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심리(from 골콘다)


브룩스 이야기의 주인공은 리처드 위트니다. 

그는 월가 기존체제의 경상에서 시작하여 성장(Sing Sing)이라는 재미난 이름으로 블리는 뉴욕주립교도소에서 경력을 다진 사람으로, 그 의식이기는 금융가에서 늘상 반복되는 그런 유형의 이야기를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경우라고 볼 수 있다. 활황장에는 영웅이 탄생하게 마련인데, 이들은 실수를 해도 멋지게 가려지며, 종종 자신들에게는 일반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믿게 된다. 특히 그들이 일반 사람들 과 격리된 월가라는 좁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을 때 그런 사고방식은 팽배하게 된다. 바로 이럴 때 유혹이 시작되는 것이다.

리차드 위트니는 범죄자가 될 인물은 아니었다. 고고하고 괴팍한 이 친구에겐 강도나 도둑질이란 생각도 못할 끔찍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시장이 활황이 되어 주가만 오르면 모든 게 다 잘 될 거라는 확고한 믿음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자기 편리에 따라 규정을 무시하기 시작했으며, 주가가 오르지 않자 규정을 더욱 악용하기 시작했다. 그의 범죄적 행위가 다 드러났을 때도 그의 친구 들은 진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어떤 모건은행 고위간부의 말을 빌어보자. “그가 도둑질을 하고 있다고는 상상도 못했고, 아마 무슨 대단한 곤경에 빠진 모양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에 진정한 영웅은 자기 자신을 영웅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어진 자리에서 작은 소임에도 충실히 최선을 다하며 본분을 지키는 이들이 진정한 영웅이지만, 세상은 그런 이들에 주목하지 않는 법이죠. 이 세상이 영웅이라 칭하며 영웅 대접을 해주는 인물들은 오히려 그 시대의 욕망이나 컴플렉스에서 태어나기 마련입니다.

도덕이 땅에 떨어진 사회에서는 도덕적인 것처럼 보이는 누군가를 영웅으로 만들며(실제 도덕적인 인물이냐는 상관이 없습니다), 기업가 정신이 사회의 공공선보다 더 중요하다 여겨지기를 원하는 기업가들과 자본가들은 기업가정신의 정수를 보여주는 경영자나 오너를 영웅으로 포장하게 마련입니다. 이기기 어려운 선거에서 드라마처럼 승리한 정치인도 소속 정당이나 진영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훨씬 더 강하게 영웅으로 떠받들게 됩니다.

이렇게 누군가 어떤 분야에서 큰 성공을 하고, 그런 성공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 쉽사리 그를 영웅처럼 대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본질은 그의 성과나 성공과 아무런 관계가 없죠. 그런 좋은 결과는 대부분 행운이 함께 했을 때 나오기 마련이니까요.

이렇듯 원래부터 존재하는 진짜 영웅이 아닌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는 영웅들은 자신이 추앙받을 때 분비되는 도파민에 취해 작은 잘못들은 결과만 좋으면 잊혀지거나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기 쉽습니다. 왜냐면 실제로 영웅으로 추대한 자들이 그 인물의 작은 허물들은 숨기고 가려주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큰 성공이나 성취는 반복되기 어렵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만큼 결과를 만들어서 계속 떠받들여지고 싶다는 강박관념과 유혹도 강해지는거지요.

그렇게 유혹에 이끌려 “나의 영웅적 행위”를 이어가기 위해 무리를 하다가 작은(?) 허물에 계속 관대해지면 결국 그 허물들이 쌓이다 거대한 추악함으로 변질되어 세상에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면, 그제서야 사람들은 그를 비난하고 조롱하거나 무관심하게 되지요.

이런건 진정한 진짜 영웅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사회의 씁슬하고 안스러운 매커니즘에 불과한 이야기입니다. 대공황 전후로 명멸해간 영웅(?) 리처드 위트니 같은 인물을 우리는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목격하고 있지요. 지나치게 대놓고 천박하고 추악한 면모가 이렇게나 공개적으로 드러나고 있는데도 정치적인 욕심 때문에 그를 두둔하고 비호하는 세력이 너무 많아 여전히 심판받지 않고 추악한 행태를 “큰 일 하다 보니 생기는 작은 허물들”로 강변하며 잘 버티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참으로 씁슬하고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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