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담배를 끊어야지, 이번엔 술을 끊어야지, 운동을 해야지, 책을 읽어야지,,, 사람들은 많은 결심을 합니다.
그 결심을 비웃을 이유는 없죠. 그런데, 십중팔구 그런 결심은 작심삼일이 되어 무너지게 됩니다. 왜 그렇게 결심했던 것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걸까요? 궁즉통의 원리를 생각해보면 이걸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궁즉통, 즉 궁하면 통한다는 말은 주역에 나오는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 (窮卽變 變卽通 通卽久) 라는 경구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궁하면 곧바로 통하는 것이 아니죠. 궁할 때 적응을 위해 변하지 않으면 절대 통할 수 없다는 것이 원래 주역에서 가르치는 원리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마음을 먹으면, 그것이 실천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목표를 완수하여 성취하는 것에 곧바로 다다르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먹으면 그 마음이 뜻을 세우고 나서야 그 세워진 뜻에서 제대로 된 실천과 행동이 완성되고, 비로서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마음을 먹고 결심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뜻을 세워야 하며, 뜻 또한 내 마음에 비추어 올바르고 정당한 뜻을 세워야만 온전한 행동과 성취를 이룰 수 있는겁니다.
예를 들어 담배를 끊겠다는 결심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그런 결심을 한 이유가 “막연히 무서워서”, “마누라가 다그치니까”, “(내 몸 하나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는)자존심이 상해서” 같은 거라면 제대로 담배를 끊을 수 있을까요? 사람의 몸은 항상 편한 것을 추구하고, 의존하던 약물을 끊지 않는 걸 추구하는 강한 본능이 있습니다. 담배는 설령 제대로 끊고서 몇 년이 지나도 문득 생각이 나고 강한 끌림과 유혹이 사라지지 않는 약물입니다. 그러한 동기에서 출발해서 “뜻”을 세우면 당연히 그 뜻은 유혹에 휩씁려 언제든 무너질 수 밖에 없을겁니다.
담배를 끝겠다는 결심은 같더라도 “이제 막 태어난 딸과 함께 하는 시간들을 위해” 담배를 끊겠다 결심한 사람은 단순히 “금연”이 아닌 “가족과의 행복”을 뜻으로 세운 상태이기 때문에 항상 흔들릴 지언정 뒤집혀 무너지기는 쉽지 않은게 당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를 결심하는 때에는 반드시 내가 지금 어떤 뜻을 세웠는지, 그 뜻이 혹여 불순하거나 허탄한 데 세워진 것은 아닌지를 깊게 고민하면서 숙고하는 시간이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