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곡물법 폐지


곡물법 폐지는 자유주의 영국의 시작일 뿐 아니라 자유 시장이라는 여러 정치적 신화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기도 했다. 자유무역을 선동한 이들은 어디에나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시장 법칙이라는 깃발을 높이 들고, 영국에 농촌 엘리트들 -애덤 스미스 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을 제물로 삼아 제조업의 기득권 집단들에 바쳤다. 제조업 집단들은 노동자들의 생계비를 낮추기 위해 외국에 값싼 곡물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영국은 비록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위치 있었지만, 여전히 빈곤과 부의 불평등 이라는 난공불락의 문제들에 직면해 있었다. 시장이 스스로 만들어낸 장치들에 그냥 내맡겨진다면 이러한 문제들은 해결 될 리가 없었다. 경제 철학자이자 정치철학자인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무역이 양날을 가진 칼이라고 보았다. 거기 당진 자유 주인은 상처나 세상이지만 그것이 빈민들에게 더 높은 생활 수준을 가져다 주지 못 한다는 점도 그는 분명히 인식했다밀은 19 세기 전반에 자유시장사상에 담긴 예쁘죠 무슨들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자장가 했다


위의 기술은 제이컵 솔이 쓰고 홍기빈씨가 번역한 “자유시장”이라는 책에 나온 내용입니다. 보통 자유시장주의 내지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정부의 규제나 특정계층의 보호정책을 무조건적으로 혐오하고 반대한다는 점입니다. 경제의 중요한 영역에서 자유주의에 입각해서 그러한 규제와 간섭의 배제를 역사상 처음으로 관철한 사례가 1846년 영국의 곡물법이 폐지 토리당에 의해 폐지된 사건입니다.

영국 곡물법은 1815년 나폴레옹 전쟁 때 지주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의 저가 곡물에 보호관세를 부과하던 법안이었습니다. 그러한 지주와 농업의 보호라는 가치는 어느덧 비대해진 자본가와 사업가들에게 효율(이라 쓰고 이윤이라 읽는)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여겨지고, 드디어 제조업의 생산성이 전세계로 질주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러나, 현실은 아담 스미스의 생각이나(사실 아담 스미스의 주장과 정반대로 지주의 권익이 추락한 상황이긴 합니다.) 리카도의 시장에 대한 무한신뢰와 비교우위론이 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사실, 당연한 일임에도, 그걸 인지하고 지적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게 당시의 분위기였습니다. 그러한 때에 존 스튜어트 밀과 같은 철학자들이 자유주의를 천명하고 동의하면서도 동시에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인식하고 찾아낸 대안이 “민주주의”였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합니다.

단순히 주권과 입법권을 국민 개개인에 주는 것 뿐 아니라, 자본가와 노동조합의 건전한 경쟁이 한계효용체감으로 물가와 임금의 하락으로 인한 파국을 막고 국가가 건전한 발전을 지속할 수 있게 만들어줄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른 것은 단순히 존 스튜어트 밀이 천재였기 때문이 아니라, “시장 그대로를 방치”할 경우 파국에 이를수 밖에 없음을 논리적으로 제시했던 멜서스의 통렬한 지적이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어쨋던, 존 스튜어트 밀은 그가 추구하며 상찬하는 자유주의를 영속적인 발전과 진보의 동력으로 완성하기 위해 “사회주의”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1869년 그는 “사회주의론(Cheapters on Socialism)”을 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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