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무문의 변, 가치관의 혼재가 초래한 비극

현무문의 변이라는 건 당나라 건국 초반에 당태종이 되는 이세민이 두 형제를 죽이고 황위를 찬탈한 반란사건을 말합니다.

당나라를 세운 당 고조 이연은 원래 수나라 귀족이었으며, 수나라를 세웠던 선비족의 혈통을 가지고 있었던 장군이었습니다. 수나라의 양제는 이연에게 북방의 방어를 맡겨 돌궐족의 침공에 대비하도록 했는데, 수 양제의 폭정에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이연 또한 고민에 빠집니다. 이 때 그를 부추긴 게 그의 첫째와 둘째 아들인 이건성과 이세민이었죠. 아들의 말에 설득당해 반란을 일으킨 게 이연이 52세였으니 상당한 고령이었습니다.

당시 서쪽의 장안을 차지해 당나라를 세운 당 고조는 수나라의 잔존세력과 다른 반란세력들이 동쪽에서 이전투구를 벌리던 것에 비해 안정적으로 세력을 구축할 수 있었고, 이연 본인이 고령이었기에 당나라를 세우자마자 장남인 이건성으로 태자를 정하게 됩니다. 문제는 당나라를 세우자마자 태자가 된 이건성이나 왕이 된 이연 본인은 지위 때문에 전쟁에 참여하지 못한 반면, 둘째 아들인 이세민은 중국 전역을 누비며 전투를 하고 모두 이깁니다. 문제는 이세민이 군사부문에서만 엄청난 능력을 보여준게 아니라는 거였습니다.

이세민이 정말 엄청난 인걸이라는 게 어디서 드러나는가 하면, 불과 4년 만에 넓은 중국을 모두 평정하면서도 동시에 적군이지만 평소 흠모하던 유능한 장수들을 모두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겁니다. 주변에서는 나중에 배신할 수 있으니 등용하지 말라 경고했지만, 이세민이 등용한 인물들은 나중에 끝까지 그를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사람을 알아보고 그들의 충성을 이끌어내는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면서 승승장구하다보니 자연스레 장안에서 자리만 지키던 태자와 비교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황제 이연은 자신의 둘째아들 이세민에게 “천책상장”이라는 하늘 아래 가장 높고 귀한 벼슬을 만들어 수여합니다. 이 대목이 당 고조의 결정적인 패착이자 이질적인 가치관이 생산적으로 갈무리되지 않은채 공존하는 가치관 혼재가 엿조이는 대목입니다.

황제가 다스리는 국가에서는 제일 높은 사람이 황제이고, 그 다음이 후계자인 태자이며, 이 두 사람은 일반인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입니다. 심지어 황제의 아들이라 해도 태자가 아니면 일개 신하에 불과한 것인데, 둘째 아들 이세면은 그런 신하 취급을 받기에는 너무 공을 많이 세웠고 능력이 출중했으며, 그의 군사적 재능에 나라가 크게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북쪽의 돌궐 외에도 중국을 둘러싼 강력한 오랑캐가 계속 당나라를 넘보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태자와 신하 사이의 중간 정도에 해당하는 직책을 만들어서 내려준겁니다. 천책상장은 하늘이 내린 장군,,, 황제나 태자는 아니지만 신하들보다는 위에 있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앞서 서술했듯 당 고조 이연은 선비족 출신 수나라 귀족입니다. 당시 지배계급이던 수나라 왕족과 귀족들은 피지배민족인 한족이 고수하던 유교적 사고방식보다는 유목민족으로서의 정체성과 관습에 의해 행동하는게 보편적이었습니다. 이후 현무문의 변에서 이세민이 단지 자신의 친형과 친동생을 죽이는 것에 그치는게 아니라 그의 조카들까지 모두 제거했던 것이나, 선비족 출신인 수 양제가 아버지인 수 문제의 후궁들을 자기 후궁으로 삼았던 일, 당 태종 이세민의 후궁인 측천무후를 아들인 당 고종 이 치가 정식 왕비로 맞아들였던 일,,, 당 현종이 자기 아들의 아내, 즉 며느리인 양귀비에 반해 아들로부터 그녀를 빼앗아 아내로 삼는 일들이 수나라와 당나라 시대 내내 당연하듯 이어지는 걸 보면, 선비족 출신인 수나라와 당나라의 왕족들은 유교적인 윤리관이나 행동양식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아무리 이런 선비족 출신의 정체성을 가진 당 고조 이연도 한족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의 황제가 되어서 사대부들로 움직이는 관료 시스템에 의존하려면 유교적인 사고방식과 전통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되었다는 겁니다. 많은 부분에서 두가지 가치관이 서로 충돌했을테지만 가장 치명적인 부분은 후계자의 내정에 관한 부분이었습니다.

