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신약, 인공지능 같은 기술이 의료에 적용되는 과정

요즘에는 어떤 바이오 신약이나 인공지능 기술 같은 것들이 개발되어서 식약청이나 FDA 승인을 받았다는 기사들이 심심치 않게 나옵니다. 그럴때마다 해당 기술들을 개발한 기업들의 주가가 크게 올라가거나, 인공지능이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을 다 실업자로 내몰거라는 이야기들이 나도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기는 생각보다 어렵다는걸 이해하지 못하면 잘못된 판단을 해서 주식을 사거나 그동안 열심히 노력했던 목표를 내던지고 패닉에 빠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식약처(KFDA)나 미국의 FDA가 하는 검사는 해당 신약이나 기술들이 보건이나 건강상 해를 끼치는 점이 있는지 없는지를 검사하고 인증하는 것에 그칠 뿐입니다. 그렇게 안전성을 인증받은 신약이나 신기술이 의료보험에 편입되어서 보험급여 지급대상에 들어가든지, 아니면 비급여대상에 들어가서 환자의 본인부담으로 받게 하든지, 아니면 해롭지는 않으나 가성비나 유용성이 전혀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아예 비급여로도 허용을 안해주어서 사실상 의료현장에서 쓸 수 없게 되는지, 그게 정말 중요하고, 그걸 결정하는 부처는 따로 있습니다.

심평원 내부에 요양급여대상-비급여대상 여부확인 소위원회라는 곳과 NECA(신의료기술 평가위원회)라는 곳에서 의료적 유용성을 평가해서 급여-비급여-사용금지 여부를 평가하기 때문에 이게 진짜입니다. 미국도 같은 구조로 되어 있어서 FDA는 안전성 평가만을 담당하고 의료적 유용성은 AHRQ, CMS, CPT, RUQ 같은 곳에서 판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언론에서 식약처나 FDA 승인을 받았다고 크게 내보내는 신약이나 신기술이 시간이 지나도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겁니다. 즉, 언론에서 FDA나 식약처 승인을 받았다는 기사는 단지 인증절차의 첫 걸음을 떼엇다는 의미에 불과합니다.

미국에서는 FDA승인만 받아도 일단 비급여로는 사용이 가능하다는 반론도 있는데, 그렇게 제대로 의료적인 유용성을 인증받지 않고 비급여로 기술이나 신약을 적용했다가는 그 자체가 소송천국인 미국에서 막대한 소송의 빌미가 되기 때문에 감히 FDA승인만 가지고 곧바로 의료현장에 적용할 배짱을 가진 기업도, 의료기관도 없기에 현실에선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요즘 핫한 인공지능 기술로 우리나라의 NECA나 미국의 AHRQ 같은 인증기관을 통과하는 사례가 극히 드물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지나친 규제가 아니냐는 볼멘 소리가 나오는게 자연스러울 겁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든 미국이든 막대한 돈을 의료보험에 지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업계의 편의만 생각해서 비용 대비 효용이 떨어지는 신기술들에 의미없는 보험급여를 지출하다 보면 정작 중요하게 써야할 곳에 들어갈 돈이 말라버리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고, 그걸 보충하는건 국민의 세금이기 때문에 마냥 업계편만 들 수는 없는겁니다.

실제로 컴퓨터가 유방촬영 판독을 도와주는 computer assisted diagnosis 기술이 미국에서 인증을 통과해서 이 소프트웨어를 판독할 때 같이 사용하는 경우 추가로 보험금을 지급하게 되었는데, 1년이 지난 후 발견율이나 판독의 실수를 얼마나 줄여주었는지를 서베이해 봤더니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을 통해 미국에서는 이런 신기술의 의료도입에 대해 더 강력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걱정스러운게 지난 7월 문재인 대통령이 분당서울대병원에 방문해서 첨단혁신의료기술이 시장에 진입되기 위해 1-2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지름길을 내도록 노력하겠다는 발언을 한 바 있습니다. 이른바 NECA, 즉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의 인증과정을 불필요하고 혁파되어야 하는 규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겁니다. 해당 발언이 있은 뒤로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지 않았기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의 의료기술의 의료적 유용성을 평가하기 위해 대규모 리서치를 시행하고, 그것도 모자라 여러 기관에서 같은 리서치를 시행해봐도 결과가 제각각 나와 그런 편차를 감안해서 적응증을 제한하고 있으면서도 앞으로 더 검증강도를 높이려는 미국과는 정반대로 움직이지는 않을지 의료인 입장에서는 걱정되는 부분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어쨋던 머신러닝을 포함한 인공지능같은 신기술이나 첨단 바이오 신약을 개발하는 분들 입장에서는 의료계의 관행이 너무 보수적이고 규제 일변도라는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를 자주 접하는데, 의료계가 신기술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안전성이라는 잣대 뿐 아니라 유용성과 비용대비 효율성이라는 경제적인 관점까지 고려할 수 밖에 없는 점을 이해하시는 것이 협업을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책을 입안하고 결정하는 공무원들에게도 바라는게, 경제부처 쪽 공무원이 원래 보건계통 공무원보다 발언권이 세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너무 일자리니 규제철폐니, 이런 쪽만 강조하다 보면 언젠가 큰 일이 터질수도 있다는 걸 무시하지 말아줬으면 합니다. 그런 식이면 이명박근혜 정권 때의 기업프렌들리와 다를게 뭐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