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기독교가 처음부터 금욕주의를 신조로 내세운 건 아니었습니다. 초기 기독교는 애초에 말세, 즉 종말이 조만간 다가온다는 것을 진실로 믿고 받아들이며 살고 있었기 때문에 금욕주의라는 태도는 주된 관심사조차 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3세기 경 오리게네스 같은 기독교 신학자들이 그리스 철학자 섹스투스 에피리쿠스의 저서들을 일단의 기독교인들의 읽고 신봉하는 것을 보고 기적(!)이라며 탄복했던 역사기록이 존재하는걸로 봐서 그 이전의 초기 기독교는 금욕주의 철학이 뿌리내리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걸로 보입니다. 애초에 오리게네스 본인이 교부이자 신학자로서 기독교와 그리스철학의 조화를 시도한 최초의 인물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러한 시도는 기존의 기독교 교회와 갈등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당시 유행하던 금욕주의 저서들은 대부분 세속의 시장을 천국의 시장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생각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살아서 빈곤과 겸손을 통해서만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것들을 향유할 수 있으며, 죄악에서 보호받아 낙원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다는 식의 주장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저서가 유행하면 당연히 그런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는 구도자가 나타나겠죠. 오리게네스 본인도 성욕을 제거하기 위해 스스로 거세를 했으며, 다양한 고행을 위해 이집트 사막으로 향한 “사막의 교부들”이 나타납니다.
이렇게 기독교가 열정적으로 받아들인 금욕주의는 점점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를 하는데, 그 첫 징후는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인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의 주장에서 나타납니다. 당시 콘스탄티노플을 기독교 복음화시키기 위해 열정적이었던 그는 콘스탄티노플을 지배하고 있던 로마 귀족들을 포섭하기 위해 그때까지 금욕주의를 대표하던 빈곤과 겸손만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을 거부하고 “하늘을 산다(Buying the heaven)”는 개념을 내놓습니다. 천국에 가는 것은 일종의 영업활동이며 사업이다. 빵을 내놓고 낙원을 손에 넣으라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금욕주의를 천국을 향한 “영업” 내지 “사업”으로 이해하는 크리소스토무스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걸 넘어 혁신적으로 전환시킨 사람은 유명한 성 어거스틴이었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예정조화론을 주장한 사람입니다. 신이 어떤 영혼들을 천국으로 구원할 것인가만을 미리 정한 것이 아니라 누가 지상에서 부를 누리게 될 것인가도 포함한 예정론을 주장한 겁니다.
그의 이런 예정조화론은 기존의 생각들, 즉 금욕으로 천국에 이르는 금욕주의나 돈과 사업으로 천국을 살 수 있다는 크리소스토무스의 주장들과 배치될 뿐 아니라, 심지어는 교회조직을 위해서 한단계 더 나아간 생각으로 연결되는데, 인간이 올바른 선택을 하기 이전에 그것을 의도한 신의 뜻이 있어야 한다는 예정론에서 “만약 신이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물질을 떠나 경건한 삶을 선택한다면, 또 인간이 그 돈을 교회에 내놓기로 결정한다면, 그들이 그러한 결정을 내리기 이전까지 화폐와 재화를 소유하는 것은 긍정적인 일(신의 예정)이 된다”라는 결론을 도출하게 됩니다.
즉, 이미 선을 행하고 돈을 교회외 내놓는 거룩한 일을 하기로 예정(?)되있는 거룩한 부자들이 그동안 돈을 긁어모으는 일은 결코 창피한 일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신의 섭리와 예정에 이끌린 신비롭고 거룩한 전개의 일부라는 겁니다. 사실 성 어거스틴이 있던 교회는 가난한 농촌에 있었고, 걸핏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이교도들, 부유하고 공격적인 이교도들이 가득했을 뿐 아니라 교인들조차 그의 말을 듣지 않기 일쑤였습니다. 시대적으로도 로마가 서고트족의 침략에 의해 파괴되고 황폐화되는 와중이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는 저서인 “신국론”과 “시편 해설” 등에서 선택된 자들이 천국에만 가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 보화와 보호까지 내려준다고 주장함으로서 주님께서 주신 조언을 순종한 (선택된)이들은 야만족의 침입에서도 세속의 부를 잃지 않았다 주장합니다.
그의 이런 주장은 신학적인 고민도 있었겠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차원에서 교회에 기부를 장려하려는 간절하고 강력한 노림수가 녹아있었고, 그러한 방향성은 이후 로마의 멸망과 중세의 시작을 맞아 교회가 세속적 부와 키케로적 가치들을 끌어안는 새로운 기독교의 가장 강력한 이론적 토대가 되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