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남북전쟁에서 가장 유명한 격전지이자, 전쟁의 분수령이었던 게티즈버그 전투는 북군에게 확실한 승기를 안겨준 전투였지만, 실제 사상자와 포로로 잡힌 군인의 수는 북군 2만3천명, 남군이 2만8천명으로 양측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남군에게 이 숫자는 회복 불가능한 피해였습니다. 무엇보다 문제는, 남군 입장에서 게티스버그 전투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라, 명백한 실책이자 판단실수였다는 점입니다.
이게 상식적으로 얼마나 납득하기 어려운 판단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료가 있는데, 로보트 리 장군이 가장 아끼던 참모 제임스 롱스트리트가 게티즈버그 전투 첫날과 둘째 날 전략적 요충지였던 라운드 톱 언덕을 선점하지 못한 채 북군 주력부대가 모두 집결하는 상황에서 무리한 돌격작전에 강하게 반대했음에도 로버트 리 장군이 이를 강행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마지못해 따르기로 했지만, 막상 자신의 부대가 7월 3일 돌격을 시작해도 되겠느냐고 했을 때 돌격 명령을 차마 말로는 내리지 못한 채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평소에는 신중했던 로버트 리 장군이 왜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무리한 돌격을 감행할 정도로 조급했었는가를 역사가들은 게티즈버그 전투를 벌리기로 한 직전에 미시시피강을 장악하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했던 빅스버그 요새가 포위당해 위급하다는 소식 때문으로 추측합니다. 전선은 미국 동부에 형성되었지만, 정작 보급은 양측 모두 구불구불하게 흐르는 미시시피강에 의존해야 했기에, 미시시피 장악에 가장 중요했던 빅스버그 요새가 함락당한다면 남군으로선 그나마 북군에 비해 빈약한 보급마저 끊어져서 더이상 공세를 이어가기 어려웠을 거라 보고 빠르게 워싱턴 DC를 함락시켜야 한다는 조급함에 무리수를 감행한 것 아니겠느냐는 겁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본다면 당시 남군과 로버트 리 장군은 그렇게 조급함을 느낄 이유가 없었습니다. 북군이 남군보다 훨씬 많은 물자와 인력을 가지고 전장에 투입할 수 있었지만, 북군은 독립을 선언한 남부를 모두 점령하거나 남부의 독립의지를 완전이 꺽어놓아야만 승리리고 할 수 있는 반면, 남부의 입장에서는 자기들의 영토를 방어하고, 북군의 공격능력을 소모시키는 소모전을 통해 독립을 이끌어내기만 하면 승리인 겁니다.
그리고, 북군을 이끌던 링컨 대통령은 지지율 55%로 겨우 당선되었을 뿐 아니라, 전쟁 기간 내내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도 아닌 “흑인 해방”이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을 명분으로 자기 가족이 징집되어 죽어나가는 판에 대통령 인기가 좋을 리가 없었죠. 실제로 남군이 게티즈버그에서 주력부대를 온전히 보전한 채 질서있게 퇴각했다면 전쟁은 몇년 더 팽팽하게 이어졌을겁니다. 게다가, 공격과 점렴이 수비보다 훨씬 많은 인력과 자원을 소모할테니 링컨이 재선에 실패하고, 즉각 휴전을 주장했던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했겠죠.
결국, 전쟁의 “승리”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게티즈버그 전투 당시의 로버트 리 장군은 자신이 자의적으로 설정해놓은 타임리밋의 덫에 걸려 조급하게 판단하고 행동하면서 일을 그르쳤던 겁니다. 물론, 로버트 리 장군의 입장에서는 전쟁 자체를 계속 끌면서 남부와 북부가 지리한 소모전으로 수많은 국민이 죽어나가고 양패구상에 빠지는 구도를 용인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런 납득하기 어려운 판단으로 돌을 던진 거였을 수도 있습니다.
로버트 리 장군 본인은 자신의 노예들을 모두 해방했던 노예해방론자였을뿐 아니라 남부의 독립도 반대하는 입장이었기에 링컨 대통령이 처음에 북군 총사령관으로 로버트 리 장군을 임명하려 했을만큼, 로버트 리 장군의 정치적 지향점은 애초부터 남부의 독립이라는 남군의 전략목패와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런 그의 정치지향에 반하는 수십수백만의 군인과 민간인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지리한 소모전을 택하느니 빠르게 결착을 내는 모험을 택했을 수도 있었을겁니다. 그래서인지, 게티즈버그 전투의 패배 직후 그는 남군 사령관직을 사임합니다.
어찌 되었든, 남북전쟁은 결국 전쟁의 “승리” 그 자체에 집착하고, 그에 입각해 어떤 희생도 기꺼이 감수하며 집요하게 전략을 관절해왔던 젊은 그랜트 장군의 승리로 마무리되었고, 로버트 리 장군은 자신이 사랑하던 버지니아주가 지리한 소모전과 게릴라전을 통해 초토화되는 것을 피할 수 있었지만 남군의 핵심 목표였던 남부의 독립은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로버트 리 장군의 정치적 지향점이 남군의 전쟁목표와 어긋나있었다 하더라도, 게티즈버그 3일 째인 7월 3일의 돌격명령에서 보여준 조급함으로 인한 오판은 예방 가능한 실수였습니다. 이런 상황이 닥치기 전에 미리 예상가능한 돌발상황들에 대한 시나리오를 여러개 상정하고, 그런 돌발상화에서 어떻게 대응하겠다는 계획을 미리 세워두었었더라면 이처럼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조급함과 당황스러움으로 잘못된 결정을 내리지 않기 위해 차분한 상태에서 미리 여러 상황들을 예상해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를 계획해놓는 것이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입니다. 이는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 투자의 영역에서도 반드시 실천해야 필수적인 준비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컨틴전시 플랜이 없이 그때그때 닥치는 대로 대응하고 결정하려다보면 막상 치명적인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런 실수로 단지 돈을 잃는 걸 넘어 계속 투자를 지속할 수 없는 심리적인 타격을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 또한 그러한 조급함에 많은 실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저 또한 이런 컨틴전시 플랜을 세워보려고 몇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아직은 많이 어설프더군요. 저도 더 노력해야 할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