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은 우리나라 포항제철이 문을 연 해였습니다. 당시 포항제철은 세계적으로 신기원을 이룩한 분야가 하나 있었는데, 조강생산능력이라든지 기술적인 진보 이런게 아니라 국가로부터 받아간 “보조금”의 액수에 있어서 역사상 가장 많은 액수를 기록한 회사입니다. 물론, 수십년이 지나면 중국이 이 분야에서 신기록을 갈아치우게 되지만,,,
당시 포항제철이 만들어진 가장 중요한 배경은 다름아닌 “조선소”에 필요한 철강을 조달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1970년까지 조선업은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호황국면에 있었습니다. 국제무역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선박의 운송비를 줄이기 위해 대형화가 거대한 흐름으로 자리잡으면서, 1950년 후반부터 2차대전 때 만들어졌던 크기가 작은 화물선과 유조선들을 대체하는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이러한 수요증가와 함께 일본의 조선산업이 값싼 임금을 등에 업고 호황을 누리던걸 보고 박정희 정권은 조선업에 진출하기 위해 국가차원에서 일련의 투자를 진행하면서 어마어마한 돈을 보조금의 형태로 재벌 조선사들과 포항제철에 쏟아부었던 겁니다.
그리고, 1972년 오일쇼크가 터집니다.
그동안 쌓여있던 선박주문은 거의 다 취소되고, 만들어놓은 배들도 선주가 가져가기를 거부하는 지경이었습니다. 게다가 이제 막 걸음마단계였던 우리 조선사들의 기술수준은 처참한 수준이어서 유조선을 반으로 나누어 건조하다, 두쪽이 서로 맞지 않아 납기를 놓쳐버리는 황당한 해프닝까지 벌이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조선업은 그렇게 첫걸음을 떼자마자 사망하게 되는 상황에 직면합니다. 그동안 들어갔던 어마어마한 보조금은 고스라니 국가의 재정고갈로 이어질 참이었죠.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거나 좌초되면 나라가 흔들리는 상황에서는 누구도 실패를 인정할 수 없는 법, 박정희 정권은 그렇게 수주가 취소되어 도크에 처박혀있는 배들을 사줄 해운회사를 만들고 지원하게 되니 이게 바로 현대상선의 출발입니다.
이렇게 일자리 창출 전략으로 시작된 우리나라 조선업 발전계획은 우여곡절 끝에 성공하게 됩니다. 거기에는 나라가 포항제철과 조선소들, 그리고 해운회사들에 지급한 어마어마한 보조금과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에서 비롯된 가격경쟁력의 힘이 절대적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건 일본이었고, 일본은 당시 미국과의 무역마찰이 극에 달해있어서 우리나라와 보조금으로 경쟁을 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결국 일본정부가 나서서 절반 가까운 50개의 드라이독을 폐쇄하고 11만9천개의 일자리를 없애는 ”반불황 카르텔”이라 명명된 구조조정을 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구조조정에는 당연하지만 어마어마한 보조금이 지급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가 터트린 보조금의 연쇄반응은 일본을 지나 유럽의 해운사들에 미칩니다.
전통적으로 유럽의 해운사들 상당수는 서독의 최대항구인 함부르크를 중심으로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1970년대 초반 그리스가 세법을 변경하자 서독의 선주사들은 대대적으로 그리스로 선적을 이전합니다. 2년동안 631척의 선적이 서독이서 그리스로 이전했는데, 이게 어느정도냐면 서독의 세수를 위협할 정도였습니다. 함부르크는 조만간 해운관련 산업망이 완전히 사라지게 될 판이었죠. 이런 위기상황에서 서독 정부는 새로운 방법으로 대응합니다.
선박투자펀드를 만들고, 펀드가 약간의 현금만 수중에 확보되면 금융기관으로부터 나머지 돈을 빌려올 수 있게 도와줍니다. 이를 통해 선주사는 자기 돈을 거의 투자하지 않고 배를 마련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에 더해 금융기관에 막대한 돈을 빌린터라 적자가 나게 된 선박펀드에 투자를 하는 투자자들은 세무당국에 투자금액의 2.5배에 달하는 세금공제를 받게 해줍니다.
“선단을 수유한 사람은 이익을 내야 한다는 전통적인 사고는 저 뒤편으로 사라졌다” 당시 역사가의 기록이라고 합니다. 선박투자펀드인데, 투자수익이 안나도 펀드사도, 펀드에 투자하는 투자자도, 선박을 만드는 조선사도 모두 해피한 기가막힌 시대가 절박했던 서독정부의 “보조금”으로 인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세금공제를 노리고 막대한 투자를 시작한 고소득층, 특히 치과의사와 의사들에 의해 연간 200억유로의 돈이 선박투자펀드에 유입되면서 바야흐로 “치과의사 선단”의 시대가 도래하게 됩니다.
이렇게 “이익을 내지 않아도 번창하는 사업”이 지속되면서 누적되는 선박의 공급과잉은 결국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조선업 침체기를 만들어내게 되지요. 어쩌면,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출발한 버블붕괴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조선-철강-해운업계로 전염되던 각국 보조금의 연쇄작용과 세금공제를 노리고 뛰어든 투자과잉으로 만들어졌던 “치과의사 선단”이라는 버블이 붕괴하면서 비슷한 시기에 금융위기가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렇듯 과도한 보조금과 이로 인한 공급과잉이 전세계적인 호황과 파국을 순차적으로 이끌어내는 역사의 순환을 보면서 지금 우리는 어디까지 와있는지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