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운행에는 일정한 규율이 있다. 이는 성군인 요 임금 때문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폭군인 걸 임금 때문에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응하여 잘 다스리면 길하고, 혼란스러워지면 흉하다.
만물은 각기 조화를 얻어 생겨나고, 각기 영양을 공급받아 성장한다. 사람은 그 작업을 보지는 못하지만, 오직 결과로 나타난 것은 보니 이를 가리켜 신묘함이라 부르며 하늘(天)이라 부른다. 오직 성인은 자기 수양에 힘쓸 뿐 억지로 하늘을 알려고 들지 않는다.
이와 같으니 사람이 할 바를 알고 하지 말아야 할 바를 알게 되면 하늘과 땅이 제 직무를 다하고 만물은 사람에게 부림을 받게 된다. 그래서 최고의 기술은 “할 수 없고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하지 않는 데 있고, 최고의 지혜는 “할 수 없고 할 필요도 없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데 있다.
사회의 안정과 혼란은 하늘 때문인가? 시절 때문인가? 땅 때문인가? 하늘은 사람이 추위를 싫어한다고 겨울을 없애지 않으며, 땅은 사람이 멀고 아득함을 싫어한다고 광대함을 폐하지 않으며, 군자는 소인들이 떠들썩하다고 덕행을 그치지 않는다. 군자는 그 일정함으로 길을 삼으나 소인은 공리만을 헤아린다.
초나라 왕이 출타할 때 뒤따르는 수레가 천 대였던 것은 그가 지혜로워서가 아니다. 군자가 거친 곡식을 먹고 맹물을 마시는 것은 그가 어리석어서가 아니다. 이는 우연히 그렇게 된 (운)때문이다. 따라서 군자는 자기에게 있는 것에 열중할 뿐 하늘에 있는 것을 흠모하지 않으나, 소인은 자기에게 있는 것을 등지고 하늘에 있는 것을 흠모한다.
군자는 자기에게 있는 것에 열중하고 하늘에 있는 것을 흠모하지 않으므로 날마다 진보하지만, 소인은 자기에게 있는 것을 등지고 하늘에 있는 것을 흠모하므로 날마다 퇴보한다.
하늘이 가물면 기우제를 지내고, 점을 친 뒤 큰 일을 결정하는 것은 그것으로 원하는 바를 얻게 되어서가 아니라 그것으로 나라가 재난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꾸밈이다. 그래서 군자는 이것을 꾸밈이라 생각하지만 백성들은 신령스러운 것으로 여긴다. 꾸밈으로 생각하면 길하고 신령스럽다고 생각하면 흉하다.
사람의 운명은 하늘에 달려있는게 아니라 하늘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달려있고, 나라의 운명은 예에 달려있다. 예를 높이고 현인을 존중하며 법을 중시하고 백성을 아끼면 천하의 왕과 패자가 되지만, 이익을 좋아하고 속임수가 많으면 위태롭게 되고 , 권모술수를 쓰고 전복시킬 것을 기도하며 음험하면 모두 망한다.
하늘을 위대하게 여겨 그것을 사모하기만 한다면 어떻게 더불어 물자를 취급하여 기르고 통제하겠는가! 하늘에 순종하여 그것을 칭송하기만 한다면 어떻게 더불어 하늘의 이치를 제어하고 이용하겠는가! 시절을 바라보고 기다리기만 한다면 어떻게 시절의 변화에 응하고 부리겠는가!
순자는 전국시대의 혼란이 하늘의 이치가 아니라 소인배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메몰되어 속임수와 권모술수를 즐기며 질서를 전복시키기 때문이라 진단했던 학자입니다. 그가 그런 혼란을 평정하기 위해 제시한 방법론은 사람의 됨됨이에서 출발합니다.
그렇기에 순자의 천론(天論)은 하늘에 대해 논하는게 아니라 사람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군자의 길을 걷기 위해 하늘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여야 하는가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순자가 역설하고 있는 군자의 도리들을 읽다보면, 이것이 현재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하고 있는 우리들, 투자를 하고 있는 투자자들에게도 한치의 어긋남 없이 적용되고 있는 것들을 깨닫게 됩니다.
투자자로서 아무리 시장을 지켜봐도 시장의 움직은 꾸준히 관찰하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과 도저히 이해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영역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꾸준히 나아가야 합니다. 어쩌다 한두번 대박이 나거나 노력했음에도 가끔씩 큰 손실이 나는 것은 우리가 현명하거나 어리석은 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렇게 몇번씩 운이 좋거나 나쁜 것을 겪고 나서 거기에 집착해서 한탕 대박을 노리거나 원칙없이 감에 의존하는 매매를 하는 것은 순자가 강조하는 군자의 가장 큰 덕목인 “일정함(꾸준한 진보)”을 무시하는 태도입니다.
그렇기에 투자자로서 발전과 성공을 위해선 발전을 위해 나에게 주어진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 지금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 실천하는 것에 열중해야만 합니다. 투자자로서 할 수 있는 것, 해야만 하는 것은 끊임없이 공부하고 투자하는 나 자신을 다스리며 시장을 관찰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 즉 시장을 예측하는 것에 연연해선 안되며 내가 하면 안되는 것들에 집착하는 흉한 태도를 경계해야 합니다. 길과 흉은 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려있는겁니다.
흉에서 벗어나 길함을 얻기 위해서라도 예측 불가능한 시장의 복잡성을 한두마디 짧은 설명으로 재단하며 읽을수 있을것처럼 주장하거나 왜곡되고 입증 불가능한 세계관으로 점철된 음모론에 취해서 떠드는 헛소리들을 멀리해야 합니다. 그런 것들에 휘둘리는 것은 순자가 하늘을 신령스럽다고 생각하면 흉한 것이라 일갈한 순자의 꾸짖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것입니다.
내가 얼마를 벌었다, 아이고, 얼마를 잃어버렸네 이렇게 단기적인 수익이나 손실에 일희일비하는 태도 또한 이익에 집착하는 소인배의 전형입니다. 단기적인 손익은 단순한 운수에 불과할 뿐인데 그것에 집착하는 것은 꾸준히 공부하고 검증하하고 배우면서 꾸준히 진보해나가는 마땅한 길을 비웃는 태도이니 이또한 고쳐야만 마지막에 웃는 투자자가 될 수 있을것입니다.
만류귀종(萬溜歸宗)이라는 불교 격언이 있습니다. 모든 것은 결국에 가면 하나의 근원으로 합일될 수 있다는 주장인데, 모든 문제의 근원이자 이에 따른 해결책의 출발점을 “인간”에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는 순자가 역설하고 있는 군자의 길과 투자자의 길이 겹칠수밖에 없는게 당연한 이치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