직이며 언제 어디에 힘을 주는가 같은 기억을 “절차 기억(procedural memory)”라고 합니다. 뇌에서 이들을 관장하는 메커니즘은 에피소드 기억과 별개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에피소드 기억은 노화가 진행될수록 기억력이 떨어지게 되지만, 의미 기억과 절차 기억은 나이에 상관없이 유지됩니다.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건 에피소드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걸 의미합니다. 위의 논문에서 다루고 있는는 건 에피소드 기억력입니다.
예전에는 이러한 에피소드 기억이 인간만의 전유물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영장류나 포유류를 넘어 오징어같은 연체동물까지도 이러한 에피소드 기억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또한 에피소드 기억을 보유하고 있는 모든 종들은 공통적으로 나이를 먹을수록 감소한다고 알려졌는데, 이번 논문에서는 유독 “갑오징어(cuttlefish)에서는 나이를 먹어도 에피소드 기억력이 계속 유지된다는 겁니다.
노화는 대게 산화반응에 의한 세포의 파괴와 연관이 있어, 체내에 강력한 항산화 매커니즘을 보유하는 경우 나이를 먹어도 신체 노화가 지연되는데, 실험 대상인 갑오징어를 비롯한 두족류는 오히려 다른 종에 비해 항산화 매커니즘이 약해서 수명도 짧고 노화도 급격하게 진행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피소드 기억력이 나이를 먹어도 유지된다는 점은 갑오징어가 노화에 의한 기억력의 감퇴 또는 치매의 예방이나 치료에 힌트를 줄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갑오징어에서 발견한 기억력 감소 예방치료” 또는 “갑오징어에서 추출한 치매 치료제” 같은 것이 나올지도 모르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