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대체 불가능성”이란

직장에서 열정을 불태워 열심히 일했고, 독보적인 성과를 내서 큰 공헌을 했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내가 수십년 간 바쳐온 충성과 공헌을 알아주기는 커녕 “이젠 쓸모없으니까” 내지는 “더 나은 사람이 있으니까” 나를 해고하거나 가치없는 밥버러지처럼 취급하기도 합니다.

이건 엄연한 현실이자 대비하지 않으면 모든 직장인에게 반드시 찾아오는 미래입니다. 회사라는 게 결코 구성원 한사람 한사람의 사정이나 마음을 알아주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직장인으로서 이런 억울하고 화딱지 나는 미래를 모면하기 위해서는 무얼 해야 할까요?

일단, 내가 실력을 기르고 능력이 출중해지면 회사가 나를 알아줄까요? 능력있는 직장인이란 회사에서 끝까지 생존할 수 있는 필요조건은 될 지언정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서 내가 어떤 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연구가 대박나서 “노벨상”을 받았다고 해봅시다. 그럼, 그 회사에서 나를 “대체 불가능한 핵심인력“으로 인정해줄까요?

얼핏 생각하기엔 그럴 것 같지만 현실은 전혀 아닙니다. 내가 노벨상을 받은 것이 회사에 일정정도 인지도를 올려주는 효과는 있을지언정, 내가 노벨상을 받은 것이 회사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그걸로 회사가 당장 돈을 벌 수 있는게 아니라면, 내 능력이나 업적은 회사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겁니다. 오히려 회사 입장에서는 나를 부담스러워 할겁니다. 혹여 “노벨 상을 받은 나에게 이딴 수준의 대우밖에 안해주냐”고 불평불만을 터트리게 된다면 회사는 이로 인해 여론의 뭇매를 맞고 회사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지는걸 각오해야 하니까요.

회사 입장에서 절실히 필요한 건 아무데서나 구할 수 없는 “대체불가능한” 인력입니다. 그러한 대체 불가능한 인력이 무엇인지를 이해한다면 적어도 내가 직장 안에서 “무엇을 목표로 노력하여야 하는가”를 확실히 설정할 수 있겠죠. 내가 목표로 할 대체 불가능성의 조건은 1. 회사가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어야 하며, 내 역할과 능력이 없어지면 회사가 명백한 손실을 입을 것, 2. 그런 직무나 능력을 다른 이들에게 인수인계해줄 수 없는 것이어야 합니다. 내가 언제든 직장에서 잘리면 후임에게 인수인계 해줄 수 있는 직무나 능력이라면, 회사는 언제든지 나를 자를 수 있습니다.

이 두가지 조건을 생각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을 나만의 “대체 불가능성”으로 설정해 노력할 것인지를 생각할 수 있을겁니다.

첫째는 희귀한 면허나 자격증이겠죠. 특히 회사에서 절실히 필요로 하는 면허나 자격증이어야 겠지요. 사실 면허증이나 자격증은 지금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한 것을 넘어 지금보다 더 좋은 회사로 옮길 수도 있는 만능기에 가깝기 때문에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없겠죠.

둘째는 업무성과에 기여할 수 있는 나만의 능력조합을 만들고 그걸 통해 직장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직장인들이 착각하는 게 “업무”라는 게 윗사람이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시키는 거, 아니면 업무분장이나 규율에 명시되있는 영역들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업무를 “열심히” 하면 내가 열심히 하는거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그런 건 “안하면 바로 해고대상”이 되는 최소한의 요구사항 또는 직무영역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어 영상의학과 의사가 병원에서 부여받은 업무라는 게 영상판독, 영상장비 질관리, 초음파 검사 등등이라고 생각하고 주어진 업무들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영상의는 그 병원에서 오래 못버티고 병원 경영진과 갈등을 빚은 채 다른 병원으로 이직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영상의가 감당해야 하는 업무의 본질은 병원이 영상검사를 시행하면서 오진이나 각종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혹시라도 사고가 발생하면 최대한 빨리 대처해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조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강구하는 데 있습니다. 굉장히 광범위한 영역이고 추상적이고 모호한 일들이 많으며, 그런 업무의 80% 이상은 일 자체가 아니라 대화, 소통하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성과를 내고 회사가 “정말 필요한 핵심인력”으로 나를 인식시키기 위해서는 그렇게 규정으로 명시된 업무는 기본이고, 거기에서 다시 확장해서 회사 입장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무언가를 끌어내야 합니다. 그걸 위해서는 해당 업무에 필수적인 직능에 여러가지 나만의 능력들을 조합해서 추가적인 성과를 만들고, 그러한 능력의 조합이 다른 사람들이 쉽게 따라하기 어려울만큼 독특하고 회사의 요구에 최적화 되어야 하는겁니다.

