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종말과 새로운 시작”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역사의 한 쪼가리를 옮겨봅니다.
머스크라인(Maersk)은 2000년 당시 최대의 컨테이너 해운사였습니다. 중국의 부상과 함께 세계화의 추세에 올라타 많은 해운사들을 인수하여 몸집을 불린 머스크라인의 선단은 운반능력을 거의 100% 돌리며 큰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장에 돈냄새가 풍기면 파리가 꼬이는 법, 경쟁사들이 머스크라인을 추격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확장을 시작하자 위기감을 느낀 머스크라인은 대책을 모색했는데,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국 새로운 선박을 통한 선복량 부족을 해결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렀습니다.
일단 선복량 부족을 해결하자는 방침이 정해지자 적재량을 늘리고, 연료효율성과 속도를 높이기 위해 새롭게 설계된 선박을 발주하는데 이게 다름아닌 “유로맥스”규격입니다. 그 당시까지 만들어졌던 가장 큰 화물선보다 두 배가 큰 유로맥스급 선박은 크기가 너무 커서 짐을 적재하고 내리는 것도 복잡해져서 항구에 정박한 채 화물을 내리고 싣는 시간에 전체 운항시간의 4분의1을 써야 했으며, 크기가 너무 커 파나마운하를 통과할 수 없었습니다. 워낙에 크기가 크다보니, 이를 만들 수 있는 조선소도 소수였고,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항로에 투입하는것조차 불가능해 오로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항로에서만 취역이 가능한 기형적인 배였지만, 어쨋던 머스크라인이 필요로 하던 선복량을 제공해줄 수 있었습니다.
태생이 선복량과 연료효율성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한 기형적인 컨셉이었지만, 일단 최초의 유로맥스급 선박인 “엠마머스크”호가 취역하자마자 해운업계는 충격으로 뒤집어졌습니다. 엠마호의 크기와 연료효율성을 본 다른 해운사들은 그들 역시 대형선박을 주문해야 한다는 압박에 사로잡혔고, 머스크라인처럼 자사 내 조선소가 충분한 조선능력을 갖출 수 없는 해운사들은 일본과 한국의 조선사들에게 유로맥스를 넘어서는 거대한 컨테이너선을 경쟁적으로 발주를 했습니다.
규모의 장점은 모든 사람을 사로잡았고, 조선소를 운영하여 고용을 창출하려는 정부는 막대한 보조금을 제공한 덕에 매력적인 가격으로 선박을 건조할 수 있었습니다. 유로막스급 선박이 공개된 지 거의 하룻밤 사이에 시장이 재편성되버린 겁니다. 워낙에 경쟁적으로 발주가 급증하다보니 이제는 용선계약 없이 한국 조선소에 계속 최대급 선박을 발주하기 시작하자 머스크라인의 경영진은 자신들의 “유로맥스” 계획이 무시무시한 괴물을 건드리게 되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머스크라인의 공동 CEO였던 크누트 스텁기에르는 2007년 4월 동료에게 “이것은 매우 나쁜 소식입니다. 시장에 이런 투기적인 과잉용량이 투입되면 업계 전반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을 모든 기회를 활용하여 알려야 합니다”라고 썼습니다.
결국, 그렇게 조선업계와 해운업계의 전무후무한 거품은 그렇게 머스크라인의 “유로맥스”계획에서 시작해 성장하게 된겁니다. 그 뒤에 해운업계와 조선업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우리 조선사들의 비극을 통해 너무나 뼈저리게 알게 되었으니 굳이 이야기할 필요도 없겠지요.
유로맥스 계획은 혁신이라는 개념이 시장 참여자 모두에게 언제나 행복한 결말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는 걸 잘 보여준 사례가 아닌가 합니다. 이전까지 누구도 감시 시도해보지 못했던 것을 용기있게 시도하는 것이 혁신이 아니라고 할수는 없지만, 그런 시도가 성공적이었을 때 뒤쳐진 경쟁자들 중 누구라도 그러한 시도를 따라할 수 있고 심지어 더 크게 확대재생산해서 앞선 이를 추월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과연 진정한 혁신이라고 불러야 할지,, 아니면 비극을 불러오는 단순무지한 탐욕이라고 불러야 할지,, 고민이 될수밖에 없겠지요.
더우기 그러한 단순무식 물량경쟁을 가능하게 해준 중요한 배경에 각국의 고용유지를 위한 막대한 보조금이 중요한 요인중 하나였다고 한다면 이걸 비극인지 아니면 한 편의 허탈한 코메디인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