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을 위한 혼란

미국 경제상황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의아하고 이해가 안되는 게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미국의 올해 실업률은 역사적 최저점에 해당합니다. 고용상황이 이렇게 좋을 수 없다면 이제 남은건 실업률이 올라가는 경기침체를 예상해야 할까요? 하지만, 경기선행지표를 보면 미국은 이미 명백한 리세션 구간입니다. 전미경제연구소가 경기침체를 판정하지 않는 이유는 오직 하나, 실업률 때문이겠죠.

혼란스러운 건 경기선행지표와 경제성장률(실질GDP성장률) 이 전혀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도 한 몫 하고 있습니다. 관련한 미국 경제통계가 발표되기 시작한 이래 실질GDP가 경기선행지수와 정반대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건 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GDP는 멀쩡히 성장하는데, 경기선행지수는 침체국면으로 허덕이는 괴리는 이번에 처음 일어난 사건입니다.

신용카드 연체율이 올라가고, 초과저축은 고갈되고 있는 등 가계의 재무상황이 점점 어려운 형편으로 몰리고 있는데도, 재무상황에 대한 “심리”는 나쁘지 않습니다.

글로벌 펀드 매니저들은 대체적으로 현금비중이 높고 bearish한 의견이 주류입니다. 이런 분위기라면 주가의 하방은 심하기 어렵습니다.시장에 거품이 만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S&P500지수는 연고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며, 빅테크 주식들의 주가상승 대비 전통 굴뚝주의 퍼포먼스는 이미 경기침체를 반영하고 있는 듯이 처참한 상황입니다.

이런 혼란스러운 지표들, 갈피를 잡기 어려운 정보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이전까지의 미국은 경기가 과열되면 한참 지나서 연준이 긴축을 들어가면서 거품이 상당기간 과열되는 걸 용인하다가 마침데 큰 파열음을 내며 거품이 붕괴되어 왔습니다. 경기가 침체가 되고 금융시스템이 무너지는 위기상황에서 미 행정부와 연준은 엄청난 돈을 풀면서 경기부양을 했지만, 항상 경제가 초토화 된 이후에 뒤늦은 대응이라 질타받기 일쑤였습니다.

결국 2008년 금융위기는 대공황에 비견되는, 어떤 면에서는 이를 뛰어넘는 미증유의 타격을 미국에 안겨줬고, 정치권과 연준은 이 때에 비로서 “뒤늦은 대응”을 했을 때 치뤄야 할 비용”이 “조급한 선제 대응”으로 각오해야 할 비난과 비용보다 훨씬 더 큰 것이라는 교훈을 뼈에 새겼습니다.

그러한 교훈을 얻은 후에 처음 맞은 경제위기가 다름아닌 2020년 코로나 판데믹으로 인한 미국의 경기침체였고, 2008년의 교훈을 잊지 않은 연준과 행정부는 역사상 들어본 적도 없는 전무후무한 양의 돈을 발작적으로 쏟아붓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으로 코로나 판데믹 위기는 순식간에 봉합되었죠.

하지만, 당시에 코로나 판데믹이 어느정도 규모의 위기였을지를 “주식시장의 발작”이나 “일시적인 고용상황의 변동”으로 위기의 심각성과 필요한 대응 수준을 판단하는 게 옳은 전략이었는지는 아직도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이어지는 엄청난 인플레이션 위기를 유발한 게 바로 당시의 대응이 일으킨 엄청난 유동성 과잉이었으니까요.

이제는 그렇게 50년만에 발생한 가파른 인플레이션에 화들짝 놀라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유동성을 조이자 SVB를 비롯한 중소은행들이 줄도산을 하게 생기자 또다시 예금자들에게 “무제한 예금보장”을 약속함에 이어 유동성이 말라가는 은행들에게 “무제한 대출지급”이라는 초유의 조치를 또다시 취했습니다. 이로 인해 유동성은 급격하게 풀리고 풀리고, 주가는 크게 상승했구요.

이렇게 연준과 미 행정부는 “전광석화와 같은 신속대응”에 더해 “시장이 놀라기에 충분할만큼의 과잉대응”을 문제가 튀어나오려고 머리를 내밀때마다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정식없이 이쪽 저쪽으로 대응이 튀어나오는데 시장이 일정한 방향성을 일관되게 견지하며 어느 한 쪽으로 움직이기는 어렵겠죠. 작금의 시장상황이 이렇게 초유의 혼란함 속에 있는 이유는 연준과 미 행정부가 역사상 한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초유의 대응전략을 코로나 판데믹 이후 지속적으로 견지하고 있기 때문일겁니다.

문제는 그렇게 신속하고 과격한 대응이 당면한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는 건 효과적일 수 있으나, 그러한 강경대응의 2차적인 결과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적인 문제들을 예방해주지는 못한다는 점, 결과적으로 대응이 빠르고 과격하면 할수록 더 빈번하게 대응해야 할 문제점들이 늘어나게 되는 피드백이 형성된다는 겁니다.

2020년 코로나 판데믹 이후 연준이 유동성 정책의 방향을 크게 뒤집어서 태도를 바꾼 게 벌써 네 번입니다. 이런 식으로 급변하는 태도와 정책기조에 시장이 지금처럼 혼란스럽지 않고 질서정연하고 일관된 방향으로 움직이길 기대하는 것도 어쩌면 무리한 기대겠지요. 결국, 지금의 혼란한 모습은 전적으로 미 행정부와 연준의 작품입니다.

진짜 문제는 이러한 정책당국의 간섭과 시장조작에는 엄연히 한계가 있다는 점입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재정부양을 위해 풀었던 돈은 커녕ㅎ 코로나 때 푼 돈도 아직 제대로 회수되지 않았고, 양적긴축을 한다며 조금씩 유동성을 조이자 주식시장 뿐 아니라 국채시장까지도 발작을 일으키며 은행권 줄도산과 뱅크런 위기까지 일으켰습니다. 이를 위해 우회적으로 조심조심 유동성을 풀자 주식시장이 끝간데 모를 탐욕으로 단기간에 폭등하며 춤을 추었고, 마침내 이제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역사상 어떤 유래나 유사성을 찾기 힘든 어지러운 새역사를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는 건, 이런 식의 전광석화와 같은 과잉대응을 이런 식으로 계속 반복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거죠. 결국은 어떤 정책에도 시장이 반응하지 못하고 그저 관성에 몸을 맡긴 채 끝까지 제 갈길을 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정책당국이 애초부터 “어디까지가 적정한 선의 대응인지”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 본 적도 없었으니 더이상 과잉대응도 약발보다 부작용이 더 커지는 시점이 도래할 것이고, 어디까지가 적정선의 대응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 정책당국을 괴롭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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