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년 전, 전공의 파업이 두달 정도 지나던 때 나왔던 유투브 영상입니다. 1년이나 지난 컨텐츠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냐 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으나, 영상에서 담고 있는 가치기반 지불제도라는 단순히 윤석열정권의 일회성 구호가 아닌 지난 보수-진보 정권들을 모두 관통하고 있는 복지부 관료들의 꿈과 같은 겁니다.
간판으로서 “가치기반 지불제도”라는게 얼마나 섹시한 구호냐면
- 이 제도의 원형이 무려 미국겁니다. 이미 실패한 의료시스템으로 유명해진 영국이나 사회주의 색채가 짙은 유럽이 아닌 미국의 제도를 원형으로 내세우면 보수진영의 반발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죠.
- 이게 도입된 지 얼마 안 된 제도라 계속 세부적인 내용들이 바뀌고 있으며, 실시하고 있는 곳이 미국 한 곳 뿐이라 정확한 틀이 정해져있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변형해서 들여와도 헛점을 지적하기 쉽지 않죠. 그만큼 관료들 입장에서는 자기들 입맛대로 장난질을 칠 여지가 크게 열려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 가치기반 지불제도 내지 성과기반 지불제도도 본질적으로는 포괄수가제의 일종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미 산부인과와 외과 수술 쪽에 부분적으로 도입되어 이로 인해 산부인과와 외과의사 개원의들의 씨가 마르게 만들어버린 포괄수가제가 더이상 확대실시할 명분이 없는 상황에서 이름이라도 더 멋지고 미국산이라는 그럴듯한 간판을 내세우면 (의사들이야 당연히 반대하겠지만) 여론을 잠재우는데 유용할 거라는 계산이 너무 뻔히 보이는 수작이지요.
사실, 포괄수가제라는 지불시스템 자체가 말도 안되는 나쁜 제도인건 아닙니다. 문제는 관료들이 의료현장의 실제상황은 커녕 의학적인 지식마저 무시한 채 자기들 편할 대로 지불기준을 설정한다는 데 있습니다. 맹장염 환자는 어떤 복잡한 상황이나 합병증이 발생해도 CT는 한 번 이상 찍으면 무조건 적자가 날 정도의 돈만 지불하게 되있는 게 우리나라 포괄수가제의 실상입니다.
이정도면 더이상 원가보존이 된다 안된다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래놓고 이른바 “필수의료”가 살아남길 바라는 건 말도 안되죠. 결정적인 건 그런 지불기준을 의학적인 고려나 객관적이고 움직이지 않는 기준이 아니라 시시각각 관료들 마음대로 바뀔수도 있다는 거지요. 처음에는 어느정도 병원이나 의원 운영이 가능할 정도로 후하게 기준을 정했다가 어느 순간 도저히 병의원을 운영할 수 없게 바꿔버릴 수도 있고, 이걸로 사회적인 문제가 터져 여론이 뒤숭숭하면 또 그걸 무마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지불기준을 올려줄 수도 있고,,, 모든 건 정치권과 관료들 맘대로가 되버리는 겁니다.
결국 이런 가치기반 지불제도라는 간판을 내걸고 관료주의와 정치 편의주의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폭탄을 고스라니 담고 있는 필수의료 패키지라는 것이 강행된다면, 10년 쯤 지난 후엔 결국 공공의료시스템의 붕괴와 의료민영화라는 확정적인 결말 외에 다른 엔딩은 볼 수 없게 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