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을 이해하고 극복하기

중독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죠. 도박이나 알콜중독 같은 심각한 것에서부터 담배, 자위나 야동 보기, 심지어는 인터넷중독 같이 얼핏 보기에는 그게 무슨 대단한 폐해를 일으키지 않을거라 생각할 수 있는 가벼운 것들도 있습니다.

오히려 어떤 사람들은 가벼운 주제에 탐닉하는 것을 통해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해소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일단 이런 식의 중독은 모두 같은 프로세스를 통해 나오는 뇌의 반응입니다. 미래의 보상(어떤 형태든 간에 긍정적인 미래겠죠. 쾌락이나 안정감 안전하다는 느낌 등 뭐든 상관없습니다)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신경중추가 활성화 되면서 그러한 보상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즉각적인 행동을 위한 동기부여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런 반응기제는 모든 포유동물에서 다 확인할 수 있는데, 유명한 게 올즈와 밀너의 실험입니다.

쥐에서 특정부위의 뇌(중뇌, midbrain)에 전극을 꽃고 그 특정부위를 자극하는 스위치를 달아놓았는데, 순전히 실수로 애초에 의도하지 않았던 엉뚱한 부위에 전극을 꽃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부위를 전기자극을 하기 시작하자 쥐는 어떤 고통이나 장애물도 아랑곳 하지 않고,,, 심지어는 아사 직전의 상황에서도 먹는 것 조차 등한시 하면서 그 전기자극에 집착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들이 처음에 생각하기로는 그 부위야 말로 궁극의 “쾌락” 내지는 “행복감”을 관장하는 부위가 아닐까 생각을 했습니다만, 이 뇌의 특정부위에 자극을 받고 난 다음에 쥐가 보여주는 상황들은 쾌락이나 행복감과는 전혀 동떨어진 반응을 나타냈기 때문에 결론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쥐가 당분함량이 높은 음식을 먹거나 행복감을 느끼는 경우에 보여주는 입 주변 근육의 변화(사람으로 치면 미소)나 만족감을 보여주는 징후는 해당부위의 뇌를 자극했을 때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면서도 끊임없이 해당 전기자극을 갈구했다고 합니다.

올즈와 밀너의 실험에 뒤이어 히스라는 과학자가 이와 비슷한 실험을 사람에게서 했을 때 이러한 양태는 더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게 되었고, 결국 해당부위의 뇌조직이 관장하는 기능은 만족감이나 행복감, 내지는 실체적 쾌락이 아니라, 그러한 쾌락에 대한 기대감, 즉 이제 곧 그러한 쾌락이 올 거라는 “좋은 소식”을 알리는 알람이라는 걸 밝혀내게 됩니다.

나중에 신경생리학이 발달하면서 쾌락이나 행복감, 만족감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은 옥시토신이나 세로토닌 같은 것인데 반해 보상약속, 내지는 보상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신경전달물질은 중뇌(mid brain)의 도파민이라는 전혀 다른 시스템이라는 걸 밝혀내게 됩니다. 쥐에서 도파민과 관련된 부위들을 모두 파괴한 다음에도 여전히 당분을 섭취하면 쥐의 얼굴에서 바보같은 미소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다만, 그게 입 안에 들어가는 순간은 행복할 지 몰라도, 구태여 노력을 해서 그걸 찾으려는 행동,,, 즉 먹이를 찾으려는 노력은 완전히 실종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사람들도 이러한 기전은 똑같습니다. 우리가 무언가에 필이 꽃히는 순간 정신이 초롱초롱하며 잠이 달아나고 온통 집중을 하면서 마치 넋이 나간 듯한 경험을 하게 되는 순간들이 종종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황홀했던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그냥 만사가 귀찮고 멍 해지면서 내 안의 모든 에너지를 다 써 버린 것처럼 허탈해 지는 그런 기분들,,, 그런 감정이야 말로 실체적인 현재의 쾌락이 아닌, 조만간의 미래에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쾌락에 대한 기대심리-동기부여를 관장하는 도파민과 중뇌가 불러일으키는 프로세스이자 다름아닌 중독의 프로세스입니다.

