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우위론은 무역에 있어서 한쪽 나라에 절대우위를 차지하는 품목이 없더라도, 상대적인 우위, 즉 비교우위가 존재하는 품목을 서로 교환하면 기회비용을 절약할 수 있어서 무역을 하는 양국에 모두 이점이 존재한다는 유명한 이론입니다. 고등학교 사회시간에 필수로 배웠던 내용인데, 요즘도 고등학교 때 배우는지 모르겠습니다.
위에 예시로 든 영국과 포르투갈의 사례는 데이비드 리카도가 직접 그의 저서에서 제시한 사례이며, 실제로 1703년 포르투갈과 영국이 체결한 자유무역협정인 메수엔 조약(Methuen Treaty)의 주요 내용이 영국산 양모와 포르투갈산 와인에 무관세 및 저율관세로 수입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이 메수엔조약은 체결 당시 영국 내부에서 불리한 조약이라며 반대가 있었습니다. 포르투갈의 와인과 양모 모두 경쟁력이 상당했기 때문이었고,포르투갈은 이 조약을 매우 반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국은 당시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에서 프랑스 편이던 포르투갈을 회유해야 했기 때문에 불리할거라 여겨지던 자유무역조약을 결국 체결했고, 실제로 포르투갈은 직물보다 훨씬 압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던 와인을 엄청나게 수출하면서 떼돈을 벌었습니다.
그런데, 이 메수엔 조약이 나중에는 포르투갈 경제를 망치는 주범이 되버리는데, 영국은 직물을 기계로 대량생산하는 공업화에 성공해 생산비를 엄청나게 줄이며 경쟁력을 점점 더 키워간 반면, 와인은 1786년 영국과 프랑스가 통상협정을 맺으면서 더욱 값싼 프랑스와인에 경쟁력이 밀려버린 겁니다.
처음에 떼돈을 벌자 너도나도 농지에 와인만 심어서 다른 농작물을 심지 못해 식량난을 겪은데에 더해 농산물수출에만 올인하면서 공업화에 뒤쳐지다보니 영국에서 양모산업 뿐 아니라 다른 수많은 공산품들이 밀려들어오면서 다른 산업들조차 고사되는 상황에서도 포르투갈은 여유가 있었습니다. 브라질에서 금이 계속 들어오고 있었거든요. 결국, 그 금이 다 거덜날 때까지 영국에서 모든 물품을 수입하기만 하고, 수출할만한 경쟁력을 갖출 물품은 사라져버린 상태가 지속되면서 경제가 영국에 완전히 예속되버립니다.
데이비드 리카도가 비교우위론을 주장하면서 가장 자신있게 근거사례로 들었던 포르투갈과 영국의 자유무역이 결국은 양국 모두의 이익이 아니라 한쪽의 몰락과 예속으로 결론난거지요. 물론 이렇게 되버리는 건 100년 가까이 되는 긴 세월의 흐름이기에 데이비드 리카도가 이를 알았을리 없겠죠. 그걸 알았다면 설마 이러한 메수엔 조약을 자신있게 비교우위론의 근거로 제시할 수는 없었을테지요.
어찌 되었든, 다른 나라는 몰라도 전 세계에서 지도적인 산업국가인 동시에 수많은 식민지를 거느린 영국의 입장에서는 “자유무역”과 “자유시장”이라는 것이야말로 자국의 이익을 챙기면서도, 상대국가의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는 인기있는 정치적 슬로건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그러한 슬로건의 중요한 근거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이 동원되게 됩니다. 그렇게 자유무역, 자유시장이라는 정치적 슬로건은 1846년 곡물법의 폐지를 시작으로 전세계에 투사되기 시작합니다.
그러고보면, 1846년이면 이미 리카도가 자신있게 비교우위론의 근거로 제시했던 영국과 포르투갈의 사례가 사실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진즉에 포르투갈이 영국에 경제적으로 예속되버린 지 수십년이 지난 시점인데, 영국인들은 그런 중요한 사실을 한결같이 무시하고 자유시장, 자유무역만을 외쳤다는 게 참 치사하고 사악하다는 느낌이 들고 그렇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