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문제가 워낙에 난맥상으로 꼬여있고, 제 밥그릇과 직결된 문제라 다른 건 신경도 못쓰고 있었는데 “서울대 10개 만들기 공약”이라는 게 현정부에서 정말로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었더군요.
설마 말 그대로 서울대 10개를 만드는 황당한 일을 할 리는 없을거라 내용을 들여봤습니다. 한국판 캘리포니아 대학교 시스템으로 지방의 거점 국립대를 지역 산업체들과 연계해서 연구중심 대학교로 발전시켜서 인재유출을 막아보겠다는 포부더군요. 그래서 그걸 추진하기 위해 들어갈 예산이 약 3조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서울대의 한 해 입학정원이 3천명 정도이므로 재편된 이후 지방거점 국립대 정원은 10배인 3만명,,,
서울과 수도권에 있는 대학교나 지방 사립대학교의 역차별 문제는 이해당사자들에게 심각한 문제이겠지만, 나라의 발전과 지방격차 해소라는 대의를 위해 그냥 쌩까자 치고, 문제는 3조원이라는 예산으로 정말로 지방 거점 국립대들이 지역 기업체와 연계되는 연구중심 대학으로 재편되는게 가능하겠냐는겁니다.
1. 상식적으로 지역에 존재하는 기업체들이 삼성이나 LG, SK 같은 재벌기업들의 핵심 계열사같이 정말로 R&D 능력이 절실한 첨단 기술기업인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요? 그리고, 애초에 기업 자체가 거의 없는 강원도나 호남지역들에서는 성공할 수 있는걸까요?
2. 이미 대학교를 연구중심대학으로 재편하려는 움직임은 문재인 정부 때부터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대를 제외하면 연구중심대학이 정착이 안되는 이유가 뭘까요? 대학교 건물이나 장비가 없어서있까요? 아니면 유능한 대학교수가 없어서? 아닙니다. 연구중심대학이 살아남기 어려운 이유는 그런 공급쪽 문제가 아니라 수요가 없기 때문이에요. 기업이 기술이 절실히 필요하고, 그러한 기술을 개발해주는 대학교에게 충분히 금전을 제공할 능력과 의사가 있다면, 정부가 하지 마라고 해도 연구중심으로 대학교가 운영될겁니다. 아니, 그 전에 그런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연구실과 연구인력을 확보하겠죠. 왜 수요가 없는데 나라에서 피같은 예산을 펑펑 써서 공급을 늘려준다고 할까요?
이 서울대 10개 만들기 공약을 보면 볼수록 지난 정권의 “의대정원 2,000명 증원”과 닮은꼴이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애초에 이런 공약이 남발되는 이유는 정말 효과가 있어서가 아니라 보여줄 수 있어서이고, “예산”을 타먹기 좋아서입니다. 이미 의대증원 소동을 빌미로 어마어마한 예산을 각 대학교와 복지부에서 가져갔고, 이걸 도로 뱉어낼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도 마찬가지에요. 어차피 해당 지역에 연구개발에 대한 수요가 갑자기 수십배 늘어날 일도 없는데 지역당 3천억원 넘는 예산이 지방거점 국립대의 어디로 들어갈까요?
장비 사고 건물 짓고, 대학교수 충원하는 데 들어가겠죠. 연구활동 그 자체에 돈을 지원해주고 싶어도 연구개발에 대한 수요가 갑자기 몇배씩 늘어날 수는 없는거니까요.
여러 영역에서 수도권과 지역의 격차를 줄여보겠다는 대의명분을 나무라는 건 아닙니다. 철학적으로 격차해소라는 가치를 폄하할 이유는 없죠. 그런데, 격차해소를 “상향평준화”를 봉해 해결해보겠다는 건 웃기지도 않는 보여주기식 돈지랄로 귀결될 수 밖에 없습니다. 말이 좋아 상향평준화지 “인위적 공급과잉 조장”에 불과한거죠. 지역에 환자가 없어서 병원을 운영해도 적자가 나는데, 의사 수를 늘리겠다는 수작이나, 지역에 제대로 된 기업이 없어서 연구개발 수요를 늘릴 수 없는데 연구전문 대학교부터 만들어놓고, 대학교수들은 연구비를 확보할 수 없어서 쫄쫄 굶어도 공무원(국립대 교수니)이니 괜찮다는 논리나,,, 제가 보기엔 다를 게 없어보인다는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