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은 쉽게 퍼지지만, 진실은 언제나 힘든 증명을 필요로 하죠.”
이는 인류역사의 어디를 들여다봐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게 당연합니다.
- “거짓”이 만덜어지고 유통되는 가장 직접적인 목적은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속이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거짓말을 만들고 유통하는 자는 어떻게든 사람들이 잘 알아듣고, 유포하기 쉬운 주장들과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내용들을 담게 됩니다. 반면, “진실”은 누군가가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가감없는 사실입니다. 그걸 듣고 받아들이는 인간의 편의나 기호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내용이니 거짓보다 훨씬 모호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 거짓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고 말초적인 감정을 자극하기 때문에 훨씬 더 빨리 사람들 사이에 유포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빨리 유포되는 거짓은 수많은 사람들, 즉 다수에 의해 진실로 받아들여져 훨씬 더 강고하게 진실인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강력한 선점효과를 가지게 됩니다. 이렇게 널리, 그리고 동질감을 형성하는 다수에 의해 고착되버린 거짓을 무너트릴만한 임팩트를 진실이 가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애초에 진실은 인간의 편의나 취향을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진실은 언제나 거짓보다 더 “불편”할 수 밖에 없습니다.
- 받아들이는 인간들의 입장에서 거짓이 진실보다 훨씬 “유익”한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이 거짓을 감지하고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서는 막대한 시간이나 금전, 그리고 인내심과 같은 심리적 비용이 필요합니다. 수많은 거짓말을 쉴새 없이 쏟아내는 영향력 많은 셀럽 한명의 한마디 한마디의 진위를 간파해 이를 입증하는 일은 한 사람의 인생을 모두 쏟아부어도 불가능하지요. 그리고, 그런 막대한 비용을 지불한 끝에 진실을 판멸한다고 해서 거짓말쟁이 정치인이나 셀럽이 타격을 받고 몰락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친절하게 진위를 감별해준 사람의 말은 여전히 자극적이지도 않고 사람들의 감정을 부채질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진실이 거짓을 이긴다는 희망 섞인 주장 내지 순진한 당위론은 사실이 아니라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자기 듣고 싶은 것을 듣지 진실을 들으려 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강제적이고 일방적으로 진실을 주입한다고 해서 그 사회가 건강해지거나 사람들에게 유익한 것도 아닙니다. 어차피 자기 자신이 고민하고 치열하게 검증하고 납득한 끝에 나온 진실이 아닌 주입된 진실은 거짓보다도 더 해로운 독약이 될 수 밖에 없으니까요.
사회의 구성원이 얼마나 진실에 귀를 열고 진위를 가리는 데 얼마나 많은 비용을 치룰 각오가 되어 있으며 듣고 싶은 것보다 진실을 받아들여야 당장의 나 자신에게는 그리 좋은게 없을지언정, 장기적으로는 사회를 더 안전하고 건강하게 한다는 사실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동의하하고 있는지에 따라 진실이 더 힘을 받고 그 빛을 넓게 비쳐주는겁니다.
한마디로 진실이 거짓을 누르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양심”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양심은 다름아니 나 자신이 그 모든 불편함과 피해를 감수하겠다 각오하는 나의 양심과 실천에서 출발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