하지만, 이런 중독을 일으키는 도파민 프로세스는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프로세스입니다. 이러한 갈망과 동기부여라는 과정이 실종된 상태가 다름아닌 극단적인 우울증입니다. 먹고 싶지도, 자고 싶지도, 뭔가 재미있을 것 갈은 걸 하고 싶지도 않고, 기어코는 살고자 하는 의욕마서 실종되어 있는 우울증의 상태로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너무 빠른 속도로 진화하다 보니, 거꾸로 우리의 두뇌가 거기에 적응을 하지 못하게 된 겁니다. 불과 천 년 전만 하더라도 인류에게 쾌락과 행복을 선사할 수 있는 소재는 정말 드물고 구하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기본적인 식량조차 구하기 어려운 대기근이 언제든지 있었고, 성욕을 만족시켜 줄 만한 소재는 엄격한 성윤리관 속에서 심지어 혼인을 한 사람들에게 조차 그 기회가 쉽지 않았으며, 인터넷은 커녕 사람들과의 대화나 커뮤니티를 형성한다는 것도 교통의 부재로 인해 쉬운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 시대에서는 이런 도파민 프로세스야 말로 생존과 직결되는 필수적인 요소였죠.

하지만, 이미 세상은 달라졌고 지금 세상을 돌아보면 무제한적으로 쾌락을 제공하는 소재들이 공급되고 있죠. 그야말로 도파민이 흘러넘치는 도파민과잉의 사회를 살고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보다 훨씬 더 다양하면서도 강력한 중독이 우리를 괴롭힐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마치 식량의 공급이 안정적이 되자 마자 비만환자가 급증할 수 밖에 없게 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런 중독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 중독을 일으키는 도파민 프로세스의 정체를 이해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곁다리 이야기를 길게 늘어놨는데, 결론적으로 중독은 쾌락 그 자체와는 완전히 반대의 성격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쾌락이 우리 두뇌를 가득 채우는 데 가장 결정적인 방해물이 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도파민이 야기하는 보상에 대한 약속은 우리에게 갈망, 갈구, 욕망등과 같은 단어에 어울리는 감정과 행동을 야기하지만, 이런 것들 중 어떤 것도 만족, 쾌락, 실질적인 보상은 아닙니다. 실질적인 보상이나 쾌락, 행복감은 부교감신경을 자극해서 심장박동을 떨어뜨리고 몸을 이완시키게 하며, 이미 그 보상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도파민프로세스를 억제합니다. 하지만, 도파민 프로세스가 만들어내는 흥분감을 “행복감”인양 착각하며 계속 그것을 갈구하는 경우에는 그 갈구하는 바를 이룬 순간의 안도감이나 “후회”를 불러일으키면서 다음 번 보상에 대하 기대를 극대화 하기 위해 한층 더 강화된 도파민프로세스를 활성화 시키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도파민프로세스와 세로토닌-옥시토신 프로세스를 일반인들 중에는 전혀 구분하지 못한 채 마치 도파민에 의해 일어나는 갈망과 정신적 고양감을 행복감 그 자체인양 착각하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전형적인 예가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는 것과 “행복감”을 동일시 하는 경우입니다.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스트레스의 해소가 즉각적인 경우,, 즉 무언가를 시도한 후 수 분에서 수십 분 안에 스트레스가 해소되었다고 느끼게 만들어주는 시도들은 대부분이 도파민프로세스를 통해 보상(스트레스가 없이 행복한 상태)이 곧 주어질 것이라 (거짓)약속을 믿게 함으로서 마치 우리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행복한 상태에 이르렀다고 착각하게 만들어 주는 한 편의 연극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저 정신없이 멍하게 무언가에 몰입하는 경우들이 대부분 이런 도파민 프로세스를 호출하는 것이고, 대표적인 것이 도박, 쇼핑, 담배, 술, 음식 먹기, 게임, 웹 서핑, TV나 영화 보기입니다. 다만, 여기에서 유의해야 하는 건 같은 행위라 할지라도 그 자체가 주는 쾌감을 지속적으로 음미하고 있는 상태는 도파민이 아니라 세로토닌-옥시토신이 관장하는 대뇌반응이라는 걸 유의해야 합니다. 같은 음식을 먹는 행위라 할지라도, 음식을 먹기 전에 음식에 대한 갈망이나 아무런 의식적인 과정이 없이 순식간에 음식을 소비하는 행위는 도파민프로세스에 의한 것이고, 음식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그 음식이 어떤 맛을 가지고 있는지, 씹을 때의 식감에 어떤 묘미가 있는지,,, 가장 중요한 건 이 음식이 실재로 맛이 있는지 없는지를 냉정히 평가한 후에 맛이 있다는 정보에서 쾌락을 느꼈다면 이건 옥시토신-세로토닌 프로세스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 중독이라는 문제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어떤 중독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지를 생각할 수 있어야 지금보다 더 “행복한” 인생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제 글이 도파민이 제공하는 거짓말에 놀아나고 있는 건 아닌지 자신의 삶을 돌아볼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심각한 중독에 빠져 있으면서도 스스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어떤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할까요? 가장 기본적인 것은 전문적인 치료시스템이나 의사의 조언을 구하는 것이겠지만, 그 이전에 시도해 볼 만한 것으로는 일단 스트레스를 줄이고 회피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도파민프로세스를 흥분시키는 외부의 자극은 전적으로 “스트레스” 입니다. 그 스트레스의 절대량이 이미 높아져 있는 상태에서는 그 외부의 자극부터 줄여야지 중독에 대해 무언가 정신을 차리고 극복을 하는 시도라도 해볼 수가 있는 겁니다.

