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로 bona fide, 신실한 믿음 내지 신실한 태도로 번역되는 이 개념은 도덕적인 선의나 신앙적인 올바름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이는 법률용어로서 법적인 측면에서 사기나 기망을 의도하지 않은 것이라는 의미의 단어입니다.
정말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네덜란드의 법학자 휘호 흐로티위스(Hugo Grotius)는 후대에 “국제법의 아버지”, “자연법의 아버지”로 떠받들여지는데, 그가 이렇게 국제법과 자연법의 아버지로 받들어지게 된 건 그가 쓴 포획법론(Commentary on the Law of Prize and Booty)이라는 저서 때문입니다. 그가 이 포획법론을 쓰게 된 과정은 드라마에 코메디까지 더해지는 이야기입니다.
네덜란드는 영국이 동인도회사를 출범시킨 2년 후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 Vereenigde Oost Indische Companie)를 만듭니다. 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목표는 아시아무역을 지배하는 것이었고, 기존에 아시아시장을 장악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사업을 방해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다름아닌 “해적질”이었습니다.
1603년 네덜란드의 선단을 이끌던 야코프 판 헤임스케르크(Jacob va Heemskerck) 제독은 싱가포르 동쪽 해안에서 포르투갈 선박인 산타 카타리나를 공격하여 나포합니다. 당시만 해도 네덜란드 해군 수뇌부는 헤임스케르크에게 해적질을 하지 말라고 직접 명령을 내린 상태였기에 법적으로 아무 근거가 없는 해적질이었지만, 거기에서 빼앗은 물건이 너무 엄청났습니다. 진귀한 중국 비단이 1,200더미에 사향 수백온스 등,,, 너무 엄청난 전리품이었기에 결국 네덜란드 해군 법정은 이 물건들을 “합법적인 전리품”이라고 판결합니다.
이렇게 대놓고 노골적이고 뻔뻔한 판결이 나오자 여론은 더욱 들끓어 산타 카타리나 스캔들이 더 커지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내부의 주주들조차 네덜란드 해군과 동인도회사에 이의를 제기하고 공격하게 됩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는 피고석에 섰던 헤임스케르크 제독의 사촌이자 유명한 법학계 신동인 휘호 흐로티위스(Hugo Grotius)를 호출해 자신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학술논고를 집필하도록 의뢰해 나온게 바로 이 “포획법론”입니다.
이 포획법론에서 흐로티위스는 “보편적인 자연법”의 논리를 사용해 네덜란드 배들이 포르투갈 제국의 영토에 공격을 감행하고 심지어 영토를 침범하여 공격할 수 있다고 옹호합니다. 그는 키케로의 주장들에서 출발해 도덕적인 자연법은 보편적인 것이며, 그 법의 내용은 어떤 개인이든 이성을 활용하기만 하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고 전제합니다.
“저 신뢰할 수 없고 잔인한 포르투갈인들은 전 세계의 여러 바다를 통제함으로써 도덕적인 위해를 끼치고 있다. 더 나아가 제국의 토착원주민들이 네덜란드와 교역을 못 하게 함으로써 그들은 네덜란드인들의 자연권을 빼앗고 있다. 이것은 범죄다”라고 말하면서 네덜란드 선박이 포르투갈 선박을 나포해 얻은 물품은 정당한 전리품이며 신실한 태도(라틴어로 bona fide)로 취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주권은 자연권이므로 기독교인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스페인 제국 안에 사는 토착원주민들도 네덜란드 상인들을 무역 동맹자로 선택할 권리와 자유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처음 책을 쓴 동기는 네들란드 동인도회사의 해적질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흐로티위스의 천재적인 논리전개는 서양 법철학의 시조라 할 수 있는 키케로의 주장들에서 출발해 자연, 바다, 개인의 자유 등 기본 사항에 대해 획기적인 제안을 담아내면서 17세기 후반 존 로크를 비롯한 수많은 자연권 및 인권사상가들의 이론적 반석이 됩니다.
흐로티위스 이전의 인간의 자유란 공동체의 동의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이었습니다. 국가가, 왕이, 권력을 분점한 제후들이 인정하지 않으면 인간 개개인의 자유는 존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인간으로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옹호받을 수 없었는데 바로 이걸 깨부순 겁니다.
자유란 자연에서 오는 것이며, 신은 모든 존재를 위해 자연을 창조했기 때문에 온 세계를 덮고 있으며 자연 그 자체인 바다 또한 누군가가 자신의 소유로 만들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안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도 어느 한 나라가 자기들 것이라 주장할 수 있는게 아니며, 따라서 영국인이나 포르투갈인들이 네덜란드 어업인들을 자기 바다에 들어오지 못하게 금지한 것은 바다에서 자유무역을 누릴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이러한 자유를 침해하는 나라와 전쟁을 벌이는 것은 당연히 정의로운 전쟁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이렇게 네덜란드의 해적질을 옹호하려 만들어진 흐로티위스의 주장들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와 네덜란드 위정자들 말고 누가 반길 수 있겠습니까마는 세상이 참 재미있는게, 이런 흐로티위스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지지한 나라가 나오는데 다름아닌 영국이었습니다.
영국의 수많은 사상가들이 흐로티위스의 저작을 영어로 번역해 출간하고, 관련된 저작들이 영국에서 쏟아져나온겁니다. 흐로티위스의 이러한 자연법 개념이야말로 영국이 세계제국을 열어젖히는 데 매우 유용하다는 걸 알아챘기 때문이죠. 결국 영국은 흐로티위스의 주장들을 받아들이고 재해석하며 이를 활용해 제국을 확장시키는데 적극적으로 이용했으며, 결국에는 네덜란드를 누르고 인도양의 패권을 차지하게 됩니다.
신앙심 가득한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단어처럼 보이는 신실한 태도(Bona Fide)라는 말이 이렇게까지 신실하지 않은 이들에 의해 신실한 것과 거리가 먼 짓거리들을 옹호하기 위해 고안되며 유포되다가 결국에는 이를 창안하고 유통한 이들을 패권국에서 끌어내는 데 활용되는 걸 보면 참 만감이 교차하게 됩니다. 세상 일이라는 게 순리대로 흘러간다, 사필귀정 될거라는 편견을 분쇄하다 못해 아주 가루로 빻아버리는 일화가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