내가 회계사고, 내가 프로그래머고, 내가 특정분야 코딩 경력이 있고 이런건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라는거죠. 여기서 무얼 더 해야 하는지가 정말 막연하고 감이 안잡힌다면 십중팔구 효과적인 확장능력으로 “회사 경영의 이해”를 추천합니다. 내가 속한 기업이 중견기업 이상이라면 재무제표를 공개하진 않더라도 다트에 감사보고서는 공개가 되있을겁니다. 내가 무슨 업무를 맡고 있든지, 최소한 내 회사의 경영상황과 무엇이 문제이고 현재 최우선 목표가 무엇인지 감사보고서를 보고 대략적으로 파악할 줄 안다면 최소한 회사와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데라도 큰 도움이 될겁니다.

세째는 커뮤니케이션입니다. 회사가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있고, 지금 나라는 인재에게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회사 내에서 살아남는 것조차 불가능합니다. 평소에 회사나 결정권자와 원할한 소통을 하지 못한다면 내가 회사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고, 그것을 위해서는 정확히 무엇이 필요한지를 회사가 알 방법이 없습니다.

가끔 사람들이 착각하는게 있는데, 회사의 결정권자들은 언제나 무리하다는 걸 잘 알면서도 일방적으로 직원들에게 과도한 업무나 성과를 강요한다는 생각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봅시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업무라는 걸 정말 잘 알면서도 회사원들에게 강요하면서 그걸 해내지 못한다고 벌을 주는 사람이 회사의 오너나 경영진이라면, 그런 회사가 과연 존속 가능할까요?

회사의 결정권자들도 직원들을 잘 모르니까, 정확히는 직원들을 어디까지 몰아세워야 회사 입장에서 최대 성과를 낼 수 있는지 모르니까 그들에게도 가르쳐줘야 하는겁니다.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꼼꼼하게 내가 지금 처한 상황에서 무얼 해줄 수 있고, 무엇은 불가능한지를 틈 날 때마다 알려주는 것이 먹히지 않는다면 “내가 해봤는데 이 이상은 안되니 알아서 해라”고 통보한다든지, 마지막까지 알아먹지 못한다면 뭐 “그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을 뽑아서 잘 해봐라.”며 나가는 것도 한 방법이겠죠. 어떤 노력을 해도 소통이 불가능한 결정권자가 있는 조직은 미래가 없습니다. 빠져나가는 게 답이고, 이건 저도 뼈저리게 느꼈던 경험입니다.

중요한 건 회사의 결정권자가 현장의 현실과 한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도와줄 책무는 바로 나에게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현실과 한계를 깨닫게 해주지도 않으면서 결정권자들에게 불평과 불만을 가지고 뒷담화를 한다면, 그건 내가 무능력한 것이고 내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겁니다.


이렇게 직장 내에서 “대체 불가능한 핵심인력”이 된다는 것은 나 자신의 “실력”이나 “경쟁력”을 기르는 것과는 결이 다른 능력입니다. 평생을 한 직장에서 지내야 하는 세상이 아닌데 굳이 지금 회사에서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서 이런 대체 불가능성에 집착하는 것보다, 더 나은 회사로 이직할 수 있는 경쟁력이나 실력을 기르는 것도 얼마든지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이대로 있으면 금방 망할 거 같은 회사나, 도저히 이딴 환경에서는 내가 굳이 살아남아서 끝까지 버텨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회사라면 어떻게든 좋은 면허증이나 자격증에 도전하는게 나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내 능력과 경쟁력을 인정받아서 정말로 “계속 다니고 싶은 회사”로 이직을 한 다음 거기에서 버티지 못하거나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채 소외된다면 그것만큼 답답한 게 또 없겠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 뿐 아니라 회사가 나를 “대체하기 어려운 인력”으로 인식하게 만들 무기를 다듬는 것 또한 직장인의 중요한 소양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이러한 대체 불가능성을 확보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직장을 옮기면 그런 능력의 대부분은 초기화 되버린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현실적으로 직장 내에서 이런 “대체 불가능성”을 확보한 직장인은 5%가 채 되지 않습니다. 바란다고 해서 누구나 금방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는거죠.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세상 사는게 쉽지 않습니다. 그게 직장인이든 자영업자든, 사업가든 다를 게 없지요. 다들 힘들고 위험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개중에 운이 좋은 사람, 일찍 세상에 눈을 떠서 먼저 움직인 사람, 물불 가리지 않고 죽을 힘으로 노력한 사람들이 성공에 좀 더 쉽게 다가가는 것일 뿐이죠. 다만, 그래도 내가 지금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남고 싶은 열망이 있다면, 하다못해 목표를 향하는 “올바른 방향”이라도 가늠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그게 직장생활 20년 넘게 하면서 느낀 바를 정리하면서 이런 글을 쓴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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