두 번째로 생리적으로 도파민프로세스를 억제할 수 있는 “진정한 쾌락-만족감”을 자꾸 흥분시키는 겁니다. 미국 심리학회에서 공인한 효과적인 스트레스 완화전략을 제시한 게 있는데, 체조, 운동, 기도, 종교활동, 독서, 음악감상, 친구나 가족과 시간 보내기, 마사지 받기, 산책, 명상이나 요가, 창조적인 취미활동(음악연주나 미술 등) 등입니다. 이들 행동은 모두 세로토닌-옥시토신의 분비를 자극하고 도파민프로세스를 조절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물론, 지금 당장 내가 탐닉하고 있었던 중독을 끊고 이런 것들로 내 삶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 건 생리적으로 불가능한 요구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것들을 조금씩이라도,,, 일주일에 한 번이나 부정기적이라 할 지라도 일단은 시도를 해 보는 게 중요합니다. 일단 시도를 하면 지금까지 내가 착각하고 있었던 행복감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행복감,,, 몸을 이완시키고 차분하게 만들며 무언가를 갈구하고 조급하게 만드는 걸 억제해 주는 만족감을 몸이 느끼게 됩니다.

세 번째로 필요한 건, 이제 내가 시도하게 된 새로운 종류의 행복감과 이전까지 내가 빠져 왔었던 중독이 불러일으켰던 행복감 중 어떤 것이 진짜로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가를 확인하는 작업입니다. 이게 쉽지 않은게 지금까지 내가 믿어왔던 것을 통째로 부정한다는 것 만큼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두뇌는 늘상 하던 것 처럼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함으로써 이 스트레스를 회피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걸 극복하고 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좀 더 객관적인 증거가 필요한데, 예컨데 내가 중독에 빠져 무언가를 하고 있었을 때 내가 느꼈던 당시의 행복감이나 감정, 기분 같은 걸 메모에 적는 겁니다. 그 다음에는 새롭게 시도한 것들을 하고 있었을 때 내가 느끼는 감정 같은 것도 그 순간에 가감없이 메모에 적습니다. 이렇게 메모로 남겨진 증거물은 의외로 우리가 반박하기 쉽지 않고 자신이 스스로의 거짓말에 속아왔다는 현실을 납득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진정한 행복은 나의 바깥에 존재하는 그 무엇에 의지하고 의존하는 데에서는 절대 존재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 건 크든 작든 중독이라는 뇌의 기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 인생에 큰 진전을 이룰 계기를 제공해 준다고 믿습니다. 행복은 내 안에 존재하고, 그 실체는 분명히 존재하고 평가가 가능한 것이라는 걸 믿는다면 무엇엔가 탐닉하고 의존하면서 허비했던 시간들에서 회복될 수 있는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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