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대정신의 정체

그들 모두 가슴에 모자를 댄 채 「아메리카」라는 노래 를 부른 뒤, 앞에 나선 79사단 준장의 연설을 들었다. “우리 사회에 대 한 엄청난 폭력행위가 어제 우리가 서 있는 바로 이곳에서 저질러졌 습니다. 우리 미국의 시민들은 이런 짓에 대해 눈을 감고만 있을 겁니 까? 난 노라고 얘기하겠습니다. 천만 번이라도 ‘노’입니다!”

“노우-” 군중들이 큰소리로 답했다. 장군은 계속 목청을 높였다.

“이런 짓을 하는 자들은 머리를 쳐들기만 하면 다 죽여버려야 합니다. 뱀 죽이듯이 말입니다!”

이번엔 군중들이 “예스-“라고 다함께 목소리를 높였고, 예정에 는 없었지만 흥분한 군중들 몇몇이 튀어나오더니 다같이 부르게끔 미 국 국가를 선창했다. 그날은 월가로서는 꽤 괜찮은 날이었다.

폭발이 있은 후 며칠 간 언론과 성직자, 그리고 각종 정치단체들은 이 제 폭력행위 (outrage)라고 불려지기 시작한 그 사건을 두고, 피에 굶 주린 무산계급서부터 윌슨 대통령의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온갖 사람 을 책임자로 몰았다. 뉴욕 시는 범인체포에 필요한 제보에 1만 5천불 의 상금을 내걸었으며, 모건은행을 위해 일한다는 번즈(Bums) 사설 형사팀은 그 상금을 5만불로 올렸다. 일요일 아침, 트리니티 성당에 예상 외로 많이 모인 신도들 앞에서 윌리엄 매닝(William Manning) 신부는 이렇게 강론했다. “음모를 꾸민 자들 말고도 우리가 상대해야 할 계층이 또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지식인이라 자처하며 폭력을 반대한다는 말만 앞세워 자기의 안전만을 도모하려는 자들입니다.” 거기 모인 신도들은 틀림없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침울한 분위기로 공감을 표했을 것이다. 

23일, FBI 국장 플린은 1주일 간의 수사를 정리해서 발표했다. “월가에서는 그 폭발사건이 단순한 사고라 고 이야기하는 모양인데, 우리가 보기엔 당치도 않습니다. 우린 화약 마차가 길을 잘못 들어섰던 거라는 따위의 소문에 흔들리거나 신경쓰 지 않을 겁니다. 이건 분명히 범죄적인 폭력행위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는 잠시 숨을 쉬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정부는 결코 잠을 안 잡니 다. 멈출 수가 없죠.

결국 그들은 피셔(정신이상증세를 보인 유력 용의자)보다 나을 것 없는 그런 비논리적인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그들의 이런 자세는 전투에 임하는 분위기를 자아냄으로써 그들이 가진 이해관계를 확고한 신념의 틀로 승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종이 조각을 돈으로 사고 파는 월가 고유의 일은 이제 단순히 생계를 위한 직업이 아니라 조국의 적을 타도하기 위한 성전의 모습을 띠어갔고, 도덕적인 행위가 되어갔다. 따라서 월가는 자신들이 이익을 내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뭔가 정의를 위해서 일을 하는 듯한, 삼삼한 기분을 느끼며 새로운 1920년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월가23번지 모건 은행 건물 북쪽에서 일어났던 폭발사건(아직도 테러에 의한 것인지, 단순 폭발사건인지 밝혀지지 않음)이 일어난 이후 벌어졌던 여러 일들과 분위기를 전하는 “골콘다”의 내용들 중 일부를 발췌해봤습니다. 해당 사건은 월가가 광란의 20년대를 맞아 어떻게 그런 어마어마한 열광과 광기에 휩싸일 수 있었는지를 짐작하게 해주는 사례임에 틀림없어보입니다.

인간이 단순히 돈에 대한 탐욕만으로 그렇게 집단적인 광기에 빠지는 일은 극히 드물죠. 탐욕이나 돈이 한 시대를 대표하는 시대정신이 된 역사는 사실 존재하지 않습니다. 설령 어떤 시대의 밑바닥에는 그런 추악한 욕망과 광기가 깔려있을 지언정, 한 나라의 국민 대다수가 10년이 넘는 기간동안을 노골적으로 대놓고 돈, 돈, 돈,,, 거리며 주식에 대해 집단적인 광기와 열정에 빠져서 이성을 내던지지는 않습니다. 광란의 20년대를 지배했던 광기와 열정에는 그에 걸맞는 “명분”이 녹아들어가야만 하나의 강력한 시대정신으로 완성되는 것이며, 그 명분은 다름아닌 “우리는 결코 사익을 추구하는게 아닌 나라의 일을 하는 자들”이라는 조작된 자부심이었던 겁니다.

당시 폭발사고에서 79사단 준장은 “국가”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뱀대가리를 부수듯)죽이자 선동했고, 수많은 언론인, 성직자, 정치단체들은 “애국”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정적을 타도하자 선동했으며, FBI 국장 플린은 “국가”의 정의를 위해 인권유린과 조작수사와 같은 전횡을 당연시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당시 폭발사고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당사자였던 월가도 “국가”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돈놀이에 정당성을 스스로 부여받게 된겁니다. 마침 금융패권늘 영국의 금태환 정지로 인해 미국이 떠맡게 된 이후 이들의 이러한 “금융=국가”라는 자부심과 명분에 불이 당겨지게 된 거죠. 이걸 생각한다면, 우리는 최근 20년 내에 주요 국가들의 자산시장에서 아직 제대로 된 본격적인 거품을 목격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순수한 개인의 탐욕과 돈을 벌겠다는 이기심의 차원이 아닌 집단적인 명분과 핑계를 내세운 진짜 광기와 열정을 목격한 건 새로운 세상의 도래와 공산권의 붕괴에서 도래한 일극체체의 새로운 시대정신에 열광했던 2000년대 IT열풍이 가장 마지막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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