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과 건강이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던 인플루언서들의 근황

슴슴도치 유투버 숏츠

비만을 혐오스럽고 열등한 것으로 규정하고 과도한 다이어트를 당연시하는 사회적인 풍조는 잘못된 것이다 – 그럴 수 있음

비만은 자연스럽고 당당한 것이니 사회적으로 이를 드러냄으로서 차별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 나서야 한다 – 그럴 수 있음

비만은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고도비만)몸을 사랑한다 – 사람들 생각이야 다양하고 미적 기준은 취향의 영역이니 존중해줄 수 있음. 다만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독특한 기준을 강요하진 말자.

자신들은 이대로도 너무나 건강하기 때문에 사회가 강요하는 기준에 맞춰 몸매를 가꿀 필요가 없다 – “건강”이라는 단어가 3,40대에 사망하는 걸 의미하는 단어라고 생각하는 족속들의 주장에 우리가 관심가져야 할까요?


비만이라는 육체적 상태를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는지는 시대나 지역마다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인간의 평균수명이 30-40대였던 고대 시대때에 비만은 권력과 부의 상징이자 모든 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뭐가 되었든 잘 먹지 않으면 불가능한 상태였으며 기아에 허덕여 마른 몸매를 가지고 있는 이들에 비해 훨씬 우월한 노동력이나 전투력을 확보하여 계급 상승의 기회도 더 많이 주어지는게 당연했거든요. 무엇보다 평균 수명이 40대였던 당시라면 이런 몸상태가 “건강”하다고 여겨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게 당연했거든요.

그런데, 평균수명이 70세를 넘어가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 고도비만과 초고도비만은 고대시대와 상황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평균수명의 절반 밖에 살지 못하고 죽는 체형을 건강하다고 받아들이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 아니라 당위론 적으로도 그러면 안되죠.

개인이 어떤 생각을 말하는 것을 존중받을 자유, 즉 표현의 자유라는 것은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보장되어야 하는 조건과 한계가 있는 권리입니다. 많은 비만인구들이 그러한 비만상태로 인해 질병에 빠져 큰 고통을 받고 주어진 수명대로 살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게 될 수 있는 발언을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으로 허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그래도 저런 어리석고 수많은 이들에게 불행을 끼칠 수 있었던 사람들이 3,40대에 생을 마감함으로서 저래서는 안된다는 걸 보여준 건 그나마 다행이 아닌가 싶습니다. 죽은 고인들에게는 안타까운 이야기겠지만, 잘 죽었다는 표현이 저주가 아닌 말 그대로 사회의 유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