유교적 가치관에서는 후계자는 거의 무조건 장자입니다. 정말 치명적인 하자가 없다면 적장자승계원칙은 국가의 법질서를 넘어서 자연의 순리로 받들기까지 하는게 유교의 원리주의이지요. 당 고조가 유교를 온전히 국가의 지배이데올로기로 인정했다면, 차남인 이세민이 아무리 공이 많고 능력이 있어도 엄연히 황태자를 받들어야 하는 일개 신하에 불과합니다. 이세민이 아무리 대단한 공을 세웠더라도 일개 신하에 불과한 이에게 천책상장이라는 만인지상의 벼슬을 내릴게 아니라 일개 장군의 권위 이상을 허용해서는 안되었으며, 아무리 친아들이라 한 들, 나라가 안정된 후에는 군권을 박탈하고 견제와 감시로 눌러놨어야 맞습니다.

선비족의 전통과 유목민족의 행동양식은 철저히 능력제였습니다. 능력이 있다면 장자상속은 커녕 부자상속도 언제든지 엎어지고, 동생이 형의 자리를 이어받기도 했을 뿐 아니라 형의 아내를 동생이 취하는게 아무런 허물이 되지 않았죠. 심지어 몽고에서는 배다른 형이 양어머니를 취하고 배다른 동생을 아들이라 부르는 게 이상하지 않았고, 그런 일이 일어나려 하자 양어머니의 아들이 그 배다른 형을 죽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형을 죽인 살인자가 지탄을 받기는 커녕 몽고대륙을 통일하고 세계를 호령한 징기스칸이 되기도 하잖아요.

당 고조의 입장에서는 유교로 움직이는 국가시스템을 위해서는 장자였던 이건성도 어느정도 뛰어난 인재였으며 자신의 고령이라는 명분에 곧바로 태자로 책봉하는 데 거부할 명분이 없었지만, 동시에 태자책봉 이후에 엄청난 능력과 명성을 구가하며 백전백승하는 이세민을 자신이 진심으로 따르지도 않는 유교이념에 입각해서 억누르고 견제할 수 있는 명분 또한 부족했던 겁니다.

그렇게 두가지 가치관을 제대로 갈무리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 절충안이라고 나온게 바로 “천책상장”이라는 벼슬이었으며, 이런 어중간한 절충안이야 말로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는 자충수가 되버린 것이죠.

사실, 제아무리 제왕이라는 자리가 피도 눈물도 없이 군주론에 입각해 결단해야 하는 자리라고는 해도, 당 고조도 설마 자신의 우유부단함과 현실상황에 대한 근거없는 낙관, 그리고 아들들 모두를 살리고 좋게좋게 안고 가려는 안일함이 이렇게까지 처절한 파국을 초래할거라는 상상을 하기는 어려웠을겁니다. 그게 아들들의 성장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이겠지요.

하지만, 마음을 열고 냉정하게 자신이 만약 태자의 입장, 이세민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겠는가를 생각할 수 있었다면 하다못해 어설픈 절충안이 상황을 악화시킬 수밖에 없었을 것임을 이해할 수 있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세상은 언제나 고민없이 이질적인 잣대를 뒤섞고, 어설프고 어중간한 절충안으로 어려운 상황을 별 고민이나 대가 없이 대충 넘어가려는 안일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안일함을 가슴을 치며 후회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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